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지공원 맹꽁이숲의 비밀(연재, 5)

by 박독수

제3 부


1. 비밀을 알게 되다


<다시 아기곰에게>


할아버지와 재경이는 짜장면을 먹었어.

보통 때보다 저녁밥을 빨리 먹은 셈이지만, 짜장면은 역시 맛있었어.

이사 온 날 한 번 먹고는 못 먹었거든.

할아버지와 재경이는 해가 지기 전에 관리사무소에 가서 할아버지가 두고 오신 안경을 되찾았지.

그리고는 두 사람은 아기곰에게 갔어.

하지만 아기곰 등에는 앉지 않고 바로 옆에 있는 그냥 보통 의자에 나란히 앉아 기다렸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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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지공원에 해가 졌지만 금방 깜깜해지지는 않아.

무슨 공사를 하는지 바쁘게 움직이던 포클레인 소리가 그치면

저 멀리 키 작은 해바라기 화분이 있는 관리사무소의 뒤편이 먼저 어둑어둑해지지.

다음에는 아까 바둑이 고양이가 앉아있던 정자 아래가 어두워지고,

그 옆에 공원지도와 푯말들의 큰 글씨가 잘 보이지 않게 되지.

고개를 돌리면 보리수나무 그늘 아래 임금의자의 나무바퀴 쪽이 캄캄해지고,

화살나무, 모감주나무 밑동도 캄캄해지고 이름표도 안 보이게 되지.


재경이가 아기곰에게 다가가서 얼굴을 만졌어.

어두워질수록 나무조각이 아니라 원래의 모습으로 천천히 변했지.

오늘도 많이 울었는지 꼭 감은 눈 밑이 얼룩덜룩 더럽고 물기가 있었어.

재경이가 그걸 손가락으로 닦아주며 말했지.


“아기곰아, 내가 왔어. 많이 기다렸지? 늦게 와서 미안해.

근데, 나도 아직은 어른이 아니거든. 혼자는 올 수 없었어."


“그럼, 누가 같이 온 거야?” 아기곰이 감았던 눈을 천천히 뜨며 말했어.


“응, 할아버지랑 왔어. 할아버지한테 너 얘기도 했어.”


재경이가 손짓으로 할아버지를 불렀어.

할아버지가 조심조심 옆으로 오셔서 아기곰의 얼굴을 들여다보다가

갑자기 생각난 듯 주머니에서 든 안경을 꺼내 쓰셨어.


“아니, 이런 일이 어떻게...”


할아버지는 믿을 수 없다는 듯이 아기곰의 얼굴을 한참 들여다보시고,

등의 털을 손으로 어루만져 보셨어.


“할아버지, 저기 쌍둥이 박사한테 가야 해요.

아기곰아, 이제 할아버지랑 내가 너와 엄마를 구해줄 거야. 조금만 기다려. 이따 다시 올게.”


할아버지가 조금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으셨지만,

두 사람은 곧 조용조용 키 큰 나무와 풀들의 그림자 속에 숨어서 쌍둥이 박사에게까지 갔지.



<쌍둥이 박사의 눈물>


꾸부정하게 서서 키가 큰 쌍둥이 박사의 얼굴을 들여다보는 할아버지의 안경 속 두 눈이

쌍둥이 박사의 네 개의 숟가락 눈과 그 안을 굴러다니는 콩자반 네 개를 따라다녔어.

할아버지는 금세 땅바닥에 주저앉으며 말헀어.


“어허, 참,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나. 믿을 수가 없네.”


할아버지가 말하자 마른 얼굴의 신하가 가느다란 목소리로 말했어.


“보고도 못 믿는다니, 당신은 참 어리석은 게 아니요?

어린 아이만도 못하군.”


“아니, 이 나이 되도록 이런 일은 처음이라서 그렇지. 요즘 같은 세상에 이걸 누가 믿겠어?”


“사람들은 제 눈으로 봐야 믿는다며 잘난 척을 하지.

그건 아주 좁은 생각이야. 보지 않고도 믿는다면 얼마나 더 큰 세상을 볼 수 있는데...”


