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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날의 폭포

제주일상 그림일기 8

by Lara 유현정 Jul 21. 2022


최근 나는 미니멀 라이프를 시작하였다. 

마음이란 늘 움켜쥐고 있다고 해도, 이를 움직이게 하는 동력이 필요한 법이다. 자가발전이 어렵다면 어디선가 마중물을 얻어와야 한다. 나는 가까이 간소한 삶을 실천하고 있는 동생의 생활방식 발심의 계기가 되어 주었다. 미니멀 라이프 1탄은 가구 정리를 통한 공간의 미니멀이었는데, 비움이 가져오는 쾌적함을 즐기 있다. 2탄은 식생활의 미니멀로 정했다. 마침 여름을 맞이하여 동생과 함께 다이어트도 시작한 참이라, 타이밍이 좋았다.


식생활의 미니멀리즘 첫 번째 미션은 냉장고 비우기다. 냉장고 안에는 그동안 사둔 음식이 가득하다. 언제 넣었는지 조차 기억에서 사라진 식품 투성이다. 이렇게 냉장고가 부대낄 정도로 무거워진 이유는, 당장 필요하지 않은 데도 식재료를 미리미리 사두는 습성 때문이다. 장을 볼 때마다 무거운 생수 때문에 배달 금액을 맞추느라 크게 필요하지 않은 물건까지 했던 것이다. 그렇게 해서 음식과 식자재가 냉장고뿐 아니라 전자레인지 선반과 베란다 구석까지 침범하게 되었다.


규칙이 필요했다. 제일 먼저 지금 당장 필요한 것 외에는 미리 사두지 않기로 했다. 동생과 장 보러 가는 시간을 맞춰 동행하며 서로를 감독하였고, 수박이나 식빵처럼 부피가 큰 물건은 하나만 사서 둘이 나눴다. 이제는 삼다수도 배달에 의존하지 않고 낱개로 사서 직접 나르기로 마음먹으니, 장보기가 한결 간소해졌다. 달걀도 개가 남아 있으면 미리 사서 냉장고를 가득 채우곤 는데, 이제는 다 먹을 때까지 절대로 사지 않는다. 며칠간 달걀이 없다고 해서 큰일이 일어나진 않더라.


많이 가질수록 행복합니까?


법정 스님의 일갈이 나를 더욱 채찍질하였다. 스님은 어느 법문에서 하나를 가졌을 때의 살뜰함과 고마움역설하셨다. 하나로 만족하는 삶은 내게 꼭 필요한 의 기술이다.  필요한 하나를 제외한 모든 것은 결국 짐이 뿐이다. 아쉬움과 궁핍을 모르면 불행해진다니, 과연 물자가 부족하던 어린 시절엔 빵 하나에도 행복하던 기억이 난다. 냉장고를 가득 채우고도 행복은커녕 오히려 우울해지고 있으니, 실로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물질이 주는 기쁨은 역시 한계가 있다.


덕분에 날이 갈수록 냉장고 공간이 넉넉해졌다. 그러나 냉동실은 그야말로 강적이었다. 당장 필요하지 않은 음식은 늘 냉동실 차지였으니, 어느 세월에 이를 다 소비할 것인가. 냉동실은 아직도 해결되지 못한 문제들이 산적해 있는 나의 무의식처럼, 어둡고 복잡하고 심란했다. 무의식에 깊이 처박혀 있는 것들을 의식의 차원으로 끌어내기 위해서, 나는 리스트를 작성하여 냉동실 문짝에 붙여두고 하나씩 처리해 나가기로 하였다.


해 질 녘 문섬 풍경해 질 녘 문섬 풍경




<그림 1> 소정방 폭포


간소한 식생활의 두 번째 미션은 소식이다.

나는 식사량과 함께 다이어트의 효과 높이기 위해 저녁식사 시간을 앞당기고 있다. 16:8은 나와 궁합이 잘 맞는 다이어트 방식이다. 8시간 동안 음식을 섭취하고 16시간 금식하는 방법인데, 저녁을 6시 전에 끝내고 다음 날 아침 10시 이후에 아침을 먹으면 된다. 공복 시간이 크게 길지 않기 때문에 어렵지 않다. 그동안 여러 번 활용해서 효과를 본 방법이라 자주 써먹는다. 식사가 가능한 8시간 동안에도 과식은 금물이다.


소식과 함께 병행하는 다이어트 방법은 걷기이다.

