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협동조합 쉽지 않아"
나는 그 말을 그냥 듣는 둥 마는 둥 했다. 나는 다를 거라고 생각했던 것보다, 아직 잘 모르는데 사람들의 그렇다는 말만 듣고 해보지 않는 건 바보 같은 짓이라 생각했다.
협동조합을 만들고 다음 해, 1명이 내가 생각했던 조합은 이런 모습이 아니라며 떠났다. 그가 생각했던 조합은 사회적협동조합이 아니었다. 함께 교육을 받으며 일반협동조합과 사회적협동조합의 차이에 대해서 공부를 했지만, 나도 그 차이를 한참 후에 명확하게 인지했던 것 같다. 그가 바라는 건 영리 협동조합이었다. 조합원끼리 함께 공동 돌봄을 하고, 폐쇄적으로 운영하는 방식이었다. 그러나 사회적협동조합은 그렇게 할 수 없다. 취약계층을 위한 사회서비스를 해야 하며 주 사업을 40% 이상 수행해야 한다. 우리는 주 사업이 돌봄이었기 때문에 발달장애아동을 위한 주 사업을 40% 이상 해야 했는데, 발달장애아동 돌봄은 정말 돈이 되지 않았다.
장애인을 위한 서비스에서 비용을 비싸게 받을 수도 없거니와 이미 복지관, 사회복지기관 등에서 복지서비스를 무료로 많이 하고 이었기 때문에 굳이 돈을 내고 돌봄을 하러 오는 경우가 드물었다.
우리가 돈을 받고 돌봄을 한다고 하면 엄마들은 수군대었다.
" 지원사업을 할 텐데? 왜 돈을 받지? 왜 돈을 밝히는 거지? 어떻게 장애인을 대상으로 서비스를 하면서 왜 돈을 받나?"
그러나 우리가 직접 해보니까 모든 것이 비용이었다.
돌봄 공간 유지비, 돌봄 재료, 간식비. 그리고 정말 심각한 것은 돌봄을 하며 일을 하는 멤버의 인건비가 나오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낮에 발달장애 아이들을 돌보고, 집에 가면 또 발달장애 자녀가 있다. 발달장애인에 대한 돌봄이 쉴 틈 없이 이어지는 것이다. 반면 우리에게 돌봄을 맡기는 부모들의 만족도는 좋았다. 우리는 고민하다가 시간당 5천 원의 이용료를 받게 되었는데, 그 수익으로 돌봄 강사들은 인건비를 시간당 1,000원 정도를 받을까 말까 했다. 이건 돈을 버는 게 아니라 무료봉사 아닌가? 발달장애아의 부모가 된 것도 서러운데, 무엇 때문에 이런 고생을 해야 하지?라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그러다 보니, 돌봄은 깨진 독에 물 붓기처럼 남는 게 없었다. 돈은 안되고, 멤버들은 발달장애아동을 돌보느라 지칠 대로 지쳐만 갔다. 낮에 돌봄을 하고 나면 저녁에 집에 가서 밥 할 기운이 나지 않았다. 당연히 자기 자녀는 뒷전이 되었다. 그러다 보니 다들 이런 생각을 하게 되었다.
'나는 왜 이러고 있나?'
협동조합 2년 차, 지원사업을 마무리하면서 서로 없던 힘까지 짜내며 마무리를 하였다. 그리고 더 이상 하지 못하겠다며 멤버 2명이 탈퇴하였다.
솔직히 말하자면 조합원 중에 2명이 서로 다툼이 있었다. 일종의 세력다툼 것이라 할까.
나는 그것을 알면서도 그냥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누구의 편도 들 수 없었다. 두 조합원은 만날 때마다 의견이 대립되었고, 둘 중 하나가 포기를 하거나 생각을 고쳐 먹어야 할 것만 같았다. 두 사람은 의견이 안 맞는다기 보다는 감정 다툼이 더 많았다. 다른 조합원들도 마찬가지였다. 누가 옳다, 누가 이겨야 한다 이런 생각 없이 그냥 지켜볼 뿐이었다. 그러다 결국 한쪽은 정리되고 한쪽은 남았다.
또 다른 갈등의 씨앗은 인건비였다.
2년 차에 지원사업을 아주 많이 하게 되었는데, 그 과정에서 강사비 수입도 꽤 되었고, 덕분에 다들 눈코 뜰 새 없이 바빴다. 그중의 대부분을 조합의 공간 비용(월세)을 위해 조합으로 환원했다. 그 과정에서 서로 각자의 입장에서의 불만이 쌓여갔다.
또, 제품을 만들고 시장에 나갈 때의 가격을 정하는 부분에서도 갈등이 일어났다. 만드는데 직접 참여한 사람들과, 시장을 우선으로 생각하는 사람들과의 의견이 맞지 않았다. 제작에 직접 참여한 사람은 제품이 우선 인정받기를 바랐다. 경제적인 면을 따지는 사람들은 가격을 낮추어 많이 팔기를 원했다. 가격이 맞지 않았다. 사실 애초에 잘못된 것이었다. 시장 가격을 못 맞출 상품이면 계획조차 하지 말아야 했고 검증 과정에서 단가를 맞추지 못할 것이라면 만들지 말아야 했다. 그러나 우리는 지원사업에 참여했기에 나름 여유로운 자금이 있었고, 무모하게 이럴 때 만들어보지 언제 만들어 보냐면서 도전했다. 결과는 참담했다. 지금은 그때의 무모함이 왜 잘못되었는지 알게 되었지만 당시에는 알 수 없었다.
우리의 서툰 협동조합 2년 차에는 지원사업에 목숨을 걸어 재정적으로는 풍족했으나 조합원들의 에너지는 빠르게 소진되었다. 결국 2021년 겨울을 지나면서 대표는 더 이상 힘들고 지쳐서 못하겠다며 사임을 했고, 4명의 조합원만 남게 되었다. 하지만 협동조합을 지속할 것인가 말 것인가를 고민할 겨를도 없이, 우리에게는 지원사업의 마무리 작업이 있었다. 지원사업의 마무리 작업은 1월을 넘어 2월까지도 계속되었다. 그러는 사이 해가 바뀌었고, 사업을 마무리한 후에는 한동안 보지 말자면서 만나기를 거부했다.
모든 게 정지된 시간을 보냈다.
그러던 어느 날 엎친데 덮친격으로 조합원 중 1명에게 큰일이 생겼다. 도저히 조합에서 아무것도 하지 못할 만큼의 타격이 큰 사건이었다. 대표가 바뀌고, 3년 차 협동조합을 어찌 보낼 것인가 고민할 겨를도 없이 다가온 큰 충격 때문에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이젠 지쳐버렸어. 모두들 안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