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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inger Ly Nov 01. 2020

트레이본 마틴 (17)

2012. 2.26


"I'm for truth, no matter who tells it. 

I'm for justice, no matter who it's for or against."

-Malcolm X




2012년 2월 26일

아들이 돌아오지 않았다. 




'아들아. 오늘 경찰의  발표가 있었다. 증거 불충분으로 너를 죽인 조지 지머맨을 기소하지 않겠단다. 그날 밤 너는 차가운 주검이 되어 하얀색 플라스틱 봉투에 담겨 왔는데 지머맨은 집에 가서 따뜻한 침대에서 잠을 잤다고 하는구나. 네가 죽은 지 오늘로 2주가 되었는데 너를 죽인 그 사람은 아무렇지도 않게 일상생활을 하고 있다. 이게 말이 되니, 아들아? 아들아, 아빠 말 들리니?'


트레이시 마틴은 오늘도 아들에게 말을 건다. 아들은 2월 26일 저녁, 편의점에 간식을 사러 나간 이후 돌아오지 않고 있다. 마이애미에서 엄마와 사는 아들을 자기가 사는 샌포드로 잠시 데리고 온 건 트레이시 마틴이었다. 그는 아내와 이혼하고 약혼녀와 프라이빗 게이트가 있는 샌포드 타운하우스 단지에 살고 있었다. 이혼을 했지만 트레이시 마틴은 늘 아들 트레이본 옆에 있었다. 한 집에 함께 살지 않는다고 아빠가 없어지는 건 아니라고 아들에게 충분히 확인시켜주며 살았다고 믿었다. 아빠의 역할을 단 한 번도 회피한 적 없다고 생각하며 살았었다. 그날 일이 벌어지기 전까지. 


'아들아, 어디에 있니? 네가 있는 그곳은 어때, 지낼만하니? 아빠 엄마는 곧 탄원서를 낼 거야. 엄마 아빠는 너무 억울해. 우리 아들도 너무 억울하지? 왜 네가 그렇게 죽었어야 해? 왜? 네가 잘못한 게 뭐가 있다고, 응? 아들아, 아빠 말 들리니?'


17세. 사춘기를 겪고 있던 아들은 자주 싸움에 휘말렸었고 다른 학생을 때린 이유로 정학을 당한 적도 있었다. 그때도 학교 가방에서 마리화나의 흔적이 발견되어 열흘간 정학 처분이 내려진 상태였었다. 아들의 마음을 진정시키고 기분전환도 시켜줄 겸 트레이시 마틴은 아들은 샌포드로 데리고 왔었다. 트레이시 마틴이 약혼녀와 살던 트윈 레이크스 리트리트 타운하우스 단지는 약혼녀가 비교적 안전하고 깨끗한 곳에서 아이를 키우기 위해 새로 이사한 곳이었다. 이사한 이유는 단 하나였다. 그곳이 그 지역에서 아이를 키우기 가장 적합하고 가장 안전한 곳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프라이빗 게이트가 쳐진 그 단지 내에서 아들 트레이본은 경비를 서던 조지 지머맨이 쏜 총에 살해된 것이다.


“아들아, 지머맨과 911과의 통화 내용이 공개됐다. 아빠 엄마는... 아빠는... 부정하고 싶었다. 모든 게 거짓이었으면 좋겠다고 소리 지르고 싶었어. 엄마는 우느라 차마 그 녹음을 다 듣지 못했다. 악몽이라면 이보다 더한 악몽이 있을까. 그 악몽보다 더 무서운 곳에서 네가 처참하게 죽어갔다고 생각하면 몸이 떨린다. 너는 얼마나 무서웠을까. 아들아. 내 아들. 도와달라고 외치는 목소리, 너의 목소리가 아니었을까. 엄마는 너의 목소리가 맞다고 한다. 나는 잘 모르겠다. 지머맨의 목소리인지 너의 목소리인지. 분간이 안돼. 지머맨의 어머니는 지머맨의 목소리라고 주장한다. 아빠는 네가 그렇게 절박하게 소리치는 걸 들어본 적이 없어서 정말 모르겠어. 38초 동안 14번이나 도와달라고 미친 듯이 외치는 소리가... 그 소리가 너의 목소리였다면... 너무 절박해서 너무 아파서 아빠는 가슴이 찢어질 것 같아. 차라리 너의 목소리가 아니었으면 좋겠어. 아빠는 네가 도와달라고 그렇게 외쳤으면 달려갔을 거야. 당장 달려갔을 거야. 그렇지? 너도 알잖아. 아빠는 네가 그렇게 죽어가게 놔두지 않았을 거야. 절대로....'


