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작가 전우형 Mar 21. 2024

지금껏 해왔고 앞으로도 하게 될 일

소설

  이틀 동안 잠을 자지 못했다

  바늘이 눈을 찔러 오는 것 같았다

  눈을 감았다

  그러자 소리들이 더 선명해졌다

  벗어나고픈 갈증 역시도




  34. 지금껏 해왔고 앞으로도 하게 될 일     


  일터를 상실해도 삶은 계속된다. 태어났다는 이유로, 세상에 발을 내디뎠고 눈을 떴고 울음을 터트렸다는 이유로, 우리는 사라지거나 멈출 수 없는 존재가 되었다. 나는 그런 사실들이 꽤 아프게 느껴졌다. 나무는 죽은 후에도 속을 드러내지 않는다. 그 속을 벌레가 완전히 갉아먹어도 나무는 대지에 곧게 서 있다. 나무는 그렇게 죽은 채 살아간다. 인간의 삶은 나무의 황혼을 닮았다. 아픔을 감추고 외피를 단련하고 속은 병든다. 고통보다 사납게 화를 낸다. 괜찮다는 말로 자신을 흔든다. 삶의 최종 장에 이를 때까지 답을 얻기를 포기하지 않는다. 별과 달이 지는 모습을 바라본다. 지금껏 해왔고 앞으로도 하게 될 일. 사람을 사랑하고 자연을 경외하고 더 괜찮은 사람이 되고 먹을만한 커피를 만드는 일. 나는 마취에서 깨어나 걷기 시작했다. 무작정 걷다가 오르막에 다다랐다. 차들이 옆을 지났다. 헉헉거리는 소리가 귀를 울렸다. 아니 심장 안쪽에서 고막을 두드렸다.      


  처음 만난 이에게 느꼈던 친숙함. 가까이 가고픈 열망. 나보다 나은 사람을 경외하고 한편으로 시샘하며 끓는점에 도달할 때까지 달아오르던 마음과 불현듯 그 모든 열기를 꺼트려 버리던 실망의 나날들. 3월의 추운 날 터질 듯 터지지 않는 꽃봉오리를 올려다보며 답답해하던 때가 있었다. 그러나 기온이 갑작스럽게 올라 20도를 넘어서던 밤, 목련과 산수유와 벚나무는 일제히 꽃망울을 터트렸다. 숨 가쁘게 달리는 영혼들은 티핑 포인트를 넘지 못했고, 나는 땀 냄새를 닮은 매연 속에 서 있다. 친구들과 공을 향해 달릴 때, 소금기와 모래 먼지가 동시에 날아오던 곳에서 나는 삶이란 연료를 태우는 일이란 걸 알았다. 그 연료가 무엇이건, 삶은 자신의 일부를 연소해 앞으로 나간다. 내가 0에 수렴할 때까지. 목으로 더 이상 숨이 오가지 않을 때까지. 그러나 방향이 어느 쪽이었을까. 이루어 가던 무언가를 잃은 사람에게는 의문이 든다. 그 의문이 발걸음을 묶는다. 인생의 어느 한 지점을 빙글빙글 돌게 한다.      


  휴대전화가 울렸다. 아내였다. 아내는 벌써 여러 번 나를 우물에서 건졌다. 그리고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왜? 벌써 끝났어? 아니, 그냥. 아직 시작하려면 남았는데 할 게 없어서. 아는 사람 없어? 한 명 있다며? 안 왔나 봐. 그래. 다들 바쁘구나. 응. 다들 바쁘대. 나도 바쁜데. 그러게. 아, 죠리퐁 라떼 먹고 싶다. 아니면 딸바라도. 딸바? 응. 딸기 바나나 라떼. 그런 것도 있구나. 어, 시작하는 것 같다. 이따 전화할게. 아내는 역시 자기 할 말만 하다 끊었다. 나는 아내의 전화가 끊어진 후에도 한동안 전화기를 내려놓지 못했다. 어디선가 바람이 불었다. 제법 시원한 바람이었고 무겁던 무언가가 떨어져 나간 느낌이었다. 하지만 죠리퐁 라떼에 딸바라니. 카페지기인 나도 모르는 메뉴를 아내는 잘도 알고 있다. 아내는 새집으로 이사오자마자 주변의 맛집을 모두 파악했고 산책하다 음식점 앞을 지날 때마다 저기는 뭐가 맛있대 하고 말하곤 했다. 저녁을 먹은 이후였기에 실행에 옮긴 건 드물었지만 아내는 가장 반짝이는 눈으로 그런 얘기를 한다. 내 반응은 늘 시원찮았을 것이다. 그런 나와 사는 일은 아내에게 고된 일이었을까.      


  나는 백범공원 초입에 접어들었다. 바빠도 오는 사람과 바쁘면 오지 않는 사람. 둘의 차이는 뭘까. 그런 생각을 하며 걷는데 몇 걸음 앞에 어깨를 나란히 하고 걷는 두 여자가 보였다. 왼쪽 여자는 곱슬머리에 청바지, 까만 가죽 코트를 입었고 오른쪽 여자는 갈색 후드 티셔츠에 황토색 반코트 차림이었다. 두 여자는 천천히 걸었다. 그런데도 그녀들과 거리를 좁힐 수 없었다. 이게 바빠도 오는 사람과 바쁘면 오지 않는 사람의 차인가. 나는 후자였고 아내는 전자였다. 나는 쉽게 포기했고 아내는 어느 것 하나도 포기하려 하지 않았다. 나는 아내를 이해했고 동시에 이해하지 못했다. 우리는 사랑한다는 말을 자주 했다. 아내와 나를 따라 아이들도 사랑한다는 말을 자주 했다. 어릴 적 우리 집에서는 듣지 못하던 말이었다. 사랑한다는 말이 나는 아직도 어색했다. 새해가 된 지 두 달이 흐른 지금도 매번 작년을 쓰는 것처럼. 올해가 다 지날 때쯤이면 올해에 익숙해질까. 이마에 빗방울이 떨어졌다. 하나, 둘. 숫자를 셀 수 있을 만큼 천천히. 여우비였다. 손으로 이마를 가렸는데 빛과 비중 어느 쪽이 가려지는지 구분할 수 없었다. 

이전 03화 그래 걷자, 걸으면 되지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