“쯧쯧, 더 큰 세상을 보면 뭐 할 건데?

이렇게 움직이지도 못하면서,

게다가 낮에는 말 한마디 못하는 나무토막이나 되는 주제에 입만 살아 있구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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쌍둥이 박사가 할 말을 잃었는지 얼굴을 돌려 서로 마주 보았어.

두 얼굴 모두 갑자기 아주 슬픈 표정을 지었지.

콩자반이 아래로 축 처지고 숟갈 뚜껑이 닫히는가 싶더니 눈물이 주르륵 흘렀어,

마치 아빠 수저에서 짜장면 국물이 쏟아지는 것처럼 재경이의 얼굴에 여러 방울 떨어졌지.

이번에는 살찐 얼굴의 박사가 말했어.


“맞아, 맞아. 우리는 아무 쓸모가 없어. 아는 게 많으면 뭐 하나, 아는 척하다 이 꼴이 된 거야.

한강에서 물고기 잡던 옛날이 정말 그리워.

저 철부지 원숭이 하나를 못 이기고 이렇게 꼼짝없이 서 있잖아.

차라리 낮에 누가 우리를 뽑아다가 불에 태우면 좋으련만. 흐흐흑.”


“이거 참, 처음 만난 사이에 미안하게 되었소.

자세히는 모르지만 뭔가 딱한 사정이 있는 것 같은데, 내가 도울 수 있으면 좋겠소.

여기 재경이도 있으니 이제 눈물을 그치시오.”


“그래요, 박사님. 할아버지는 좋은 분이셔요. 그만 우세요.

지난번 말씀하신 것처럼 이 맹꽁이숲의 비밀을 얼른 알고 싶어요.”


<착한 맹꽁이와 원숭이의 배신>


마른 얼굴이 여전히 우는 동안 살찐 얼굴이 말했어.


“그래, 알았다. 너랑 약속한 게 기억난다. 그리고 할아버지는 좋은 사람이란 건 나도 알아.

아이들의 이야기를 귀담아듣는 어른은 많지 않거든.

더구나 밤에 이런 곳까지 같이 와주는 사람은 정말 없을 거야.

지금부터 하는 이야기는 너랑 할아버지에게 처음 들려주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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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숲은 밤이 되었어.

그렇지만 저기 큰길 건너 높은 사각형 건물들 위로 둥그런 달이 떴어.

아주 동그랗지는 않지만, 그 달빛에 살찐 얼굴의 반짝이는 콩자반 눈동자가 반짝거렸지.

가느다란 입술이 겨우 들릴만하게 말했어.


“이곳은 원래 맹꽁이들이 주인이었어.

개구리나 두꺼비도 있었지만 맹꽁이들이 훨씬 많았지.

맹꽁이들은 착해서 다른 동물들이 이곳에 오더라도 쫓아내지 않았어.

말똥구리, 사슴벌레 같은 곤충들뿐 아니라 가끔은 토끼나 다람쥐,

너구리 같은 작은 동물들이 놀러 오기도 했지.


그러니까 3년 전 가을이었어.

작은 원숭이 한 마리가 나타났어.

저기 거인 두꺼비 자기 등 위에서 낮부터 자고 있던 걸

저녁때가 되어서야 두꺼비가 알고 다른 동물들에게 말했지.

원숭이는 어떻게나 많이 울었는지 눈이 빨갛고 배가 고 파보였어.

착한 맹꽁이들이 먹을 걸 가져다주고,

대장 맹꽁이는 커다랗고 속이 빈 나무통에 마른풀을 채워서

아늑한 집도 만들어주었지.

다행히 그 해 겨울은 춥지 않아서 원숭이도 기운을 차리고 봄을 맞게 되었어. “


살찐 얼굴이 갑자기 말을 멈췄어.

바람이 휘-익하고 지나자 키 큰 풀들이 샤악- 샤아샥 소리를 내었지.

새들이 앉아있는 나뭇가지가 휘청하는가 싶더니 제자리로 돌아가고,

냇가 쪽 보리수나무 밑에 서있는 부하개의 눈빛이 반짝이는가 싶더니 금방 꺼졌어.

