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동물원’이 아니라 ‘괴물원’이야
<인정할 건 인정하자>
그런데 솔직히 말해서 아빠가 찾아낸 곳이 더 좋긴 했어.
숲도 더 우거져서 좀 어둡다싶게 그늘이 졌어. 하나도 덥지 않고 시원했지.
아빠가 말한 대로 커다란 나무 테이블과 의자도 여기저기 보였고.
“아빠, 저건 뭐야?”
재경이가 입구에 있는, 좁다란 검은 나무판을 겹겹으로 이어 만든
커다란 개구리 동상 같은 걸 보았어.
“글쎄다, 개구리인지, 두꺼비인지, 잘 모르겠는데...
근데 아빠는 두꺼비 같아, 둘이 비슷하긴 한데, 두꺼비가 훨씬 크거든.”
엄마가 나무 두꺼비상 앞에 있는 테이블 위에 바둑무늬 보자기를 깔고
먹을 걸 좌-악 펼쳐 놓았어.
마침 재연이는 자고 있어서 재경이랑 아빠는 여기저기 둘러보았지.
그런데, 이곳저곳에 나무로 만든
공룡, 거북이, 왕뱀, 악어, 왕잠자리 같은 동물들이 아주 많이 있었어.
“재경아, 여기 동물들이 참 많지? 누가 만들었을까?
정말 잘 만들었다. 신기하고 재미있네. 그치?
우리 여기를 나무 동물원이라고 부르자. 어때?
“아니야. 그냥 동물도 있지만, 이상하게 생긴 괴물들도 많아.
그러니까 괴물원이라고 해야 해. 맞지?”
“어 참, 그렇네. 그러고 보니 그냥 동물들도 좀 이상하고 사납게 생겼네.
그래 너 말대로 괴물원이라고 하자. 우리 재경이가 역시 똑똑하네!”
<임금님 의자>
재경이는 김밥이랑 딸기를 먹었어.
오랜 만에 가족이 모두 밖으로 나와서 그런지 너무 맛있었어.
재경이가 떨어뜨린 김밥에 큰 개미 몇 마리가 달려들긴 했지만,
파리도 모기도 한 마리 보이지 않았어.
아빠가 재연이에게 밥을 먹이고, 엄마가 커피를 마시고 있었지.
그 때 재경이는 명찰이 달린 나무 하나를 발견했어.
“아빠, 이 나무가 ‘화살나무’래. 이 나무로 화살 만드는 거야?”
“어, 재경이 이제 뭐든지 잘 읽네? 화살나무라고? 음, 아빠도 처음 보는데?
조금 기다려 봐, 인터넷으로 찾아볼 게. 음...화살을 만든다는 얘기는 없네.
그런데 어린 이파리를 먹을 수 있다고 나오는데? 무슨 맛일까?”
“아니, 화살을 어떻게 먹어?
쇠를 먹어도 안 죽는 괴물인가? 이상하다, 아빠, 그치?
여기 이 나무는 이름이 보리수래. 쌀보리 놀이할 때 그 보리인가? 어? 뭐가 달렸네?”
“보리수?
아빠도 책에서만 읽었는데, 이게 보리수라고?
아하, 보리수 열매인가 봐, 익으면 빨개져서 먹을 수 있는 거라네.
재경아, 이 나무 밑에서 부처님이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사람은 왜 죽고 사는지 깨달았다데.
너도 앉아 있어봐. 이렇게 부처님처럼 책상다리 하고, 사진 한 장 찍자.”
“사람은 왜 죽고 사는 건 데?”
아빠는 대답은 안 해 주고 재경이를 보리수 아래 앉히고는 여러 번 사진을 찍었어.
재경이는 이곳저곳에 여러 개의 팔을 벌리고 선 보리수 나무 그늘 아래에서
마치 임금님 자리 같은 커다란 나무 의자 하나를 발견했어.
그 옆에는 나무 개 한 마리가 서 있는데,
너무 사납게 생겨서 금방이라도 쫓아와 사람을 물 것 같았어.
그렇지만 재경이는 하나도 무섭지 않아.
