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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inger Ly Nov 01. 2020

에릭 가너 (43)

2014.7.17


"Not everything that is faced can be changed, 

but nothing can be changed until it is faced."

-James Baldwin





2015년 2월. 

뉴욕  스태튼 아일랜드. 한 델리숍 위층에 위치한 아파트 방. 


쾅쾅 쾅쾅 쾅-하는 소리와 동시에 문이 부서지며 네 명의 뉴욕 경찰들이 요란한 소리를 내며 우르르 안으로 들어왔다. 


"Police, police! Put your hands up!" 


바닥에 깔린 매트리스 위에서 잠을 자고 있던 남자는 스프링처럼 튕겨져 일어나 두 손을 머리 위로 올렸다. 땀에 젖어 축 늘어진 갈색 머리 위로 그의 손이 사시나무처럼 떨렸다. 싱크대 옆에 서 있던 한 여자와 아들로 보이는 남자아이도 벌벌 떨리는 몸을 돌려 머리 위로 손을 올렸다. 


"램지 오르타! 폭행, 강도, 절도, 무기 및 마약 소지로 체포한다!"


경찰은 그에게 다가가 그의 몸을 잡고 우악스럽게 두 팔을 등 뒤로 꺾어 수갑을 채웠다. 램지 오르타는 저항하지 않았다. 반항도 하지 않았다. 오르타에게 뉴욕 백인 경찰에 대한 저항, 반항, 무저항의 종착지는 어차피 둘 중 하나를 의미했다. 감금 아니면 죽음. '그때 형은 반항하다가 목이 졸려 죽었다'. 형의 마지막 모습이 떠오르자 오르타는 갑자기 눈앞이 깜깜해지고 가슴이 답답해졌다. 그 모든 과정을 핸드폰 동영상으로 찍어 세상에 알린 것은 오르타 자신이었다. 


그날 이후로 경찰은 수시로 오르타를 미행하고 괴롭혔었다. 발을 옮기면서 고개를 들어 어머니와 동생이 서 있는 곳으로 시선을 옮기다가 멈칫하며 다시 고개를 떨구었다. 순순히 따라간다면 죽음은 피할 수 있다. 적어도 죽음은. 





2014년 7월 17일 

뉴욕 스태튼 아일랜드 202 베이 스트리트


"요, 에릭 가너!" 

"요, 오르타!" 


그날도 나는 형과 만났다. 형과 자주 만나던 그 미용 재료 가게 앞에서 만나 걸어가고 있는데 갑자기 경찰차가 섰고, 곧바로 네 명의 백인 경찰들이 형에게 다가왔다. 그 당시 나는 뉴욕 경찰들의 부당행위와 만행을 알리는 활동가 조직인 캅 워치(Copwatch)의 멤버로 활동 중이었기 때문에 경찰을 보자마자 자동적으로 핸드폰을 꺼내 들어 영상을 찍기 시작했다. 경찰은 형에게 "Loosie 루지" (낱개로 불법 거래되는 날담배)를 팔았다는 이유로 체포한다고 했다. 형은 경찰을 보자마자 손으로 얼굴을 감싸 안으며 이젠 다 진절머리가 난다고 했다. 형은 루지를 팔지 않았다고, 아무 짓도 하지 않았다고, 그만 자기를 괴롭히라고, 이제 정말 지긋지긋하다고, 애원하다시피 억울함을 호소했다. 그날 왠지 형은 작정한 것 같았다. 형이 말했다. "오늘 이 모든 것은 멈춰야한다"고. 


