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기스탄 바로 옆에 위치한 호랑이공원(Йўлбарслар Боғи)은 평일 한낮인데도 불구하고 시민들로 가득했다. 우즈베키스탄식 샌드위치를 가득 실은 행상을 비롯해서 잡동사니를 파는 잡상인들이 규칙 없이 흩어져있었다.
레기스탄 옆 공원
중앙아시아의 집시, 루리(Lyuli)
공원으로 올라가는 계단에서는 여러 명의 여자들이 계단에 걸쳐 앉아 무리 지어 함께 팔찌를 팔고 있었는데, 바닥에는 천 하나를 깔고 가지고 온 팔찌를 모두 펼쳐놓았다. 여자 중 하나는 젖먹이 아이를 안고 있었는데, 아이를 안고서 우리에게 팔찌를 들이대는 아기 엄마가 안타까워 자꾸만 쳐다보게 되었다. 자세히 보니 여자들의 생김새가 우즈베키스탄에서 보던 현지인들보다 얼굴이 더 검었다. 모두 머리에 스카프를 두르고 있었지만, 이마저도 히잡하고 좀 거리가 있어 보였다. 물건을 파는 행동이 낯이 익어 생각해 보니 이건 바로 내가 유럽에서 봤던 집시와 유사했고, 피부가 검고 빼빼 마른 생김새는 남인도에서 보아온 여인들과 유사했다. 그들은 중앙아시아에서 루리라고 불리는 무가트(Мугат)인이었다. 그들은 13세기 지금의 파키스탄의 물탄(Multan)에서 중앙아시아로 넘어왔다고 한다. 내가 여인들을 쳐다보자 그중 한 여인이 일어나 더 적극적으로 팔찌를 들이밀기 시작했다. 여인이 팔찌를 들고 주원이와 나에게 집요하게 따라붙자, 지나가던 행인이 대뜸 팔찌여인에게 소리를 치며 여인이 더 이상 우리에게 접근하지 못하도록 했다.
Lyuli(Uzbek Journeys: Life on the Margins: The Lyuli People of Uzbekistan)
웨딩촬영 공원 한가운데에는 우즈베키스탄에서 26년간 독재한 이슬람 카리모프 동상이 떡하니 서있었다. 사마르칸트 하면 레기스탄 아닌가. 레기스탄 바로 옆 공원에 이슬람 카리모프 동상이 있다는 것만 봐도 사마르칸트 내 이슬람 카리모프 전 대통령의 위상을 가히 짐작할 수 있었다. 독재자 동상 앞에는 동상을 배경으로 웨딩사진을 찍으려고 공원 여기저기를 다니는 커플들로 붐볐다. 분명 더운 날씨임에도 불구하고, 신랑과 신부 모두 긴팔로 잔뜩 차려입었다. 그나마 날씨가 흐려서 볕이 따갑지 않아 다행이었다. 신랑과 신부 양 옆에는 신랑의 친구들 3-4명이 사진기를 들고 신랑을 따라다녔고, 신부의 가족이나 친구들도 자신이 할 수 있는 선에서 최대한 차려입고 신부를 따라다녔다. 신랑과 신부의 들러리들은 수줍어서 그런지 아니면 친한 척하면 안 되는지 눈도 안 마주치고 따로따로 신랑과 신부를 따라다녔다. 신부는 가뜩이나 이목구비가 큰데, 눈썹이며, 속눈썹이며, 입술이며 선이 굵어 보이는 진한 화장을 잔뜩 했다. 이미 우즈베키스탄 신부들은 아름다운 외모를 가지고 있어, 화장을 살짝 하는 게 더 예쁘겠구먼, 과한 화장이 어린 신부들을 더 나이 들게 보이게 했다. 세상의 미의 기준은 다 다른 거니까. 몇 시간 뒤 주원이와 시압바자르에 도달했을 때 숯검댕이 눈썹과 진한 색조화장의 기괴한 미용실 광고를 보고는 , 비로소 이 진한 화장이 개인의 선호가 아닌 이 국가의 미의 기준임을 알 수 있었다.
시압바자르의 미용실 광고
신랑과 신부는 더운 날씨에 잔뜩 차려입고 공원을 돌아다녔는데, 힘들어서 지친 건지 진지한 건지 얼굴에 하나같이 웃음끼가 없었다. 아이비에커도 바허도... 이렇게 유적지나 공원을 돌아다니면서 웨딩촬영을 했었겠지. 유학시절 우리들은 꽤나 절친이었는데, 서로 국가가 다르니 서로 중요한 행사도 모두 놓쳐버렸다. 현지인들의 모습을 관찰해 보며, 내가 20대 때 사귀었던 우즈베키스탄 친구들이 지금까지 밟아온 삶을 유추하며, 친구들이 내가 몰랐던 기간 동안 순탄하고 행복했었기를 바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