시간은 아침 식사 전과 저녁 식사 후를 이용한다. 날이 많이 무더워져서 더위를 조금이라도 날려보려고, 저녁 산책 코스에 폭포를 끼워 넣었다. 이른 저녁을 먹고 어둡기 전에 길을 나서 시원하게 바다로 떨어지는 소정방 폭포의 소리를 들으며 번잡한 마음을 흘려보낸다. 소정방 폭포는 정방 폭포의 동생이라고 할 수 있다. 서로 가까이에서 주상절리가 발달한 깎아지른 절벽 아래로 떨어져 바다로 흘러드는 모습이 똑 닮았다.


올레꾼들의 발길이 뜸해지는 해 질 , 문섬을 품고 있는 서쪽 바다가 붉어지기 시작했다. 하얗게 부서지는 파도를 내려다보다가 나는 두 눈을 의심했다. 건장한 청년 세 명이 바닷속에서 걸어 나오고 있는게 아닌가. 순간 외계인인가 의심을 했다. 수영을 할 수 없는 깊고 험한 바다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온몸에 찰싹 달라붙는 슈트를 머리까지 뒤집어쓰고 물안경을 이마에 걸친 채, 크고 넓적한 오리발을 들고는 성큼성큼 바위를 디디며 올라섰다. 그러더니 곧 폭포 아래서 물을 맞으며 기념촬영을 하였다. 문득 젊음이 부러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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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정방 폭포소정방 폭포


<그림 2> 원앙 폭포


소식을 습관화한다고 해도 균형 잡힌 식사는 중요하다. 탄수화물을 줄이고 단백질과 야채를 늘리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동생과 나고르게 영양도 챙길 겸, 요리하는 시간을 줄이고 수고로움에서 벗어나기 위해 주변의 식당을 찾아다녔다. 그러다가 맛집을 몇 군데 발견했는데, 그중 내용이 가장 충실한 밥집은 M이었다. 육류와 생선, 채소와 과일에 이르기까지 두루 메뉴가 갖추어진 데다가, 재료가 신선하고 맛도 좋으며 정성까지 가득한 착한 식당이었다. 요일마다 메뉴가 달라져서 자주 가도 질리지가 않았다.


초복  우리는 미리 점찍어 둔 식당 M으로 갔다. 주말인 데다가 복날까지 겹쳐서 사람들이 북적거렸지만, 피크 타임이 지나면서 분위기가 차츰 정돈되었다. 메뉴엔 치킨이 추가되어 있었다. 내심 기대했던 삼계탕이 아니어서 아쉬웠지만, 이 더운 복날 끼니를 해결할 수 있음에 감지덕지했다. 후식으로 수박과 식혜까지 챙겨 먹었다. 밥을 든든이 먹고 나는 동생을 데리고 돈내코 계곡으로 갔다. 제주의 무더위를 식힐 천혜의 장소를 보여주고 싶었다.


돈내코 계곡은 사시사철 물이 마르지 않는다. 상류에서 용천수가 힘차게 솟아오르기 때문이다. 맑고 시원한 계곡물이 수량도 풍부하고 나무까지 우거져 숲터널을 만들어주기 때문에 열기가 뚫고 들어설 재간이 없다. 고맙게도 둥글게 마모된 바위들이 곳곳에 굴러와 앉아 쉴 만하게 작은 자리를 만들어 준다. 체감 온도는 22도 정도로 에어컨이 필요 없다. 아니 오히려 발이 시려 오래 담글 수 없고, 몸이 오슬거려서 카디건을 하나 입어야 할 정도다. 가끔 물안개가 피어오를 땐 마치 노천탕에 와 있는 느낌도 준다.


지반의 단차가 있는 상류에는 예쁜 원앙 폭포도 다. 두 줄기의 아담한 폭포수가 쌍을 이루며 원앙처럼 아기자기하고 사랑스러운 풍경을 선사한다. 하지만 깊은 아래에 자리해서 경사가 심한 단을 내려가야 한다. 그래도 꼭 한 번쯤구경할 만하다. 이곳은 작년부터 젊은이들이 대거 모여들기 시작했다. 올해는 더한 듯했다. 심지어 얼음장처럼 차가운 물속에서 수영을 즐기고 있는 젊은이도 있었다.


역시, 여름은 젊음의 계절이다! 

나도 이제 슬슬 바닷속으로 뛰어들 마음의 시동을 걸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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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앙 폭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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