지난 20년간 이 뉴욕 경찰들은 온갖 사소한 죄를 들이대며 형을 괴롭혔다. 아무 때나 형을 세워 범죄자 취급하며 신분증을 요구하고, 수갑을 채우고, 몸수색을 했으며, 사람들이 다 보는 길거리에서 체강 수색을 하는 등의 만행을 저질렀다. 그날, 160 킬로그램의 흑인 거구가 두 손을 올려 결백을 주장하는 모습이 그들에게 그렇게 위협적이었을까? 형의 그 순한 얼굴은, 답답한 눈빛은, 애원하는 입술은 안 보였을까? 수갑을 채우려는 한 백인 경찰의 손을 피해 형이 팔을 빼자 그 경찰은 뒤에서 형의 목에 초크를 걸어 형의 목을 조르기 시작했다. 그리고 다른 경찰이 더 달라붙어 네 명이 무력으로 형을 바닥에 쓰러뜨리고 팔을 등 뒤로 넘겼다. 초크를 걸었던 그 경찰이 초크를 풀고 두 손으로 있는 힘껏 형의 머리와 목을 바닥에 밀어 박고 움직이지 못하게 고정시켰다. 그 모습은 마치 야생에서 사냥꾼들이 곰 한 마리를 제압해서 포획하는 것처럼 보였다. 이 거대한 짐승을 잡아가기 위해 바닥에 엎드려진 형의 등 위로 경찰들의 몸이 포식자들처럼 사납게 뒤엉켰다. 목과 얼굴이 경찰의 무자비한 손에 짓눌리고 바닥에 박힌 채 형이 호소했다. "I can't breathe 숨을 쉴 수가 없어." 


그러나 경찰은 형을 풀어주지 않았다. 형이 또 말했다. "나는 저항하는 게 아니에요. I can't breathe 숨을 쉴 수가 없어." 핸드폰으로 영상을 찍고 있던 내 손이 떨리고 있었다. 화가 났지만 차마 목소리는 나오지 않았다. 형이 또 간신히 소리를 내어 말했다. "나는 저항하는 게 아니에요. I can't breathe 숨을 쉴 수가 없어." '젠장. 손을 치우란 말이야. 숨을 쉬게 목을 좀 풀어달란 말이야. Let go of him!' 속으로 나는 소리를 지르고 있었지만 이 망할 목소리는 내 목구멍에서 맴돌기만 했다. 형이 또 말했다. "I can't breathe 숨을 쉴 수가 없어." 연달아 또 형의 목소리가 들렸다. "I can't breathe 숨을 쉴 수가 없어."


"I can't breathe 숨을 쉴 수가 없어." 


"I can't breathe 숨을 쉴 수가 없어." 


"I can't breathe 숨을 쉴 수가 없어." 


"I can't breathe 숨을 쉴 수가 없어." 


"I can't breathe 숨을 쉴 수가 없어." 


"I can't breathe 숨을 쉴 수가 없어."


형은 숨을 쉴 수가 없다고 열한 번을 말했다. 하지만 그들은 형을 놓아주지 않았다. 마지막 말을 하고 형은 더 이상 말이 없었다. 형의 팔이 딱딱해져 갔다. 경찰들은 앰뷸런스가 오기 전까지 형을 7분 동안 길바닥에 그대로 내버려 두었다. 앰뷸런스가 왔지만 파라메딕도 별다른 수가 없었는지 아무 조치를 취하는 것 같지 않았다. 형은 스트레쳐에 실려 인근 병원으로 옮겨졌다. 그리고 한 시간 후 숨이 멎었다. 


소식을 들은 방송국 기자들이 몰려들었고 한 기자가 내 핸드폰 영상을 뉴스에 내보내겠다며 가져갔다. 나는 집으로 돌아왔다. 정신이 몽롱했다. 샤워를 하고 나와서 그제야 형이 죽었다는 게 실감이 났다. 






2015년 4월. 

뉴욕 브롱스, Rikers Island 라이커스 아일랜드 교도소


여러 개의 혐의로 체포된 오르타가 보석금을 마련하지 못해 뉴욕 브롱스의 악명 높은 교도소에 구금된 지 두 달이 되어간다. 교도소로 이동될 때 한 경찰관이 오르타에게 말했었다. 


