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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ara 유현정 Jun 08. 2023

무소유로 살아보고 싶었어

<실화소설 2> 절대 무한 긍정의 마인드 김비야


Y는 당장 마이애미로 달려가고 싶었다.

아.. 그. 러. 나...


오른발을 깁스한 상태로 어딜 간단 말인가. 남편이라도 보내고 싶었지만, K는 왼발에 깁스를 하고 있었다. 이게 무슨 황당한 시추에이션인가. 이 거짓말 같은 상황이 모두 연달아 일어났다. 먼저 남편 K가 연말에 깁스를 했고, 뒤따라 Y가 연초에 깁스를 한 것이다. 부창부수란 이럴 때 쓰는 말은 아닐 테지만, 그렇게 사이좋게 깁스를 하고 상태를 점검기 위하여 함께 병원을 다니고 있는 중이었다.


이 사달은 지난 멕시코 여행 중에 일어났다.

H2를 만나 멕시코시티에서 여러 날을 보낸 후, 와하까라는 도시로 비행기를 타고 이동한 직후였다. 와하까는 멕시코 여행자들이 다들 칭송하는 도시였다. 우리나라로 치면 전주쯤 되려나. 암튼 전통과 예술이 어우러진 멋스럽고 사랑스러운 도시였다. 새로운 숙소는 도심에 도보로 접근이 가능고, 벽화가 그려져 있는 조용한 골목의 중간쯤에 위치한 예쁜 단층집이었다. 깨끗한 타일 바닥에 인테리어도 세련되어 마음에 들었다. 그런데 여기에 복병이 숨어 있을 줄이야.


평소 샤워를 대충 하는 K가 몸을 제대로 닦지 않고 욕실에서 나오다가 타일 바닥에 미끄러진 것이다. 쿵 소리에 놀라 달려가보니 K는 발가락이 아프다고 하였다. 쪽 새끼발가락이 부어오르고 멍이 들었다. 그러나 워낙 건강한 체질이라 이 정도 타박상이야 별 일이 아니었다. K는 인내심까지 강해서 압박붕대를 감고 하루 2만보를 거뜬히 걸었다. Y도 남편 걱정을 크게 하지 않았다. 언젠가 보건소에서 골다공증 검사를 합격했기 때문이다. Y의 결과지에는 뼈의 상태를 나타내는 까만점이 바닥에서 허우적거리고 있는 반면, K는 꼭대기에서 날고 있었다. 의사는 K더러 평생 골다공증 검사는 하지 말라고 당부였다.


K는 날마다 와하까의 구석구석을 쏘다녔다. 아침저녁으로 걷는 것은 오래된 건강 습관이었다. 그 후로도 해변도시 푸에르토 바야르타와 과달라하라에 이르기까지 보름이 넘게 돌아다녔다. 뒤늦게 서울에 돌아와서야 새끼발가락이 바깥으로 휘어져 있는 걸 발견했다. 병원하 절 친하지 않은 K지만, 덜컥 겁이 나서 제 발로 병원을 찾아갔다. 아뿔싸, 뼈가 부러져서 너덜거린다는 소견이었다. 곧바로 수술로 철심을 고 깁스는 당연한 수순이었다.


그렇다면 Y는 또 왜 깁스란 말인가. K가 건강에 자신하여 무심한 반면, Y는 평생 허약체질로 건강염려가 심한 편이었다. Y는 K의 깁스를 바라보다 문득 마요르카의 악몽이 떠올랐다. 지난여름 큰 딸아이 H1과 떠난 유럽 여행에서 윤슬이 보석처럼 흩뿌려진 해변으로 급히 달려가다 돌부리에 발을 심하게 부딪친 것이다. 눈물이 쏙 빠질 만큼 아팠지만, 꾹 참고 물놀이를 즐기다 보니 아픔도 어느덧 가라앉았다. 그런데 그때의 붓기와 멍든 상태가 남편보다 훨씬 심했던 것이다.


Y는 자신의 발가락이 아무래도 석연치 않았다. 병원을 제 집처럼 드나드는 Y는 연초에 병원이 문을 열자마자 달려갔다. 사고 이후 4달이나 지난 시점이었다. 단골병원의 병원장이 반갑게 맞이했다. Y는 인대가 충격을 받으면서 뼈를 잡아당겨 작게 부스러진 경우였다. 네 번째 발가락이라 양쪽에서 받쳐주어 남편처럼 심하게 휘어지지 않았을 뿐이다. Y도 그 자리에서 통깁스를 하며 발이 묶이게 되었.




