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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수소리 Aug 30. 2023

타슈켄트에서 쾅쾅쾅을 회상하다

23살이었던 내가 새벽1시에 내렸던 결정

 중국 서안의 여름밤, 기숙사방에서 공부를 하고 있을 때였다. 바깥에서 노랫소리가 들렸다. 여름방학 때는 중국학생들도 모두 고향으로 돌아가고, 외국유학생들도 대부분 여행을 떠나 기숙사는 매일 적막만 흐르던 때였다. 아무리 기다려도 노랫소리가 줄어들지 않자, 나는 창문을 열어 바깥을 내다보았다. 거기 아이비에커와 바허가 나의 방 4층을 올려다 보고 있었다. 아이비에커는 4층의 내 방을 보며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亲爱的,你慢慢飞,小心前边带刺的玫瑰”


 당시 중국 전역에 유행하던 중국노래였다.


 "쉿~!"


 나는 당황해서 손가락을 입에 가져다댔다. 노래소리가 멈추지 않자, 그만하라고 얘기하고는 내가 1층으로 내려갔다. 기숙사 입구에 아이비에커와 함께 우즈베키스탄에서 유학온 3인방이 기숙사 앞 벤치에 앉아있었다.


 "너희 여기서 쉬고 있었던거야?"


 아이비에커의 친구 산자가 말했다.


 "너, 아이비에커가 너 좋아하는거 알아?"


 나는 멍하니 듣고 있었다. 당시 나는 엄마가 아프셔서 자격증을 따고 귀국하는게 제일 큰 목표였기 때문에, 중국 유학의 하루 하루가 너무 무겁게 느껴지는 상황이었다. 산자와 아이비에커, 바허 모두 나랑 동갑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런 얘기를 들었을 때 나는 젊은 아이들의 치기로만 느껴졌다. 그때 아이비에커가 뒤에서 나타났다.


 "은주, 우리 산책갈까?"


 산자가 놀렸기 때문에, 아이비에커가 해명이라도 하려나 싶어 따라나갔던 그 날, 나는 피곤했고, 아이비에커는 미적미적댔다. 그날 운동장에 우리는 나란히 앉았다. 무거운 유학시절을 조금은 가볍게 만들어준 내 첫 연애가 그렇게 시작되었다.




 "쾅쾅쾅쾅!"


 나의 기숙사방을 누군가 두들기고 있었다. 문을 여니 아이비에커가 씩씩대며 내 방으로 들어왔다. 그는 잔뜩 화가 나서 전신이 떨리고 있었다.  


 "지금 몇시야. 내가 니 방으로 전화를 지금 300번은 더 한 것 같아."


 새벽 1시였다. 당시 나는 노트북이 없었기 때문에, 집에 연락을 하려면 PC방에 꼭 갔어야 했다. 바허랑 느즈막히 PC방에 가서 집에 이메일이나 쓰고, 싸이월드에서 댓글이나 달고 새벽 1시에 귀가하던 날이었다. 아이비에커와는 선약이 없었기 때문에, 그에게 PC방에 간다고 미리 말하지 않았다. 아이비에커는 내가 PC방에 간 사이, 내 기숙사방에 나를 찾으러 온 모양이었다. 아이비에커는 그 당시 중국 핸드폰이 없었고, 나는 중국 핸드폰이 있었지만 잘 쓰지 않았다. 그러기에 아이비에커가 나를 찾을 수 있는 방법은 내 기숙사방으로 전화를 하거나 직접 찾아오는 수 밖에 없었다. 처음에는 걱정하는 마음으로 내 방에 전화를 했고, 다음에도, 그 다음에도 전화를 받지 않자, 걱정은 분노로 바뀌었다. 분노와 걱정이 오고갔던 3시간 동안 아이비에커는 스스로 나에 대한 화를 키웠다.


 그는 내 침대에 앉아 씩씩대며 어깨를 들썩이고 있었다. 나랑 미리 선약을 한 것도 아니고, 내가 PC방에 갈 때마다 아이비에커에게 말하지도 않았기 때문에, 사실 그가 왜 그렇게 화가 났는지, 왜 내 방에 300번이나 전화했고, 빚쟁이처럼 내 방문을 두들겨야 했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상대방은 화가 났고, 나는 상대방의 화가 납득이 되든 안 되든 그가 정상호흡을 되찾는게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미안해. 나 바허랑 PC방 갔다왔는데?"