트레이시 마틴은 그날 밤 실종 신고를 했고 다음날 아침 경찰들이 집 초인종을 눌렀을 때 아들의 죽음을 직감했다. 여러 장의 사진들을 보여주며 아들의 신원을 확인하는 경찰들에게 아들 트레이본 마틴이 맞다고 대답하는 데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피로 얼룩진 아들의 후드티, 총알이 뚫고 지나간 자리, 아들의 길고 탄탄한 몸, 아들이 편의점에서 사 갖고 오던 스키틀즈 한 봉지와 수박 맛 아이스티, 그리고 아들의 앳된 얼굴. 아니길 바랐지만 아들이 맞았다. 거짓말이길 바랐지만 사실이었다. 꿈이길 바랐지만 현실이었다. 


'아들아, 잘 지내니? 엄마 아빠가 낸 탄원서에 서명한 사람들이 백만 명이 넘었어. 이곳저곳에서 네의 이름을 외치며 지머맨의 구속을 요구하는 시위도 벌어지고 있다. 믿어지니? 우리의 이야기를 들은 인권단체도 사법부에 재조사를 부탁했어. 많은 사람들이 우리에게 힘을 실어주고 있다. 아들아, 네 죽음이, 네 이름이 헛되지 않도록 아빠 엄마는 열심히 뛸 거야. 제발 지켜봐 줘. 아들아. 내 아들...'


현실을 마주한 트레이시 마틴은 어디서부터 뭘 해야 할지 감이 안 잡혔다. 자기 목숨보다 더 소중한 아들의 목숨을 앗아간 그 남자를 찾아가 죽이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았다면 그건 부모가 아니었다. 두 발로 서있기가 힘들었다. 아내에게 연락을 해서 아들의 죽음을 알리고 예상한 대로 아내의 비명소리와 울음소리가 들리자 수화기를 가만히 내려놓았다. 정신을 차려보기 위해 집에서 따뜻한 밥을 먹고 있을 그 살인자의 모습을 떠올려봤다. 왜? 왜? 왜? 트레이시 마틴의 머릿속엔 수많은 물음표들이 새의 부리처럼 트레이시의 머리와 심장을 쪼아대고 있었다. 


'아들아, 아빠 목소리 들리니? 오늘 사법부에서 연락이 왔다. 지머맨을 구속하지 않은 경찰서장은 자리에서 물러났다. 지머맨은 너를 죽인 게 맞지만, 그를 구속하는 건 쉽지 않은 일인가 보다. 플로리다에는 stand your ground라는 법이 있어. 두려움과 위협을 느낀다면 흉기를 사용하여 자기 자신을 보호해도 된다는 법이야. 그 법이 적용되는 건지, 아니면 정당방위가 적용되는 건지 모르겠지만 지머맨을 살인죄로 구속시키는데 애를 먹고 있다. 지머맨의 아버지와 형은 티뷔에 나와서 한 목소리로 네가 먼저 지머맨을 위협하고 주먹으로 쳐서 코 뼈를 부러뜨리고 바닥에 머리를 갖다 박아 뒷머리가 깨졌다고 주장하고 있다. 사실인지 아닌지 모르겠지만 싸움 잘하는 네가 위협을 받았다면 아빠는 네가 그렇게 행동하고도 남았을 것 같다고 생각한다. 누구라도 그러지 않았겠니. 밤길에 모르는 사람이 너를 뒤쫓아와서 위협한다면 너야말로 정당방위한 게 아니었을까.  911 통화기록을 들어보면 지머맨은 출동대원이 너를 따라가지 말라고 했는데도 너를 쫓아 뛰어갔더구나. 그는 왜 너를 쫓아갔을까? 그때 너는 여자 친구랑 통화하고 있었다고 하더라. 여자 친구도 나중에 네가 누가 따라온다고 하고 뛰기 시작했다고 했다. 지머맨이 너를 따라잡았을 때 네가 왜 자기를 따라오냐고 물어봤다고 여자 친구가 하더구나. 그리고 그 사람이 위협적으로 나오자 주먹이 나갔을 거야, 그렇지? 아들아, 누가 정당방위했는가를 따지고 있는 지금, 살아있는 그 지머맨의 목소리가 더 크게 들리고 있다. 살아있는 사람이 정당방위로 살아났으니 더 사람같이 살아보겠다고 한다. 너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으니 그의 목소리만이 법정에서 효력이 있다. 아빠는 네가 살아나서 너의 목소리로 네가 정당방위했다고 말해줬으면 좋겠다. 너무 억울하고 혼란스럽다, 아들아...'