하지만 발이 멀쩡하다 한들 바로 먼 길을 떠날 수 있었을까. Y는 지난가을부터 시름시름 앓고 있었다. 유럽여행을 끝내고 집으로 돌아오는 날, 비행기를 놓치는 바람에 공항에서 밤을 지새우며 이틀에 걸쳐 이루어진 귀로가 모든 원기를 앗아갔다. 그럭저럭 몸을 추스른 후, 이번엔 스노클링을 한다고 바에 나갔다가 미끄러져 종아리 근육을 다쳤다. 그뿐인가. 을 쓰고 그림을 그린다고 책상에 앉아 있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허 디스크가 돌출하였다. 주기적으로 인대강화 주사를 맞고 물리치료를 받으며 건강챙기고 있었다.


엄마! 아빠랑 멕시코 여행 올래?


그런던 중 H2로부터 여행 제안을 받은 것이다. Y는 딸아이 얼굴을 본 지가 코로나 기간을 합 4년이 넘은지, 그리움이 쌓이고 쌓여 산을 이룰 정도였다. 다시 여행을 떠나기엔 건강에 자신이 없어 두려웠지만, 앞으로 치고 나가는 마음을 어떻게 잡을 것인가. 남편을 동반하고 여러 약을 챙겨서 겨우겨우 다시 비행기를 탈 수 있었다. 그리하여 악명이 높은 LA공항에서의 환승을 겨우 아슬아슬하게 통과하고, 멕시코로 날아가 해후의 기쁨을 나눌 수 있었다.  


H2는 여행에 최적화된 인간형이었다. 도전적이고 담대할 뿐 아니라 외국어 능력과 친화력에 체력까지 좋았다. 오죽하면 한비야의 후예라는 별칭이 붙었을까. Y와 K는 H2가 계획하고 안내하는 대로 몸만 따라다니면 만사가 오케이였다. 어느새 스페인어까지 술술 하는 모습도 믿음직스러웠다. 그러나 단 한 가지를 놓쳤으니 바로 세심함이었다. 일교차가 커서 하루에도 겨울과 여름을 오가는 날씨에 반팔을 입고 나갔다가 감기가 된통 걸린 것이다. Y는 여행 초반에 며칠을 꼼짝없이 누워 있다가, 병원에서 링거를 맞고 겨우 머리를 들 수가 있었다. 이토록 외국에서도 병원과 친하니, 앞으로 몇 년은 해외여행이 불가능해 보였다.




Y는 미국에서 걸려오는 카톡 전화만을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H2는 틈틈이 와이파이가 되는 곳을 찾아 안부를 전해왔다. 다행히 형편이 어려운 사람들을 위한 무료 급식소에서 끼니를 때우고 있다고 하였다. 이것은 하늘의 보살핌이었다. 잃어버린 배낭을 찾으러 거리를 배회하다가 자신에게 말을 거는 디디를 만난 것이다. 디디는 급식소의 직원이었다. 퇴근을 하려고 나서는 순간에 마주친 H2의 표정이 심상치 않아 거듭 괜찮냐는 질문을 했고, 자초지종을 들은 디디가 이런저런 도움을 주고 있었다. H2는 Y를 안심시켰다.


"엄마! 나 원래 무소유로 살아보고 싶었어."

"....."

"근데 하늘이 알아서 이런 기회를 주네. 온 우주가 나를 보살피고 있어."


아! 이번엔 H2가 법정스님의 제자가 된 것일까. 마음을 공부하고 있다는 엄마도 아직 실천하지 못하고 있는 무소유의 경지를 H2가 먼저 도달한 것이다. Y는 피식 웃음이 새어 나왔다. 이토록 무한한 절대 긍정의 마인드는 대체 누굴 닮은 것일까. 하긴 멕시코를 여행하기 전, 틱낫한 스님이 LA에 세운 디어파크에서 몇 달 명상수련을 받은 아이였다. Y는 프랑스의 플럼빌리지 마음에만 품고 있다가 결국 틱낫한 스님이 돌아가시고 말았는데, H2는 뭐든 망설이는 법이 없었다. 아직은 따끈따끈한 가르침을 가슴에 품고 있을 테니, 고난이 찾아올 때 커다란 방패막이가 되어 줄 법도 했다. 


암튼 당장의 식사 문제는 해결이 되었지만, 이제 다음 문제로 넘어갈 차례였다. 앞으로 해결해야 할 제가 첩첩산중이므로 우선순위를 따져야 했다. H2는 자신을 증명할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 교회의 도움을 받아 영주권부터 신청을 했지만, 재발급에 시간이 오래 걸린다고 했다. 그렇다면 여권으로 증명하는 방법이 있었다. 당장 여권이라도 있어야 은행에서 돈을 찾고, 혹시 한국에들어올 수 있는 것이다. 한국 여권은 대한민국 영사관을 찾아가서 해결해야 다.


그러나 이것도 영사관이 없는 마이애미에서는 결코 쉬운 일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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