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지공원 맹꽁이숲의 비밀(연재, 3)

by 박독수


제2 부


1. 괴물원 탐험


<외할머니와 함께>


“재경아, 아빠가 곧 돌아오신대.

그런데, 집으로는 곧장 못 오고, 병원으로 가서 검사받고 치료도 받아야 한대.”


“그럼 몇 밤이나 자야 오는 거야?”


“그 건 아직 알 수 없지.

그래도 아빠가 아주 먼 외국이 아니라 우리나라에 와 있으니 안심이다. 그치?”


아빠가 돌아오는 대로 맹꽁이 숲에 가려고 했는데,

도대체 얼마나 더 기다려야 하지?

재경이는 지난번처럼 자기 방으로 들어가 문을 꽝 닫았어.


어느 날 아침, 집에 외할머니가 오셨어.

화장실 휴지가 많이 들어있는 커다랗고 무거운 비닐봉투를 들고 말이야.


“아이고, 힘들어! 집들이는 나중에 하더라도, 우리 재경이, 재연이 보고 싶어서 기다릴 수가 있어야지.”


빨간 윗도리에 빨간 치마, 빨간 가방을 든 외할머니가

현관문에서 빨간 신발도 벗지 않고 재경이를 꼭 끌어안아주셨어.

재경이는 신발을 벗으려고 현관에 주저앉은 할머니에게 말했어.


“할머니, 우리 동네에 커다란 공원이 있어요.

거기 가면 보리수나무도 있고, 꿩도 있어요. 이따 나랑 같이 가요.”


“뭐라고 꿩이 있다고? 지난번 갔을 때는 못 본 것 같은데,

재경이 너, 꿩이 어떻게 생겼는지 알고나 말하는 거니?”


엄마가 조금 이상하다는 듯이 재경이를 쳐다봤어.

재경이는 속으로 아차차 하고 놀랐어. 공원에 혼자 간 걸 엄마가 알면 안 되는데...


“아니, 지난번에 아빠가 누구한테 들었다고 말해줬거든.”


점심을 먹고 나서, 드디어 재경이는 외할머니랑 공원에 가게 되었어.

물론 할머니 손을 꼭 잡고 걷긴 했지만 횡단보도를 건널 때까지 만 이야.

나무다리를 지날 때도 씩씩하게 앞장서서 건넜지.

넘어진다고, 천천히 가라고 할머니가 뒤에서 몇 번이나 말했지만,

이제 재경이는 가는 길을 똑똑히 기억할 수 있어서 망설일 필요가 없었지.

얼마 지나지 않아 괴물원에 도착했을 때 외할머니가 숨찬 목소리로 말했어.


“재경아, 좀 천천히 가야지, 할머니 힘들어요!

그런데 여기 정말 좋구나, 시냇물도 졸졸졸 흐르고, 나무도 많고.

저 조각상들은 누가 다 만들었다냐? 정말 솜씨가 좋네.”


외할머니가 입구의 긴 나무에서 앉아 손으로 부채질을 하시고

물을 조금 마시더니 다시 일어나서 한참 동안 여기저기 휴대폰으로 사진을 찍었어.

당연히 임금의자에 앉아 나뭇가지를 멋있게 치켜든 재경이도 여러 번 찍어주셨지.

괴물원에 아주 오래 있진 못했지만, 재경이는 그래도 기분이 아주 좋았어.

집에 돌아왔을 때 외할머니가 엄마한테 말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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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재경이가 초등학생이 되더니 아주 씩씩해졌다.

공원이 정말 넓은데, 성큼성큼 길도 잘 찾아가고. 다 컸어, 이제 혼자 다녀도 될 것 같아.”


“엄마, 애 앞에서 그런 소리 하지 마세요.

나도 아직 이 동네가 낯설어서 어디가 어딘지 잘 모르겠던데...”



<엄마의 외출>


아빠는 아직 병원에 입원 중이지만, 재경이는 이제 학교에 가게 되었어.

그런데 일주일에 딱 두 번, 화요일과 목요일 뿐이야.

학교는 버스가 다니는 큰길 반대편, 아파트 후문 쪽으로

다른 아파트 단지를 질러가면 훨씬 빨리 도착하는 곳에 있지.

