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맹꽁이숲의 동물들
지금부터 하는 이야기는 쌍둥이 박사 중에서 살찐 얼굴이 들려준 이야기야.
재경이가 시간이 지나 1학년 겨울방학이 되었을 때,
아파트의 자기방에서 하얗게 눈이 내린 맹꽁이숲 쪽을 바라보며 기억나는 대로 적은 거라
조금 이상할 수도 있어.
재경이 스스로가 생각해도 조금 그렇긴 한데,
그래도 할 수 없지 뭐, 기억나는 대로 적고 좀 이상한 것은 마음대로 상상해도 좋아.
상상이야말로 누구에게나 필요한 거니까.
<난지도 어부 형제>
우리는 남들이 쌍둥이 박사라고 부를 정도로 공부를 많이 했지만,
나와 동생은 원래 한강에서 물고기를 잡는 어부였어.
한강에 어부라고? 어른들까지도 잘 모르는 이야기지.
지금은 저 아래 김포대교 쪽에서만 물고기를 잡지만, 그전에는 마포나 여의도 위쪽에도 어부들이 있었지
맞아, 이 곳에 저 하늘공원과 노을공원이 생기기 전의 일이야.
여기는 처음엔 물버드나무가 많이 자라는, 난지도라는 이름을 가진 예쁜 섬이었지.
우리는 작은 배를 타고 강 물고기도 잡았지만,
한강물을 타고 올라오는 바닷고기도 많이 잡았어.
그런데 어느 때부터인가 사람들이 커다란 트럭으로 이 근처 한강변에 쓰레기를 가져와 쌓기 시작했어.
그건 말이야, 서울에 사람이 너무 많이 살기시작하면서 생긴 일이지.
처음엔 언덕만 하더니, 나중엔 정말 산처럼 커졌어. 하나도 모자라 둘이나 되었지.
거기서 생긴 썩은 물이랑 냄새 때문에 한강이 오염되고 물고기들이 모두 죽어서
더 이상 물고기를 잡을 수 없게 되었지.
우리는 할 수 없이 어부생활을 그만두고 쓰레기 산으로 올라갔어.
거기에는 고철이나 구리 같은 비싼 쇳덩어리나 쓸 만한 물건들이 많아서
우리는 그걸 부지런히 주워 모아 돈을 많이 벌었어.
그런데 그런 물건보다 더 많은 게 책과 신문, 잡지 같은 것들이었어.
우리 형제는 그걸 읽는 걸 너무 너무 좋아했어.
밤낮으로 시간만 나면 그걸 읽다보니 아는 게 정말 많아졌지.
영어나 외국어로 된 책들까지도 읽을 수 있게 되었지만, 더 소중한 걸 배웠지.
그건 인간이 도시로 모여들수록 쓰레기를 많이 만들고,
그 쓰레기를 아무 곳에나 버리면 결국은 사람까지 모두 죽게 된다는 것이야.
우리는 신문사나 방송사에 편지도 보내고,
사람들을 모아 쓰레기차가 이곳에 더 오지 못하도록 길을 막기도 했지.
다행히 어느 날부턴가 쓰레기차는 더 이상 오지 않았어.
그런데 동생의 몸이 이상해졌어.
쓰레기 더미 위에서 너무 오래 살았는지 목 아래가 안 움직이는 병에 걸린 거야.
그래서 그때부터는 내가 동생을 안고 다니고 밤에도 꼭 붙어있었는데,
어느 날 아침에 보니 동생의 몸이 너무 작아져서 내 몸에 합쳐진 거야.
처음엔 너무 슬펐어. 동생의 몸이 없고 머리만 있다니...
그렇지만 생각해보니 머리만이라도 남았으니 그렇게 슬픈 것만은 아니었지.
그런데 더 신기한 건 내가 자는 동안 동생이 공부를 하면 나도 그걸 기억하는 거야.
한 사람은 자고 한 사람은 책을 읽어도 두 사람 모두 기억을 하니
우리는 정말 많은 걸 깨닫고 기억할 수 있게 된 거지.