아들이 죽은 지 두 달이나 지나 지머맨이 2급 살인죄로 기소되었지만 그는 얼마 안 있어 보석으로 풀려났다. 지머맨은 새 변호사를 고용했고 다시 긴 법정 싸움이 시작되었다. 그동안 판사가 3번이나 바뀌었고 트레이시 마틴은 점점 불안해져 갔다. 아들을 죽인 지머맨을 감옥에 보내는 것만이 자신이 아들에게 해줄 수 있는 최선이자 전부라고 생각했었는데, 수사가 원활하지 않았다. 유리하게 돌아가지 않는 것 같았다. 죄 없는 아들을 쫓아가 죽인 사람을 처벌하는 것이 그렇게 힘든 일인가. 법은 누굴 위해 존재하는가, 정의란 것은 존재하는가. 트레이시 마틴에게는 간단한 답이 있는 간단한 질문이었지만 모든 이에게 똑같이 간단한 문제가 아닌 듯했다. 그리고 그 사실을 마주하는 것이 트레이시 마틴에게는 가장 고통스러운 일이었다.


'아들아, 지머맨이 정당방위를 주장하고 있다. 지머맨의 신체에 남은 네가 휘두른 폭력의 흔적들이 강력한 증거가 되고 있는 것 같다. 그런데 말이야. 지머맨은 생명의 위협을 느껴서 너를 향해 방아쇠를 당겼다고 했는데, 파라메딕은 도착하고 고작 약 8분 동안 그의 상처를 치료했다고 한다. 생명에 지장이 있을 정도의 폭력이었고 상처였다면 그런 간단한 응급처치로 치료가 가능했을까. 그런데 또 결정적으로 크리스 세리노라는 수사경찰이 지머맨이 과장하거나 기만하는 것 같지 않다는 증언을 했어. 정당방위로 점점 굳혀지고 있는 것 같다. 하아... 아들아. 아빠가 이제 어떻게 해야 할까...?'





아들이 죽은 지 1년 5개월 후, 결국 지머맨에게 무죄가 선고되었다. 최종 판결이 나오는 날, 트레이시 마틴은 아내와 집에 있었다. 트레이시 마틴은 힘없이 거실 소파에 앉아 창 밖을 내다보고 있었다. 플로리다의 강렬한 햇살이 창문을 뚫고 들어와 트레이시 마틴의 눈에 가시처럼 박혔다. 도로에는 차들이 생생 달리고 있었다. 지나가는 차마다 운전자들은 목적지를 향해 앞만 바라보고 있었다. 뒷좌석에 앉은 몇몇 아이들은 지나가면서 행복한 웃음을 흘렸다. 아들의 죽음이 그들의 일상에 어떤 영향도 미치지 않았다는 사실보다 아들을 죽인 그 사람이 앞으로 남은 삶을 또 아무렇지 않게 꾸역꾸역 살아낼 것이라는 사실이 아들의 죽음을 더 아프게 했다. 트레이시 마틴은 고통스러운 듯 미간을 찌푸리며 눈을 감았다. 눈을 뜨면 햇살과 아무렇지 않게 흘러가는 시간 사이에서 죄책감이 새살 나오듯 새로이 태어나고 또 태어났다. 