살찐 얼굴이 다시 말하기 시작했지.


“나무에도 이름이 있는 것처럼 저기 개울에도 이름이 있지. 난지천이야.

말라있던 개울이 봄비가 오자 물이 많아졌어.

원숭이는 개울가에서 노는 걸 좋아했어. 밤에도 징검다리의 가장 커다란 돌 위에서 자곤 했지.

그런데 어느 날인가는 아침이 되어도 잠에서 깨질 않는 거야.

맹꽁이들과 다른 동물들이 가서 아무리 흔들어 깨워도 소용이 없었어.

원숭이 입에서 무언가를 토한 것처럼 썩은 기름 같은 나쁜 냄새도 나고

자주 이상한 소리를 내서 저러다 죽으려니 하고 모두 슬퍼했지.

예전에도 어린 맹꽁이나 작은 동물들이 개울가에서 사람들이 먹다 남긴 술이나,

어딘가에서 흘러온 자동차 기름을 먹고 죽은 일이 있었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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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마침 나와 동생이 생각난 게 있었어.

옛날 책에서 읽었던 거지. 썩은 기름을 잘못 먹어서 병이 났을 때는

유자나무 열매로 차를 끓여 먹이면 혹시 나을 수도 있으니 한 번 해보자고 대장 맹꽁이에게 말했지.

마음씨 착한 대장 맹꽁이는 원숭이를 그냥 죽게 할 수는 없으니 그 방법이라도 써보자고 했지.

잠자는 원숭이의 입을 벌려서 유자나무 차를 먹게 한 지 이틀째 되는 날 저녁이었어.

신기하게도 개울가 큰 돌 위에 있던 눕혀있던 원숭이가 잠에서 깨어나 스스로 올라왔어.

그런데 눈빛이 이상했지. 눈이 새파랗게 빛나는 거야.

그리고는 모여든 맹꽁이들과 동물들에게 살려주어 고맙다는 말 대신 사나운 목소리로 말했어.

오늘부터 자기가 이 숲의 대장이라나? 당연히 대장 맹꽁이가 반대하며 말했지.

여기는 아주 옛날부터 맹꽁이들이 모여 살았고,

어른 맹꽁이들이 몇 시간씩 회의를 해서 대장이 될 만한 후보자를 고르고 난 후,

후보자 중에 가장 나이가 많은 맹꽁이부터 찾아가 대장이 되어 달라고 하고,

그 맹꽁이가 오케이를 해야 대장이 되는 거라고.

원숭이도 대장이 될 수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 건 대장이 되고 싶은 자신이 아니라

다른 맹꽁이나 동물들이 뽑는 것이라고.”


<대장에서 ‘대왕’으로>


살찐 얼굴이 목이 막히는지 기침을 하자 눈을 감고 있던 마른 얼굴이 이어서 말했어.

“원숭이의 눈이 더 파랗게 빛나는가 싶더니, 바로 옆에 노란 꽃이 핀 산수유 나뭇가지를 꺾었어.

원숭이는 그 가지를 휘두르며 말했지. 그럼 다음 날 아침에 대장을 새로 뽑자고.

그러고는 원숭이는 밤사이에 모든 맹꽁이들을 한강으로 쫓아냈어.

대장 맹꽁이는 저기 수돗가에 있는 물통 속에 가두었고.

우리도 그때부터 여기에 이렇게 묶여 있게 되었지.

해가 뜨고 대장을 새로 뽑는 시간이 되었지만 맹꽁이들은 다시 돌아올 수 없었어.

몇몇 맹꽁이들이 죽을힘을 다해 돌아오려 했지만

강가의 도로를 달리는 차들 때문에 어쩔 수가 없었지.

다른 동물들은 너무나 겁이 나서 원숭이를 대장으로 뽑을 수밖에 없었어.”


듣고만 있던 재경이가 마침 생각난 듯 물었어.


“원숭이는 지금 여기 없다고 들었는데, 그럼 언제쯤 돌아오나요?”


할아버지도 침을 한 번 꼴딱 삼키며 마른 얼굴의 대답을 기다렸지.