 "PC방 가야 하면 나한테 말해서 같이 가자고 했어야지. 나는 너랑 오늘 산책하고 싶어서 이것저것 준비했었단 말야. 그리고 도대체 지금 몇시야. 내가 니가 걱정되서 얼마나 무서웠는지 알아?"


 "미안해. 다음에 PC방 같이 가자. 이제 화가 풀렸어?"


 그는 호흡이 점점 느려지더니, 조금씩 진정되기 시작했다.


 "미안하다고. 아이비에커. 미안해."


 비위를 맞추는데 익숙한 내가 그의 손을 잡았다. 나는 너무 쉬고 싶었기 때문에, 화난 그를 얼른 달래 내보내고 싶었다. 그 때 그가 갑자기 나를 침대로 밀치더니 내 귀에 대고 말했다. "나는 너를 먹고 싶어, 알아들었어?(我想吃你, 明白?)“ 그는 그러고는 내 방을 다시 씩씩대며 나갔다.


 그가 나가고 나는 혼자 내 침대에 앉았다. 너무 피곤했다. 새벽1시에 당한 일이었다. 도대체 무슨일이 있었던 거지. 화가 난 아이비에커가 이해도 안 되었고, 그가 내 귀에 대고 한 말도 납득이 되지 않았다. 이게 문화차이인건지, 아이비에커가 폭력적인 성향인지 제대로 분석이 되지 않았다. 나는 귀국을 2달 앞두고 있었다. 아이비에커와 길게 갈 생각이었다면, 싸워서라도 오해를 풀거나 상대방에게 따졌어야 했지만, 내 무의식이 말했다. 어차피 곧 귀국할건데 뭐. 조금만 참자...



 쾅쾅쾅 사건의 그 날밤 나는 아이비에커에 대한 최종 판단을 내렸다. 폭력적인 성향, 다혈질, 분노. 그가 나를 대하던 수많은 유머러스하고 부드러운 모습들은 중요하지 않았다. 만약 그날 아이비에커가 나에게 한 행동이 실수도 아니고 충동적인게 아니라면, 그가 생각했을 때 지극히 마땅하고 납득이 가능한 행동이었다면, 그건 그가 살아온 세계의 상식이 내가 살아온 세계의 상식과 다르기 때문이리라.


 나는 그를 둘러싼 문명을 이해하지 못하였기 때문에, 아이비에커에 대한 의문이 생길 때마다 아마 이건 문화차이려니 하고 받아들였다. 단 한번도 화를 낸다거나 의 제기를 하지 않았다. 그저 그는 그렇구나 하고 받아들였다. 그렇게 때문에 그는 나를 순하고 착한 여자, 화내지 않는 여자로만 기억했을 것이다.


 그러나 결혼하고 싶었던 지금의 남편하고는, 꼭 결혼하고 싶었기에, 사소한 부분도 의문이 생기면 대화하고, 또 싸우고, 또다시 대화했다. 사랑과 전쟁이었지만, 상대방과 진정으로 맞추고자 했기 때문에 우리는 싸우면서 비로소 둥글어졌다. 연애때 많이 싸워서 그런지 결혼하고 난 후에는 거의 싸운 적이 없다.


 그가 잘못했을 때조차 모든 걸 수용했던 나를 기억한다면, 오늘 내가 보인 단호함에 그는 아마 내가 변했다고 느낄 것이다. 오늘 그가 내일 혼자나오라고 명령했을때 내가 당연히 자신의 요청대로 아이를 병든 엄마에게 맡기고 나올꺼라고 예측했던 걸까? 내가 거부했을 때의 그의 음성은 그날 PC방사건 때 내 방에 침투해 화를 표출한 아이비에커의 음성과 비슷했다.   그의 논리, 즉 내가 자신의 와이프 이전 사랑했던 여자이기 때문에, 혼인 이후에도 개인적으로 만날 수 있다고 생각하는게 그의 상식이라면, 그가 살고 있는 세계는 나의 세계와 얼마나 다른가. 과거의 내가 아이비에커를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견뎌서 결혼에 이르렀다면, 그의 상식과 나의 상식간에는 얼마나 많은 충돌이 있었을까. 서로 상식이라고 여기는 세계관들이 끊임없이 충돌했다면 한낮 설레임에 불과했던 사랑도 옅어지거나 소실되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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