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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작가 전우형 Mar 13. 2024

눈이 아름다운 사람의 뒷모습

소설

  32. 눈이 아름다운 사람의 뒷모습        

  

  나는 눈이 아름다운 사람의 뒷모습을 보고 있었다. 내가 연지를 바라보고, 연지는 지는 해를 물끄러미 보았다. 우리는 같은 곳에 있었다. 지는 해도, 연지의 뒷모습도 모두 좋았다. 괜찮아요,라고 연지는 말했다. 마치 자신을 쓰다듬듯이. 눈은 사람을 비춘다. 실루엣은 길고 느슨했다. 우리의 긴장이 하찮게 느껴질 만큼. 해가 다른 불빛을 덮는 시간. 길게 날아와 작살처럼 꽂히는 빛들이 카페를 온전히 채우는 시간. 그곳에 연지가 서 있다. 나는 다가갈 수 없다. 연지와 나는 서로에게 괜찮은 사람이었다. 그뿐이었다.      


  어떤 물음은 포장마차 같다. 연기가 나고 국물은 따스하고 매콤하며 사람들은 좀처럼 오래 머물지 않는다. 바람이 천막을 펄럭이고 어묵탕을 한바탕 휩쓸면 가볍고 알싸한 향이 코로 스민다. 허기를 부르는 바람이다. 앉은 사람은 서둘러 먹고 포장하는 사람들은 음식을 담는 손짓을 노려본다. 선선한 호기심으로. 때로는 포근한 은신처에 대한 갈망으로. 감정처럼 익어가는 본능으로. 그러므로 어떤 질문을 내뱉는 것은 포장마차 안으로 들어가는 일. 그리고 답을 얻어 서둘러 거길 벗어나는 일. 나는 질문을 품기로 한다. 포장마차 밖에서. 그리고 연지로부터 가장 먼 뒷공간에서.      


  연지에게는 괜찮은 일들이 많았다. 나는 연지의 말을 듣고서야 그것이 꽤 괜찮은 일이었다는 걸 깨닫는 경우가 있었다. 이를테면 속눈썹처럼 둥글고 희고 가느다란 초승달이 뜬 저녁이라든가, 겨우내 마르고 병든 잎을 정성스레 닦아준다든가, 피로에 지쳐 머리가 지끈거릴 때 까무룩 잠들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괜찮고 좋은 일들인지 연지는 내게 알려주었다. 예전에 탄피를 찍어내는 공장에서 일을 한 적이 있었어요. 12시부터 8시가 야간반 근무 시간이었죠. 한 네 시간 정도는 견딜만해요. 정신도 멀쩡하고 그때까지는 활력이 있죠. 하지만 다섯 시쯤이 되면 이마와 눈썹 사이가 서서히 멀어지는 듯한 느낌이 들어요. 멍해지고 쾅쾅 단단한 쇠를 누르고 찍어내는 소리가 멀어지면서 거대해져요. 시야에 하얀 자국이 남아요. 몸은 어쩔 수 없이 움직이는데 마음이 못 따라가는 느낌. 왜 죽을힘을 다해도 앞사람이 멀어지기만 할 때가 있잖아요. 나는 꼭 꿈만 꾸면 그렇던데? 바로 눈앞에 있는 사람을 아무리 불러도 돌아보지 않잖아요. 목이 그물에 걸린 것처럼 움직일 수 없고. 미친 듯이 답답한데 할 수 있는 게 없을 때. 웃긴 게, 그런 때는 또 잠도 안 깬다? 그런데 진짜 피곤한 날은 있잖아요. 꿈도 안 꾼다? 눈만 감았다 떴는데 아침이야. 바로 출근해야 돼. 수환 씨는 그런 적 없어요?      


  연지의 말에는 마력이 있다. 진짜 그런 일이 일어날 것만 같은 기분이 든다. 동시에 나는 여전히 포장마차 안을 들여다볼 수 없다. 나는 문득 멀미를 느낀다. 아껴두었던 커피를 마신다. 식었지만 고소하고, 지는 해를 맞이하기에 좋다. 앞에는 막 내린 연지의 커피가 있다. 잔에서 세 줄기 빛이 기울어진다. 연지는 밖의 무엇을 내다보고 있을까. 그곳엔 무엇이 있고 무엇이 없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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