재경이는 이제는 엄마가 데려다주지 않아도 얼마든지 혼자 갈 수 있어.


그런데, 학교에 가면 마스크도 써야 하지만, 친구들과 크게 말하지도 못하고,

수업이 끝나면 친구들과 놀지도 못하지. 재미가 없었어.

재경이는 학교보다는 괴물원에 가고 싶었지.

재경이는 아빠 컴퓨터로 외할머니가 찍어준 괴물원 사진을 보며

새로 사 온 색깔 찰흙으로 동물, 괴물들을 만들며 놀았어.

슬라임보다는 찰흙으로 만드는 게 훨씬 쉽고 굳고 나면 딱딱한 느낌이 아주 비슷하다고 생각했지..


학교에도 가지 않은 어느 날 낮이었어.


“재경아, 이따 저녁에 작은 이모네 가자.

이모가 낳은 애기가 집으로 와서 외할머니랑 같이 애기 보러 가기로 했거든.

너한테 외사촌 동생이야. 거기다가 너 같은 남자 아기야.

친척이지만 너한테는 처음 남동생이야.”


“싫어. 나는 애기도, 동생도 싫거든.

날마다 집에서 재연이 보잖아. 잠자고 우유 먹고 똥만 싸는 걸 봐서 뭐 해?

가려면 엄마만 가. 그리고 나, 찰흙 괴물 만들고 있어.

빨리 만들어서 아빠 오시면 보여줘야 해.”


재경이가 자기 방으로 들어가는데 엄마가 따라오며 말했어.


“그래? 정말 혼자 있을 수 있는 거야?

조금 늦게 돌아올 수도 있어. 서 너시 쯤에 나갈 거거든.”


한 참 동안 찰흙으로 하마 괴물을 만들고 있는데

거실에서 엄마의 전화소리가 들렸어.

엄마랑 자주 가는 학교 앞 ‘빛나라 별들아 라별 분식집’에 배달을 주문하는 것 같았지.

그리고 다시 시간이 지나서 엄마가 재경이 방문을 열며 말했어.


“이따가 배고프면 식탁에 있는 김밥 먹어야 해.

주스는 냉장고에 있으니까 잊지 말고 꼭 같이 마셔.

어디 나가지 말고 집에만 있어야 해.”


그리고는, 드디어 엄마가 재연이를 데리고 외출했어.

재경이는 아직 완성이 안 된 찰흙 하마를 내려놓고 생각했지.


“그래, 오늘 혼자 괴물원에 가는 거야. 김밥이랑 주스 가지고 소풍 가는 거지.

지난번에도 혼자 갔었고, 그다음에 또 외할머니랑 갔다 왔는데 무서울 게 뭐야.

나는 겁쟁이가 아니라구!”


재경이는 작은 가방에 김밥과 주스, 그리고 찰흙 한 덩이를 넣고 집을 나섰어.

정말 학교에 가는 것보다 쉽게 아파트 앞 큰길 건너 공원으로 달려갔지.



<괴물원이 아니라 맹꽁이숲>


괴물원 숲의 나뭇잎들이 더 무성해지고

풀들의 키가 어떤 것들은 아빠보다도 더 커졌지.

나뭇잎이건 풀잎이건 모두 색깔이 아주 진해졌어.

그래서 지난번 보다 컴컴하게 보였지.

빨갛게 매달려 있던 보리수 열매 몇 개도

이제는 모두 나무 아래로 떨어져 말라붙었는데,

그중 몇 개를 개미들이 끌고 가고 있었지.


재경이는 오늘, 숲을 마음껏 구경하기로 했어.

올 때마다 전에 못 봤던 것들이 보였어.

오늘 처음 보인 건 마른나무 가지 위에 올라앉은 나무새들이었어.

어른 키만 하거나 그보다 훨씬 높은 나무 위에서

마치 누가 오나 살피기라도 하는 것처럼 이 쪽을 보거나,

저 쪽을 보거나 새마다 다른 방향을 보고 있었지.

어쩌다 바람이 휘익 불고 이상한 새소리가 날 때마다

재경이는 혹시나 하고 나무새들을 올려다봤어.