우리 형제는 만나는 사람들 모두에게 이곳에 흙을 덮어 나무와 꽃을 심어야한다고 이야기했지.
하지만 많은 사람들은 너무나 많은 쓰레기 때문에 아무 것도 살 수 없을 거라며 고개를 흔들었지.
우리 형제는 숲을 살려내는 식물의 힘을 알기 때문에 포기하지 않고
몇 몇 사람과 힘을 합쳐서 이곳에 씨를 뿌리고 작은 나무들을 옮겨 심었지.
그런데 몇 년 지나서 정말 기적처럼 이곳저곳이 숲이 되었어.
우리는 저기 여의도, 그때는 너섬으로 부르는 곳 까지 가서
옛날 어부시절에 우리와 놀던 맹꽁이들을 이리로 데려왔어.
마침 거기도 아파트와 빌딩들이 너무 많아져서 맹꽁이들이 살 데가 없었는데,
맹꽁이들은 우리를 믿고 여기로 온 거야.
그래서 여기가 맹꽁이 숲이 된 거지.
우리는 맹꽁이 숲에 작은 정자를 짓고 살면서 어려운 일이 있을 때마다 서로 도와주었지.
<화살나무 기름 벌레>
맹꽁이들을 숲 밖으로 내쫓고 원숭이가 대장이 되었다고 했잖아.
그런데 문제가 생겼어.
숲 밖으로 도망가지 않도록 원숭이가 다람쥐나 토끼같은 동물들을 묶어놓으면
숲을 지나던 사람들이 자꾸 풀어주는 거야.
그때 나와 동생은 맹꽁이 숲 입구에 있는 정자의 마루 밑에 갇혀 있었는데,
어느 날 원숭이가 찾아왔지. 원숭이는 친절한 얼굴로 웃으며 우리에게 퀴즈를 내었어.
“낮엔 그냥 나무였다가 밤에는 동물이 되는 것은?”
우리 형제는 사나운 원숭이 앞에서 자기도 모르게 웃으며 말했지.
“그런 건 없어, 있을 수가 없지. 화살나무 기름을 바른다면 모를까?”
우리 쪽으로 원숭이가 가까이 얼굴을 들이대며 물었어.
“역시 박사님들은 모르시는 게 없네요. 화살나무 기름이라고요? 그게 뭐지?”
우리는 갑자기 기분이 좋아졌어.
내가 아는 걸 남에게 알려주는 것만큼 기분 좋은 일을 없거든.
또 원숭이가 그렇게 웃는 얼굴은 처음이었어. 내가 말하려는데 동생이 먼저 말했지.
“화살나무 기름은 말이야,
그건 기름처럼 보이지만 현미경으로 보면 아주 작고 작은 딱정벌레들이 모여 있는 거야.
이 벌레들은 해가 뜨면 햇빛에 껍질이 딱딱해지지만,
해가 지면 다시 물처럼 녹아 식물의 줄기 속으로 숨어버리지.
이 기름을 바르고 햇볕을 쬐면 사람의 살이든 동물의 털이든 나무껍질처럼 변해서 못 움직이는 거야.
물론 햇빛이 사라지면 살이나 털 속으로 스며들어서 아무 것도 없는 것처럼 사라지게 되고
사람이나 동물은 다시 움직일 수 있게 되는 거지.”
그렇게 말하자 원숭이가 다가와서 우리를 풀어주면서 말했어.
“화살나무가 어디에 있는 지도 알고 있겠지?
그걸 구해다 주면 다시는 묶어두지 않겠다고 약속할 게.”
우리는 잘 되었다 싶었어. 하늘공원에도 화살나무를 많이 심었거든.
그래서 해가 질 무렵 커다란 통에 이제 막 기름으로 변한 벌레들을 담아서 갖다 주었지.
그런데 우리가 원숭이를 너무 믿었어.
밤이 지나고 해가 뜰 무렵에 원숭이가 자고 있는 우리 몸에 기름을 모두 뿌린 거야.
우리 몸이 금방 나무처럼 딱딱하게 굳어버렸지.
원숭이가 기분 나쁘게 웃으며 말했어.
“너희들은 아는 게 너무 많아.