마치 왕이나 된 것처럼 나무계단 세 개를 밟고 의자에 올라가 턱하니 걸터앉아 눈을 감았지.
손가락이 수도 없이 많은 바람이 풀섶에 숨은 아기 고양이라도 찾아내려는 듯
이 곳 저 곳을 더듬으면,
고양이가 아니라 나뭇가지에서 졸던 새들이 깜짝 놀라 후드득 날아올랐지.
그 중에는 투덜거리는 듯 끼릭끼릭 소리를 내며 흰 똥을 싸고 가는 놈들도 있었어.
<이건 살아있는 게 아니라구!>
“여보야, 여기는 내가 정리할 테니까 당신이 재연이 산책 좀 시켜주라”
아빠가 재연이를 데리고 왔어.
밥을 많이 먹었는지, 재연이도 아빠도 배가 불룩 튀어나왔어.
‘모감주나무’라고 쓰인 명찰을 단 나무 밑에 나무 울타리가 둘러쳐 있고,
그 옆에 나무 거북이 두 마리가 서로 얼굴을 마주 보고 있었지.
“아빠, 이거 뭐야, 글자야? 뭐라고 쓴 거야?”
“응, 그건 한문이야. 한문으로 ‘왕’이라고 쓴 거야. 거북이 왕인가 봐.”
재연이가 다가가서 거북이의 머리를 쓰다듬었어.
아빠가 재연이를 번쩍 안아서 거북이 등에 태웠지. 그리고 나서는 당연히 사진을 또 찍었지.
조금 떨어진 곳에는 등에 개구리 두 마리를 태운 새가 있었어.
“아빠, 새가 개구리를 태우고 어디로 가는 것 같아.
아빠도 저렇게 나랑, 재연이를 한꺼번에 업어줄 수 있어?”
“그럼, 당근이지. 이리 와 봐.”
아빠는 재연이를 앞으로 안고, 재경이를 등에 매달리게 하고는 뒤뚱뒤뚱 이곳저곳을 구경했지.
그런데 갑자기 재연이가 무섭다며 울먹이기 시작하는 거야.
마침 커다란 악어나 하마처럼 생긴 여러 개의 나무 조각상을 지날 때였어.
“야, 저건 그냥 나무란 말이야. 살아있는 게 아니야, 바보야!”
아빠와 재경이가 재연이를 달랬지만,
재연이는 정말 무서운지 아빠 품으로 파고들며 꼭꼭 숨었어.
아빠가 근처에 떨어져 있는 나뭇가지를 주워서 적당한 길이로 잘라주며 말했어.
“재연아, 울지마, 이제 용감하고 씩씩한 오빠가 이 나무창으로 괴물을 물리칠거야!”
재경이는 얼른 나뭇가지를 들고 나무 괴물들 앞으로 달려갔어.
그리고는 정말 용맹한 군인이라도 된 것처럼 나뭇가지로 악어의 머리를 두들겼지.
“이 괴물아, 우리를 괴롭히지 말고 사라져라. 에잇, 에잇.”
이제 악어가 막 항복하려고 하는데, 엄마의 목소리가 들렸어.
“여보야, 이제 그만 정리하고 가자. 재연이가 무서워하잖아.
숲이라 금방 어두워질 거야.
그리고 당신도 출장 준비해야지!”
재경이는 화가 났어.
오랜만에 소풍인데, 그냥 밥만 먹고 간다고?
엄마는 소풍와서도 재연이만 챙기다니. 그래서 엄마에게 소리쳤지.
“나랑 아빠는 여기 더 있다 갈거야. 엄마랑 재연이만 먼저 가.
깜깜해져도 나는 하나도 안 무서워.”
재경이는 땅바닥에 주저앉아 울기 시작했지. 아빠가 재경이를 달랬어.
“재경아, 아빠 출장 갔다 오면 또 오자.
그 때는 남자들끼리 아침에 와서 밤이 될 때까지 칼싸움 하고 놀자.”
3. 원숭이 할아버지
<코로나, 참 나쁜 놈>
재경이네가 소풍을 갔다 온 지도, 아빠가 외국으로 출장을 간 지도 벌써 여러 날이 지났어.
