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동화를 서울 마포구에 있는 월드컵 공원 유아숲체험공작소의 이름 없는 조각가들에게 드린다.
제1부
1. 가족 소풍
<이젠 초등학생인 걸!>
재경이는 여덟 살, 초등학교 1학년이야.
근데 하필 이 번 봄에 이사를 와서 동네에 친구가 없어.
또 말이야,
신입생이니까 학교에 가는 거 많이 기다렸는데 코로나라는 전염병 때문에 오지 말라는 거야!
당연히 선생님도 새 친구도 거의 만날 수 없는 거지.
갑갑하고, 심심하고, 코로나 정말 싫지?
재경이한테는 재연이라는 동생이 있어. 세 살 여자아이야.
재경이 생각에 엄마는 언제나 재연이한테만 신경을 써.
재경이가 가끔 심술을 부리면, 엄마는 그때마다
“재연이는 아직 아기잖아, 너도 아기 때는 너만 봐달라고 했어.
이제 초등학생이 됐으니까, 그리고 오빠니까
재경이가 조금 양보하는 거야.”
흥, 도대체 언제까지 아기야. 우유 안 먹은 지가 언젠데...
하지만 어쩌겠어, 유치하게 아기랑 싸울 수는 없잖아?
재경이는 그래서 아빠랑 많이 놀아. 아빠는 자주 밤늦게 집에 돌아오지만,
쉬는 날이나, 어쩌다 일찍 올 때는 함께 배드민턴도 치고, 슬라임을 갖고 놀기도 하지.
근데 사실 아빠는 슬라임을 어떻게 갖고 노는지 하나도 몰라.
아무리 말해줘도 금방 잊어버리나 봐.
아빠는 대충대충 엉터리야.
그래도 아빠랑 놀다 보면 심심하지는 않아.
그런데, 새 집으로 이사를 와서는 집 정리한다고 엄마 아빠 모두 재경이를 본체만체하는 거야.
아니 거꾸로 재경이한테 재연이랑 좀 놀아주라는 거야.
재경이는 생각했어.
이게 도대체 말이 돼, 저런 느림보 꼬맹이랑 내가 어떻게 놀겠어.
배드민턴도, 슬라임 놀이도 쟤가 어떻게 하겠냐고!
재경이는 처음 그 말을 들었을 때 눈물이 날 뻔했어.
그런데 다행이야.
눈물이 눈 밖으로 주르르 흐르진 않았고,
울음소리도 내지 않았어.
우는 건 이게 좀 창피하잖아. 재경이도 이젠 초등학생인걸!
<마스크는 정말 싫어>
“이렇게 바로 집 앞에 넓은 공원이 있는 줄 몰랐네.
개울도 있고, 연못도 있고, 참 예쁘다.
재경아, 저기 오리도 있다. 저기 좀 봐!”
흰 모자에, 검은 선글라스, 다시 흰 마스크를 쓴 사람이
재연이가 탄 유모차를 밀면서 엄마 목소리로 말했어.
“응, 나도 저기 산 위에 ‘하늘공원’만 있는 줄 알았지, 이렇게 평지에도 따로 공원이 있는 줄은 몰랐네”
이리 삐죽, 저리 삐죽 제멋대로 머리에 검은 마스크를 코밑으로 내려써서
코까지만 아빠인 사람이 말했어.
아빠는 등에 배낭을 메고, 오른쪽 어깨에는 큰 가방을 둘러멨어.
왼 손에도 다른 짐을 들어서 조금 힘들고 숨이 찼나 봐.
재경이는 아빠의 청바지 뒷주머니를 붙잡고 따라갔어.
오늘 재경이네는 집 앞 큰길 건너 ‘난지공원’으로 소풍을 가는 거야.
매일 집에만 있다가 나와서 그런 지 재경이는 기분이 아주 좋았어.
킥보드를 탄 바람이 키 큰 소나무 사이를 요리조리 빠져나갈 때마다
풀이랑 나뭇잎들이 자기도 태워달라는 듯이 팔랑팔랑 춤을 추었어.
“재경아, 마스크 내리면 안 돼! 빨리 코까지 덮으라고.”
“아빠도 입만 가렸는 걸? 여기는 사람도 우리 말고는 없잖아!”