"야, 라이커스에 가는 것보다 차라리 자살해서 뒤지는 게 나을걸?" 


에릭 가너 살인 사건의 목격자인 오르타는 지난 두 달 동안 하루도 빠짐없이 그 말을 곱씹었다. 그는 에릭 가너 사건에 휘말리게 된 것을 후회했다. 그가 라이커스 교도소로 이동된 후, 그를 알아본 교도관들은 오르타가 감히 뉴욕 경찰을 모욕하고 대니엘 판탈레오를 살인자로 만들려고 했다며 그를 괴롭혔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구타가 일어났고 규칙을 어겼다는 이유로 독방에 감금시켰으며 걸핏하면 식사도 가져다주지 않았다. 식사를 가져다준 날에는 음식을 먹고 구토와 설사로 밤을 새웠다. 오늘 오후에는 점심으로 미트로프가 나왔다. 그것을 먹고 재소자들이 하나둘씩 피를 토하며 쓰러졌다. 그것을 지켜보던 교도관들은 그들을 의무실로 데려가기는커녕 미친개들처럼 컹컹거리며 웃어댔다. 오르타를 지켜보던 교도관이 소리쳤다. "야! 너도 어서 처먹어!"


오르타도 피를 토하기 시작했다. 심장이 불타는 것 같았다. 뱃속은 누가 칼로 갈기갈기 찢어대는 것 같았다. 오르타는 차라리 그게 진짜 칼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배를 움켜잡고 바닥에 엎어져 소금 뿌려진 지렁이처럼 몸을 비틀었다. 바닥에 떨어진 미트로프를 자세히 들여다봤다. 파란색 가루가 슈거파우더처럼 뿌려져 있었다. 쥐약이었다. '영상을 찍지 말걸. 사명감 따위 개나 줘버릴걸. 이럴 줄 알았으면 그 망할 경찰들이나 뜯어말려서 형이나 살릴걸. 젠장. 젠장 젠장할!!!' 주먹으로 바닥을 치며 악에 받쳐 소리를 질러대던 오르타는 그대로 정신을 잃었다. 





"요! 오르타!"


형이다. 형이 보인다.


"형...."

"요! 오르타!" 


형은 그 순둥순둥 한 얼굴을 하고 바보처럼 웃고 있다. 

"형...."

"그래."

"에릭 가너."

"그래."


나는 말없이 형을 바라본다. 눈에서 눈물이 뚝 뚝 떨어진다. 

"동생..." 형은 그 순하고 맑은 눈을 하고는 나를 쳐다본다. 

"형..." 나는 형의 눈을 들여다보다가 꺼억꺼억 울음이 터져 나온다.

"동생, 오르타. 나 때문에 네가 여기서 뭐 하는 거냐." 형이 그때처럼 진절머리 난다는 듯이 고개를 저으며 한숨을 푹 내쉰다. 

"형. 형은 죽었잖아. 나는 이렇게 살아있는데 형이 뭘 걱정해. 누굴 걱정해. 근데 경찰 새끼들이 내가 알아서 뒈져줄 때까지 복수하겠대." 그제야 고자질하는 어린아이처럼 내 입에서 큰소리가 터져 나온다. 

씩씩 거리는 나를 보고 형이 말한다.

"불쌍한 새끼들. 우리가 제일 만만하지. 해충처럼 못 잡아 죽여서 안달이지."

"형. 나 말이야. 나 정말 죽고 싶지 않은데, 우리 엄마, 내 동생. 아씨, 망할, 근데 자꾸 나는 내가 죽어야 하나 하는 생각이 들어서 미쳐 돌아버리겠어."

형은 잠시 말이 없다. 한동안 생각에 잠긴 듯 있다가 천천히 입을 연다.

"오르타. 난 벌레 같은 취급받고 살았어도 다시 한번 살아보고 싶다. 다시 돌아가서 살아보고 싶다. 내 마누라, 내 새끼들. 아직 걸음마도 못 뗀 내 귀여운 막내딸. 다들 너무 보고 싶고 너무 억울하다." 형은 눈물을 흘리며 말을 이어간다.

