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도 없는 것 처럼, 아무도 오지 않는 것 처럼 조용한 마당에 봄 꽃이 피었다. 처음엔 매화가 피고, 그 다음엔, 목련이 피고 모란도 피었다. 봄이 가는지, 여름이 오는 지 알 수 없이 때때로 추운 초여름엔 감꽃도 언제 피었다 졌는지 마당으로 우수수 떨어졌다.
감꽃을 주어서 아이들과 목걸이를 만들었다. 옛날에 어릴 때 하던 장난을 지금의 아이들과 놀이를 하며 놀았다. 대문을 닫으면 시간이 시간이 멈추는 듯 했다. 이곳은 평화롭고 안전하다. 우리 아이들은 마당에서 땅도 파고, 해먹에도 들어가 포근하게 누워 있다 나오거나 트램펄린 위에서 해맑게 뛰었다. 너무 바쁘고 정신 없었던 2021년을 끝내고 다음 해에는 슬픈 소식과 함께 한없이 무기력속으로 잠식해갔다.
그래도 몇가지 지원사업은 할 정신이 있었나보다. 발달장애아동 청소년 방과후 서비스는 어떻게 해야할지 몰라 수익은 나지 않았지만 2명정도의 인건비가 나오기 시작했다. 나는 조합에서 조금 숨을 쉴 수 었었다. 월급을 받는 직원이 사무실을 지키고, 돌봄을 했다.
지원사업 준비하는것 이외에는 별다른 것을 안했다고 보는게 맞을 것이다. 협동조합 강의를 들어봐도 우리는 딱! 죽음에 계곡에 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 사이 조합원 2명이 탈퇴했다. 이제 우리는 4명이 남았다. 그 중 1명은 남편 상으로 인해서 기약없는 휴식에 들어갔다. 또 한명은 남편이 암이 발병해서 수수을 하고 항암 치료를 받느라 정신 없는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사무실에는 나와, 사무국장, 그리고 돌봄 직원 2명이 있었다. 다행이었다. 직원이 있다는것은. 2명의 공백을 그들이 채워주었다. 한 명은 예비사회적기업이 된 덕분으로 지원할 수 있었던 청년일자리사업 지원사업으로 온 직원이었다. 둘 다 사회 초년생으로 일을 가르쳐야 했지만 많은 의지가 되었다.
생각했다. 한 발, 나가야 하나? 멈춰야 하나?
일단 생각하는 것을 멈추자. 일정에 이끌려 일을 하다보면 무슨 방법이 떠오르지 않을까?
그래서 생각하는 것을 멈추고 다가오는 일들을. 단계별로 타의에 의해 진행되는 일들을 하기 시작했다.
그 사업이 돌봄의 재구성, 교육청-교육회복을 위한 마을교육공동체 운영, 도청 평생교육지원사업 등을 하면서 발달장애아동 부모 모임인 제주아이 특별한아이 와는 지속적인 활동을 했다.
조합 내부로는 슬프고 침체된 시기였지만, 지원사업을 하면서 사람들을 만나고 이어갈 수 있었다.
그런데! 작년에 만든 다이어리를 육지의 모 협동조합에서 주문을 했었는데, 납품을 하고 났더니 물건이 맘에 안든다고 반품을 하며 돈을 못주겠다고 한 사건이 일어났다.
계약서를 쓰지 않은것이 문제였다. 500권이라는 첫 거래이기 때문에 우리는 흥분했었다. 처음으로 천만원의 수익이 난다고 하니 말이다. 구두로 약속을 하고 물건을 만들어 부랴부랴 납품을 하여는데, 그 조합의 대표가 주문을 한것이지 조합원은 동의를 한 적이 없다고 조합원들이 물품 대금 지급을 반대한다는 소식이었다. 억울했다. 그때서야 뒤늦게 알아보았지만 선금도 받지 않고 제작을 시작해 버린 우리 잘못이었다. 그쪽 대표와 계속 연락을 시도하고 이야기를 하려고 했지만 어느 순간에서 잘 연락이 되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어떻게 했을까 ? 광주의 디자인 지원센터의 도움을 받아 일단 내용 증명을 보내고, 변호사와의 무료 상담을 통해 소송을 진행 했다. 그때가 2022년 5월이었다.
소송이 시작되고, 지원사업을 수행해야 하고, 또 바빠지다 보니 우리 도 모르게 조금씩 빠져 나왔던것 같다. 그때부터 하게 된 고민은 어떻게 바우처 사업을 잘 진행할까? 어떻게 하면 우리의 수고를 수익으로 연결시킬까였다.
2020년에 협동조합을 만들고, 2021년에 열심히 하고, 만으로 2년차인 2022년에 깨달은게 있었는데 절대 혼자 다할 수 없다는 것이다.
돌봄으로 우주를 정복할 수 있다 생각했던 우리의 생각은 혼자 살기 힘들다는 소박한 꿈으로 점차 작아졌다. 원래 이렇게 시작해야 했던거다. 천천히, 하나부터 단계별로. 사람들의 말을 잘 들으면서 ^^!
그러나 이것을 잘 하는 협동조합은 몇이나 될까? 이리저리 부딪히고 쓰러져 봐야 비로소 여유가 생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