엄마가 자주 뒤를 돌아보며 마스크를 제대로 쓰라고 했지만 재경이는 못 들은 척했어.
코를 덮으면 나무랑 풀 냄새를 못 맡잖아.
그럼 집에 그냥 있는 게 좋지 바깥으로 소풍은 왜 오는 거야?
“여보야, 저기 좀 봐. 유채꽃 아니야?”
맨 앞에서 유모차를 밀고 가던 엄마가 뒤를 돌아보며 말했어.
아빠가 허둥지둥 서둘러 걷자, 재경이도 덩달아 빠른 걸음으로 노란 꽃이 무더기로 핀 곳까지 갔어.
“아, 맞다, 맞아. 유채꽃이야. 아직 지지 않았네. 우리 작년에도 제주도에서 봤잖아!
정말 예쁘다. 우리 여기서 사진 한 장 찍자.”
엄마가 재연이를 유모차에서 내려서 안고 유채꽃밭 가장자리에 조금 움푹하게 들어간 곳에 앉았어.
아빠는 오른손, 왼손에 있던 짐을 내려놓고 뒷주머니에서 휴대폰을 꺼내 사진 찍을 준비를 했지.
“재경아, 너도 이리 와, 같이 찍어야지!”
재경이는 엄마가 자꾸 멈춰서 꽃구경이다, 사진이다 해서 시간을 끄는 게 싫었어.
그리고 꽃이야 새로 이사 온 아파트에도 여기저기 울긋불긋 많이 피었잖아?
사진은 언제나 재연이만 크게 찍어주고... 조금 마음에 들진 않았지만,
재경이가 엄마 왼쪽에 붙어 서서 아빠 쪽을 보려는데,
아빠 뒤 왼쪽으로 커다란 모래 놀이터가 눈에 들어왔어.
유치원 다닐 때 보던 거보다 훨씬 크고 모래도 많았어.
“재경아, 어디 봐? 여기 봐야지, 여기, 하나, 둘, 셋!”
아빠가 ‘셋’하고 말하는 순간에 재경이는 자기도 모르게 모래 놀이터 쪽으로 다시 고개를 휘익 돌렸어.
<여기가 더 좋은데>
“아빠, 우리 여기서 좀 놀다 가면 안 돼?” 재경이가 말했어.
“응, 우리 조금 있다가 김밥 먹어야 하는데, 여긴 테이블이 없네.
바닥에 주저앉으면 힘들어. 햇빛도 많이 나고.
우리 조금만 더 안쪽으로 들어가 볼까?”
이번에는 다시 양손에 짐을 든 아빠가 제일 앞에 서고,
가운데 엄마와 재연이, 제일 끝에 재경이가 따라갔어. 재경이는 기분이 좀 그랬어.
아빠가 재경이 말을 안 들어주는 게 속상했어.
“여기 작은 개울이 있네, 다리를 건너면 뭐가 있을 것 같기도 하고.
잠깐만 여기 있어 봐. 내가 먼저 가서 둘러보고 올게!”
아빠는 이번에는 배낭까지 내려놓고 까맣게 빨간 나무다리를 건너 왼쪽으로 굽어진 길로 걸어 들어갔어.
재경이는 좀 힘이 들고 심심했어. 길가에 핀 노란 꽃을 꺾었지. 노란 물이 나왔어.
꼭 재연이가 애기 때 기저귀에 싸던 똥 같다고 생각했지.
냄새는 나지 않았는데, 손에 묻은 노란 물이 잘 지워지지 않았어.
엄마한테 물수건을 달라고 하려는데,
“여보, 여기 아주 좋은 데가 있네. 숲 속 아이들 놀이터야!”
아빠보다 아빠 목소리가 훨씬 먼저 다리를 건너왔어.
그러더니 마스크를 아주 턱 아래까지 내려서, 까칠한 턱수염이 난 아빠의 커다란 얼굴이 나타났어.
재경이는 말도 안 된다고 생각했어.
뭐라고 놀이터라고? 아빠, 아까 지나온 거기가 놀이터잖아. 정글짐도 있고, 그늘 쉼터도 있고,
모래 놀이터에 수도도 있고...
재경이는 아빠 얼굴이 갑자기 보기 싫어져서 그냥 털퍼덕 하고 그 자리에 앉아버렸어.(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