코로나 때문에 재경이는 학교도 못 가고 집에서만 놀았지.
“엄마,
아빠는 언제 오는 거야? 아빠랑 또 소풍 가기로 약속했는데...”
“엄마도 기다리고 있어요.
비행기가 없어서 못 오는 거니까, 아빠 보고 싶으면 전화하면 돼.”
“비행기가 없어? 코로나 때문이지,
그렇지? 엄마! 나쁜 코로나!”
재경이도 엄마랑 TV뉴스를 보고 알았어.
코로나라는 전염병 때문에, 마스크도 껴야 하고, 손도 자주 씻어야 하지.
초등학생인데 학교도 못가고, 이모나 외할머니네도 못가고,
바깥에는 엄마 자동차만 타고 다녀야 했어.
너무 심심했어.
“엄마, 나 괴물원에 가고 싶어. 아빠 오기 전에 우리끼리 한 번 더 숲에 놀러가자.”
재경이가 엄마를 보고 졸랐지. 당연히 엄마는 안 된다고 했지.
“엄마가 안 가면, 나 혼자라도 갈 거야. 맨 날 재연이랑만 놀아주고 나랑은 안 놀면서...
이사는 왜 왔어, 친구들도 하나 없잖아.
다시 지난 번 집으로 이사 가면 안 돼? 나 정말 심심하단 말이야.”
재경이는 자기 방으로 들어가서 문을 꽝 닫았어.
며칠인지 모르게 여러 날 비가 내렸어.
재경이는 엄마가 사 준 새로 나온 향기나는 슬라임을 갖고 놀았지.
아빠에게 영상통화로 토핑을 섞을 수 있는 슬라임을 보여주었어.
“아빠, 이 갈색 슬라임으로 지난 번 숲에서 보았던 괴물들을 만들면 정말 똑 같겠다, 그치?
이렇게 울퉁불퉁하게 만들 수도 있고.
아빠, 그 때 괴물원에서 찍은 사진 핸드폰에 있어?”
“아, 그 때, 재연이, 재경이 사진만 찍어서 별로 없는데...다음에 가면 많이 찍자.”
재경이는 괴물과 동물들의 모습이 잘 기억나지 않았어.
그래서 생각했지. 다음에 가면 똑똑히 봐 두어서 슬라임으로 잘 만들어 보겠다고.
<나 홀로 공원으로>
어느 날 낮에 재연이가 갑자기 먹은 걸 토하고 열이 났어.
엄마가 외할머니랑 이모랑 여러 번 전화통화를 했지.
“재경아, 재연이가 아파서 병원에 가야 하는데, 외할머니도, 이모도 서울에 안 계신다네.
코로나 때문에 너를 병원에 데리고 갈 수도 없어,
그러니까 지금부터 어디 나가지 말고 꼭 집에 있어야 해.
많이 늦으면 엄마가 집으로 전화할 거야.
재경이는 씩씩하니까 혼자 있을 수 있지?”
엄마가 재연이랑 나갔어. 재경이는 슬라임 놀이를 하려다가 문득 생각이 났어.
맞아, 오늘 나 혼자 숲으로 소풍을 가는 거야!
재경이네 집은 아파트야.
아파트 단지 앞에 큰 길만 건너면 버스 정류장이 있고,
그 뒤에 소나무 길을 따라 가다가 나무다리 너머 개울을 건너면 커다란 축구공이 그려진
‘월드컵공원’이 있지.
재경이는 아파트 쪽 건널목에서 신호등이 파란불로 바뀔 때까지 기다렸어.
차들이 많지 않았지만 어떤 차들은 아주 빠르게 지나갔어.
마침 자전거에 탄 채로 신호등을 기다리는 아저씨가 있어서 조금은 안심이 되었지.
파란불이 들어오자 재경이는 오른손을 번쩍 들고 길을 건넜어.
그래도 조금은 무서웠는지 길을 다 건넜을 땐 가슴이 콩딱콩딱 소리를 내는 것 같았지.
소나무 숲을 지나자 나무다리 밑으로 흐르는 개울물은 훨씬 많아지고 더 세차게 흘렀어.