'아빠!'

'트.. 트레이본?’

오 아들아, 내 아들. 아들이 부르는 소리에 뒤돌아보니 아들이 서 있었다. 꿈? 뭐라도 좋았다. 한달음에 달려가 아들을 부둥켜안았다. 트레이시 마틴의 눈에 눈물이 차올랐다. 

'아빠. 아빠 그만 울어. 아빠는, 아빠는 살아야지.' 아들은 여전히 핏자국이 선명한 회색 후드티를 입고 있었다. 트레이시 마틴의 입에서 낮은 신음소리와 동시에 울음이 터져 나왔다. 

'아들, 너와 함께 하는 삶이 아빠의 삶이라는 걸 너도 알잖아. 너 없이, 아빠가 어떻게 살아.' 

'아빠.' 아들의 눈에도 눈물이 맺혔다. 

'아들아. 아빠가 미안해. 지켜주지 못해서 미안해. 살려주지 못해서. 구해주지 못해서 너무너무 미안해.'

'아빠 잘못이 아니야, 아빠.'

'예전에 기억나니? 네가 9살 때였나? 우리 집 부엌에서 불이 났는데 자고 있던 나를 네가 깨워서 밖으로 데리고 나갔잖아. 네가 그때 아빠를 살렸어. 그때는 몰랐는데 지금 생각해보니 너는 아빠를 살렸는데 아빠는 너를 살리지 못했네. 아비가 돼서 아들을 살리지 못했네.'

'아빠. 아빠가 날 죽인 게 아니야. 아빠 잘못이 아니야. 그 사람 짓이야. 그 사람. 나도 아빠랑 하고 싶은 게 얼마나 많은데, 나도 하고 싶은 게 얼마나 많았는데.' 아들이 억울한 표정을 지으며 서글프게 운다. 

'아들. 나도 그 사람을 용서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그 사람이 죗값을 치른다면 혹시라도 용서할 힘이 생길 줄 알았어. 그런데 지금은, 지금은 아빠도 너만큼 그 사람이 밉고 가끔은 나쁜 생각까지 든다. 아빠는 영원히 모를 거 같아. 우리 트레이본 없이 살아갈 수 있는 방법 말이야. 그런 게 있을까? 그렇지만 한 가지 약속할게. 아빠는 너를 위해 계속 싸울 거야. 세상에 너같이 억울하게 죽을지도 모르는 수많은 아들들, 아이들이 우리 트레이본처럼 되지 않도록 끝까지 싸울 거야. 사랑하는 내 아들. 사랑하고 사랑하고 사랑해 아들아. 너를 한 번만... 다시 안아보고 싶어. 네가 다시 아빠 아들로 태어나준다면... 그때는 정말 아빠는 널 목숨 걸고 지켜낼 거야. 알지. 아들아, 아들아...'

'응, 아빠. 아빠도 알지? 우리 집 부엌에 또 불이 나면 내가 또 목숨 걸고 아빠 구해낼 거라는 거. I love you, dad.'



해가 움직이면서 서서히 햇살도 누그러졌다. 창문을 뚫을 것처럼 들어오던 햇살은 이제 창틀에 내려앉아있다. 트레이시 마틴의 감은 눈에서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차 한 대가 빠르게 지나가고 있었다. 뒷좌석에 앉은 한 남자아이가 행복한 웃음을 흘리며 지나갔다. 





트레이본 마틴 (17)은 2012년 2월 26일 플로리다 샌포드 한 타운하우스 단지 내에서 경비를 서던 조지 지머맨의 총에 맞아 숨졌다. 당시 트레이본 마틴은 후드를 머리에 쓰고 있었고 지머맨은 수상한 흑인이 걸어 다닌다며 911에 신고하였다. 911 통화 중 출동대원이 쫓아가지 말라는 충고를 무시하고 트레이본 마틴과 맞섰고 몸싸움이 일어났다. 결국 지머맨이 쏜 총에 트레이본 마틴이 그 자리에서 숨졌다. 2013년 지머맨은 정당방위가 인정되어 최종적으로 무죄를 선고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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