나뭇가지들이 잠깐 휘청이다 제자리에 멈추려고 할 때 자세히 봤지.


"음, 역시 아니야.

살아있는 새들이 아닌데 어떻게 소리를 내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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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가락 긴 의자도 보였어.

등받이 없는 긴 나무의자 끝에 하늘을 향해 좌-악 벌린 어른 손가락이 달렸어.

커다란 손톱과 손톱 밑에 주름도 있었어.

어딘가 아파서 괴로워하는 게 아닐까 재경이는 생각했지.


커다란 매미처럼 생긴 나무벌레도 있었어.

몸의 절반이 머리통이고 두 눈이 하늘을 향해 툭 나온 나무 곤충이

목줄을 맨 강아지처럼 나무에 걸려있었지, 이빨이 날카롭게 생겨서 아주 가까이 가지는 않았어.

그러고 보니 커다란 잠자리도 있고, 메뚜기도 있고, 밧줄에 묶인 불쌍한 소도 있고,

세상의 모든 동물들이 모두 모여 있네?

괴물원이라고 하기엔 보통 동물들도 많아서 다시 이름을 바꿔야 하나? 생각했지.


그런데, 오늘 알게 된 건데,

이 숲의 이름은 ‘맹꽁이숲’이야.

재경이가 올라온 길의 반대쪽에 멋있게 나무로 지은 작은 집이 있고,

그 집 바로 아래 나무 맹꽁이 두 마리가 서 있었지.

그리고 거기에 여기는 맹꽁이숲이라는 소개 글이 적혀 있는 걸

재경이는 처음으로 보게 됐어.

그리고 거기서 조그만 더 걸어가면

맹꽁이숲의 놀이기구가 그려진 지도가 있는 것도 보게 되었지.

그래, 그랬던 거야. 여기는 이제부터 괴물원이 아니라

난지공원 맹꽁이숲이야. 오늘 저녁에 아빠한테 전화해서 알려줘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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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그때, 시냇물 쪽에서 후드득 하는 소리가 났어.

맞아, 꿩이야.

지난번 원숭이 할아버지를 만난 날 보았던, 멋진 색깔의 커다란 새야.

재경이는 얼른 소리가 난 쪽으로 뛰어갔어.

그리고 시냇물 쪽을 내려다보았지.

꿩이 키 큰 풀 사이로 들어가는 게 보였어.

그런데 신기해서 좀 자세히 보려고 꿩이 들어간 쪽으로 다가가면

꿩이 후드득 하고 아주 멀지 않은 곳으로 다시 날아가 앉는 거야. 몇 번이나 그랬지.

마지막에 꿩이 풀 사이에서 다시 나오길 기다리다가

재경이는 꿩 쫓기를 그만두고 가까운 의자에 풀썩 주저앉았어.

갑자기 배가 고파졌어. 그래서 가방에서 김밥을 꺼내 먹었지.

목이 막히지 않도록 가끔씩 주스도 마시면서 말이야.


김밥을 거의 다 먹었을 때,

저 앞에 아주 귀엽게 생긴 아기곰 의자가 보였어.

가까이 가 보았지. 정말 귀여운 걸. 판다곰인가, 반달곰인가,

아무튼 유치원 때까지 갖고 놀던 곰 인형처럼 생겼네.

여기 누워서 자면 정말 좋겠다.

작은 가방을 베개처럼 베고 하늘을 향해 벌렁 누운 재경이의 두 눈에

파란 하늘과 흰 구름, 짙은 초록의 나뭇잎과 나무새 여러 마리가 들어왔지.

바람이 불 때마다 구름이 조금씩 움직였는데,

그 구름들이 맹꽁이숲의 어떤 괴물이나 동물들의 모습을 닮았을까 생각했지.

어디선가 향긋한 꽃냄새도 나고,

가끔씩 하얀 꽃잎이 나비처럼 날아와 얼굴에 앉았지만

재경이는 신경 쓰지 않고 그냥 두었어. 그러다가 그냥 잠이 들었나 봐.