풀들도 키가 더 커지고 나뭇잎도 짙고 푸른 초록색으로 변했지만,
재경이는 지난 번 소풍 때 갔던 길을 금방 찾아갈 수 있었어.
마랑 사진을 찍었던 유채꽃 밭이 저만치 보였는데, 가까이 가보니 꽃은 다 시들해졌어.
하지만 재경이가 꽃을 보러온 건 아니잖아?
재경이는 그 때 아빠가 찾아낸 까맣게 빨간 다리 건너 길을 따라 괴물원으로 쌩하고 달려갔지.
재경이는 전 번에 보아두었던 보리수 나무 밑으로 갔어.
그 때 보리수 열매는 초록색이었는데, 이제는 토마토처럼 빨간색이야.
몇 개는 땅바닥에 떨어져 있지. 재경이는 나무 의자 임금님 자리에 가서 앉았어.
물론 사나운 개가 옆에 서 있었지만 무섭진 않아. 나무로 깎아 만든 건데 뭐.
그렇게 조금 앉아 있다가 다시 내려와 풀섶에서 죽은 나뭇가지를 주웠어.
“에잇, 에잇, 지난 번에는 네가 운 좋게 살았지만, 이번에는 가만 두지 않겠다.”
재경이가 악어 모양의 나무 조각상을 향해 나뭇가지를 칼처럼 휘둘렀어.
악어는 꼼짝도 못하고 항복했지.
그래서 재경이는 악어 등에 올라가 하늘을 향해 팔을 쭉 펼쳤어.
그 때 갑자기 재경이가 올라온 입구 쪽에서 커다란 새가 후두둑 하고 날아올랐어,
제법 크고 색깔이 아주 멋있는 새였어. 그리고 나더니 왠 어른 목소리가 들렸어.
“어, 저거 꿩 아니야? 여기 꿩이 다 있네?”
흰 마스크를 안경까지 바짝 올린 왠 할아버지가 혼잣말을 하시며 재경이 쪽으로 다가왔어.
“너 누구니? 여기 혼자 온 거야? 무섭지 않아?”
재경이는 조금 무서워졌어.
대답하지 않으려다가 나뭇가지를 꼭 잡고 조그만 목소리로 말했어.
“지난 번에 엄마아빠랑 와 봐서 안 무서워요.
그리고 저는 이제 초등학생이거든요. 큰 길만 건너면 우리 집이예요.”
“아, 그게 월드컵 아파트지. 몇 동에 사는데?”
“309동이요.
“음, 그렇구나. 우리 아들도 그 단지에 살아.
그런데 얘야, 여기를 무서워하는 사람들도 있어.
여기는 옛날에는 쓰레기 산이었는데,
쓰레기를 흙으로 덮고 그 위에 나무와 풀을 심어서 이렇게 큰 공원이 된 거야.
지금도 땅 밑에서는 가스가 생겨서 흐린 날 밤에는
도깨비 눈처럼 파란 불빛이 이리저리 돌아다닌다는 이야기도 있지.”
재경이는 덜컥 겁이 났어.
해가 구름 속으로 들어가서 하늘이 조금 어두워지는 것도 같았어, 하지만 용기를 내어 말했지.
“그런데 할아버지는 여기 왜 오셨어요?”
“나? 나는 원숭이를 찾으러 왔어.
우리 할멈이 기르던 원숭인데, 할멈이 죽어서 밥을 안 먹는다고,
우리 아들이 여기로 데리고 왔다가 잃어버렸어.
3년이나 지났으니까 벌써 죽었는지도 모르지만,
이쪽을 지날 때마다 혹시나 해서 찾아보는 거야.
그건 그렇고, 여기 혼자 있으면 안 된다.
너, 이름이 뭐냐? 나랑 얼른 집으로 가자.”
재경이는 할아버지의 손을 잡고 숲을 지나 공원을 나왔어.
할아버지는 큰 길 건너 재경이네 아파트까지 데려다주었지.
다행히 엄마는 아직 집에 오지 않았어.
혼자 숲에 갔다 온 일은 아빠가 올 때까지는 비밀이야. 아무래도 엄마가 알면 안 되겠지?(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