"사실 나 너무 피곤하고 지겨웠어. 그동안 진절머리가 나서 죽어버리고 싶었는데, 근데 지금 내가 제일 괴로운 게, 내가 지금 제일 후회되는 뭔지 알아? 내가 그들이 원하는 대로 살다가 그들이 원하는 대로 죽었다는 거야. 저 잘난 놈들이 만들어놓은 덫 안에 나를 해충처럼 처넣고 태어나서 자라게 해 놓고 해충처럼 살게 하고 해충처럼 괴롭히고 해충처럼 죽으라고 했는데, 내가 그렇게 살다가 죽어줬다고."

나는 형의 말을 천천히 되새겨본다. 덫. 해충 같은 삶. 죽음. 그들이 원하는 대로 살다가 죽어준 것. 

"오르타. 솔직히 말하잖아? 내가 다시 살아 돌아가도 그 해충 같은 삶에서 못 벗어날 것 같아. 그들이 만들어놓은 덫은 정말이지 거대한 미로 같아. 새로운 모퉁이를 돌 때마다 새로운 덫에 빠져. 세상이 바뀌지 않는다면 난 또 그들이 원하는 대로 살다가 그들이 원하는 대로 또 죽을 거 같아. 근데 네가 그 거대한 미로 속 덫에 빠져 허우적거리던 내 모습을 세상에 알려줬잖아. 어쩌면 내 자식들은, 이 세상에 다른 너희들은 나와는 다른 삶을 살 수도 있지 않을까. 내 자식들은, 다른 사람들은, 제발, 모퉁이 하나를 돌면 새로운 것이 보이면 좋겠어. 희망이 보이면 좋겠어. 덫을 벗어나면 또 덫에 빠지는 그런 삶은 절망적이다 못해 너무 지겹고 피곤해. 내가 바라는 거 딱 그거 하나다. 여하튼, 오르타, 고맙다. You did the good thing, man."




눈을 뜨자 하얀색 천장이 시야에 들어왔다. 오르타는 자신이 의무실 침대에 누워있다는 것을 알고 안도했다. 두 달 만에 보석금 $12,000이 크라우드 펀딩에서 마련되었다고 했다. 세계 각국에서 오르타 이야기를 듣고 모금운동이 벌여졌고, 목표액 $12,000을 넘어 실제 모여진 금액은 $52,500이라고 했다. 오르타는 곧 있으면 이 지옥에서 나가게 될 것이다. 







에릭 가너는 불법으로 낱개 담배를 판매한다는 혐의로 체포되는 과정에서 백인 경찰 데니엘 판탈레오의 초크 홀드(목조르기)에 의해 2014년 7월 17일 살해당했다. 검시관은 가너의 죽음을 질식사, 살인이라고 판단했다. 그러나 뉴욕 리치먼드 카운티 대배심은 판탈레오를 기소하지 않았다. 이후 이 사건의 목격자인 램지 오르타의 영상이 전 미국으로 퍼지면서 에릭 가너 사건이 널리 알려졌고 전국 곳곳에서 판탈레오의 구속을 요구하는 시위가 벌어졌다. 그러나 연방 당국은 5년 동안 사건을 지연시키다가 결국 판탈레오를 기소하지 않겠다고 최종 결정지었다. NYPD 징계 절차에 따라 2019년 8월 판탈레오는 해고 되었다. 에릭 가너가 죽은 지 5년이나 지나서야, 뉴욕 주 검찰총장은 팬탈레오의 해고가 가너 가족에게 정의를 가져다줄 것이라며 서둘러 사건을 마무리 지었다. 램지 오르타는 흉기와 마약 소지 혐의로 2016년 구속되어 교도소에서 4년 형을 살고 2020년 5월에 석방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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