2. 아기곰과 쌍둥이 박사


<말하는 아기곰>


“야, 나 힘들어, 무거워. 일어나라구”


재경이는 누군가 말소리에 잠에서 깼어.

그 사이 해가 졌는데, 아직 아주 캄캄하지는 않았어.

놀라서 벌떡 일어나 이리저리 둘러보았지만 아무도 없었어.


잘못 들었나,

다시 의자에 풀썩 주저앉았지.

“야, 너 무겁다고, 나 힘들다고 했잖아.

너는 정말 고약한 아이로구나.”


재경이는 깜짝 놀랐어.

의자가 딱딱하지 않고 뭔가 푹신하고 뭉클한 느낌인 거야.

그래서 다시 일어나 앉았던 자리를 손가락으로 꾹꾹 눌렀지.


“야, 그만해. 나를 그만 괴롭혀.

나처럼 불쌍한 아기 곰이 어디 있다고, 흑흑!”


재경이가 소리 나는 곳을 찾았어.

아기곰의 입이었어.

자세히 보니 얼굴에 진짜처럼 하얀 털이 나있고,

눈이 있는 곳에는 까만 털, 그리고 까만 눈이 보였어.

동그란 눈에서는 아주 조금이지만 눈물이 살짝 흘렀어.

재경이는 자기도 모르게 아기곰에게 말을 했어.


“아기곰아, 정말 미안해.

아까까지는 나무의자였는데, 어떻게 이렇게 된 거지?

도대체 어떻게 말을 하는 거야?”


“모든 걸 말하려면 너무 길어.

그런데 먼저 내 꼬리 쪽 등을 좀 만져주지 않겠니?

네 머리가 있던 곳이야. 거기가 좀 아프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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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경이는 정말 거짓말 같은 일이 일어났다고 생각했지만,

아기곰의 부탁을 들어줄 수밖에 없었어.

재경이가 폭신폭신한 등을 한참 동안 문질러주자 아기곰이 다시 말했어.


“나는 동물원에서 태어났어.

거기에서 지냈던 지난겨울까지는 사람들이 날 보러 많이 찾아왔는데,

이번 봄에는 아무도 안 왔어. 동물원이 문을 닫았대.

어느 누구도 먹을 걸 주지 않아서 엄마랑 동물원을 탈출했지.

저기 큰길 건너 매봉산까지 도망 와서 숨어 살다가

원숭이 대왕에게 잡혀서 이리로 왔어.”


“원숭이 대왕? 그게 누군데?”


“나도 잘은 몰라. 아주 힘이 세고 사납다는 것 밖에.

궁금하면 저기 있는 쌍둥이 박사에게 물어봐.

그리고 혹시 저 쪽에 어른 곰이 있나 봐 줄래? 우리 엄마야. 엄마가 보고 싶어.”


“가서 보면 되잖아. 왜 너는 못 움직이는 거야?”


“응, 여기 있는 동물들은 낮엔 나무로 만든 조각상처럼 보이지만,

해가 지면 원래 모습으로 돌아와.

그래도 마술종 소리가 두 번 들릴 때까지는 움직일 수가 없어.”


“마술종이라고. 그건 또 뭐야? 누가 갖고 있는데?”


“누군 누구야, 원숭이 대왕이지.

원래는 마술사 거였는데, 원숭이 대왕이 뺏었대.”


“응, 그렇구나. 그러니까 원숭이 대왕이 얼음땡을 걸어놓은 거네.

그런데 원숭이 대왕은 지금 어디 있어? 이 숲에 있는 거야?”


“아니, 안심해도 돼. 지금은 먼 곳으로 동물사냥을 갔어.

어디로 갔는지는 아마 쌍둥이 박사가 알 거야. 나는 모르는 게 너무 많아.

궁금하면 저기 모르는 게 하나도 없는 쌍둥이 박사에게 물어봐.”


“쌍둥이 박사라고?”


“저기 원숭이 대왕 의자가 있잖아. 거기서 조금 떨어져 있는 나무 앞에 서 있는...

그런데 조심해야 해. 부하개가 눈치를 챌 수도 있어!”


“그래, 알았어. 조심할게. 정말 궁금하네. 잠깐 갔다가 다시 돌아올게.”(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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