“원숭이는 보름달이 뜨기 하루나 이틀 전에나 돌아올 거야.

지금까지 그랬거든. 그렇게 맹꽁이숲의 대장이 되었지만, 남아있는 동물들이 별로 없는 거야.

게다가 힘이 날마다 세져서 부하를 더 많이 만들고 싶었던 원숭이는

여기저기 다니며 동물들을 잡아 이곳으로 데려오지.

처음에는 좀 순한 동물들을 잡아왔는데, 요새는 성질이 사납고 힘이 센 동물까지 잡아오고 있어.

저기 두꺼비 앞에 괴물들 보이지?

정말 무시무시한 괴물들인데, 원숭이가 작년에 저 괴물들을 잡아오더니

이제부터 자기는 대장이 아니라 대왕이라는 거야.

저 괴물들도 힘이 아주 세서 그동안 왕 노릇을 했는데

이제는 자기의 부하가 되었으니 자기를 부를 땐 대왕님이라고 부르는 게 당연하다는 거지.

그때 저기 보리수나무 밑에 임금의자를 만들고 부하개를 늘 옆에 서 있게 했지”


할아버지가 갑자기 마른 얼굴에게 물었지.


“혹시 원숭이 대왕의 왼쪽 귀를 본 적이 있소?”


“왼쪽 귀라고? 응... 잘 모르겠는데,

참, 처음 왔을 때부터 큰 모자를 쓰고 있었지. 맞아,

언제나 두 귀를 모두 가리는 커다란 모자를 쓰거나 스카프를 두르고 있었지.

지금은 더 큰 털모자를 써서 보이지가 않지. 그건 왜 묻소?”


“아니, 궁금한 게 있어서,,, 나중에 말하겠소.

원숭이가 어떻게 그렇게 힘이 셀 수 있을까? 궁금하네. 하던 말을 계속 들려주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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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썩은 기름>


“응, 그건 내가 답하지요. 동생은 좀 쉽게 지치거든요.”


살찐 얼굴이 입을 열자 마른 얼굴은 눈을 감고 쉬거나 자는 것처럼 보였어,

살찐 얼굴은 그때부터는 어른에게 하는 말로 이야기했지.


“나랑 동생 생각으로는 썩은 기름 때문이요.

보통은 기름을 먹으면 죽거나 병이 날 텐데, 원숭이 대왕은 이상하게도 그 반대가 되는 게 아니겠소?

여기 처음 왔을 때도 썩은 기름 때문에 병이 나서 죽을 뻔했는데,

그 일이 있고 나서는 오히려 기름을 좋아하게 되다니... 우리도 그 이유를 잘 모르겠소.

아무튼 원숭이 대왕은 보름달이 뜰 때마다 부하들을 데리고 어딘가로 행차를 가는데,

갔다 올 때마다 큰 통에다 기름을 담아 와서는 이 숲 어딘가에 숨겨놓고 꺼내 마신다오.

문제는 어디에 그렇게 썩은 기름이 많이 있다는 것인데, 우리도 그게 참 궁금하오.”


“거기 갔다 온 동물들한테 물어보면 안 되나요?” 재경이가 물었어.


“보통 사나운 동물이나 괴물들만 데려가지.

괴물들은 너무 사나워서 우리도 지금까지 물어볼 생각을 못했어.”


“그렇게 힘세고 사나운 괴물들이 원숭이한테 지다니, 원숭이 대왕은 정말 힘이 센가 봐요.”


“원숭이 대왕은 나와 동생한테 세상에 어떤 괴물이나 동물이 있는지,

어떻게 하면 물리칠 수 있는지 자주 물어보지.

우리는 아는 걸 말할 수밖에 없고,

원숭이 대왕은 우리 얘기를 들으면 아무리 먼 곳이라도 괴물과 동물이 있는 곳으로 찾아가 잡아오는 거야.”


“박사님들은 어떻게 세상의 괴물과 동물에 대해 그렇게 많이 아시는데요?”


“응, 그건 좀 긴 이야기가 될 텐데,,, 그럼 우리 이야기부터 시작하지.”(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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