그게 너희를 살리기도 하지만 죽일 수도 있지,
사슴이 멋진 뿔을 자랑하지만 그것 때문에 사냥을 당하는 것처럼 말이야. 아무튼 많이 고마워.”
원숭이는 자고 있던 다른 동물들의 몸에도 화살나무 기름을 발랐지.
해가 뜨자 숲 속의 동물들은 모두 나무로 깎아서 만든 것 같은 조각상이 되었어.
<꽃집 할머니의 진돗개>
낮에 동물들이 나무처럼 굳어서 움직이지 못하는 동안에
원숭이는 보리수나무 아래나 개울의 큰 돌 위에서 낮잠을 잤지.
밤이 되어 동물들이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오면
원숭이는 동물들을 모아 놓고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도록 했지.
어쩌다 도망가는 동물들도 있었지만 소용이 없었어.
아침이 되면 다시 나무 조각으로 굳어져서 원숭이가 다시 잡아다
다리에 쇠사슬을 꽁꽁 묶어두었거든.
그런데 원숭이는 동물들이 자꾸 도망가서 잡아오는 게 귀찮게 느껴졌어.
어느 날 이른 아침에 원숭이는 화살나무 기름이 든 검은 병을 들고
저기 큰 길 건너 면허시험장 쪽 커다란 건물 뒤의 꽃집으로 갔지.
그 집에는 커다란 진돗개가 한 마리가 있었는데,
낮에는 할머니가 대문을 열어두고 진돗개를 묶어두지만, 밤에는 대문을 걸어 잠그고 개를 풀어두지.
살찐 얼굴이 꽃집 이야기를 하자 할아버지가 갑자기 끄-응 하고 한숨을 쉬었어.
살찐 얼굴이 잠깐 멈췄다가 다시 말을 이어갔어.
원숭이는 살짝 벌어진 대문 틈으로 들여다보면서 끽, 끽 소리를 냈지.
진돗개가 그걸 보고 달려와 대문 틈 사이로 한 쪽 다리와 입을 내밀고 컹컹 짖었지.
원숭이가 그때를 놓치지 않고 입에다 화살나무 기름을 부었어.
기름이 햇볕에 닿자마자 개의 뾰족한 이빨과 긴 혀, 왼쪽 발이 금방 나무처럼 굳어졌어.
원숭이는 이번에는 닫힌 대문을 활짝 열어젖혀두고는 맹꽁이숲 쪽으로 있는 힘을 다해 달렸어.
진돗개는 숲까지 끈질기게 따라왔지만 굳어버린 왼쪽 발 때문에 이전만큼 빠르지는 않았어.
진돗개가 오른발로 원숭이를 붙잡으려고 할 때,
원숭이는 휙 돌아서서 화살나무 기름을 개의 온몸에 부어버렸어.
그날 저녁이 되어 개가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오자, 꽁꽁 묶인 개에게 원숭이가 말했어.
“나를 기억 못하나? 나는 너를 똑똑히 기억하지.
내가 어렸을 때, 우리 엄마가 꽃집에 놀러갔을 때 내 귀를 물어뜯었잖아.
너는 힘이 세고 사납지만, 나도 이제는 너보다 더 힘이 세고 빨리 달릴 수 있지.
이제부터 너는 내 부하가 되는 거야.
내가 시키는 대로 하지 않고 도망이라도 가면,
꽃집 할머니까지 나무 조각으로 만들어 이곳에 데려올 거야. 알겠어?”
살찐 얼굴이 거기까지 말했을 때 할아버지가 눈물을 흘리면서 혼자 말했어.
재경이도 박사들도 알아듣지 못하게 작은 목소리였어.
“우리 사루가 틀림없어! 그 사나운 꽃집 개에게 물려서 혼이 났지!
그런데 어쩌다 그렇게 못된 원숭이가 된 거야, 불쌍한 녀석 같으니.”
그렇게 해서 꽃집 진돗개는 맹꽁이 숲 원숭이 대장의 부하개가 된 거야.
원숭이를 쫓아다니면서 무슨 일이든지 시키는 대로 하게 된 거지.(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