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지공원 맹꽁이숲의 비밀(연재, 4)

by 박독수


<쌍둥이 박사>


쌍둥이 박사는 아기곰 말대로 나무 임금의자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었어.

특이하게 생겨서 누구라도 쉽게 찾을 수 있지.

해가 져서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온 쌍둥이 박사는 발밑에서 어깨까지는 멜빵바지를 입은 한 사람인데,

어깨 위에 둥그런 할아버지 모자를 쓴 두 개의 똑같은 얼굴이 붙어 있지.

그런데 조금 자세히 보면 오른쪽은 살이 쪘고, 왼쪽은 좀 말랐어.

재경이는 두 개의 얼굴 중 누구에게 물어볼까 하다가

오른쪽 살찐 얼굴에게 물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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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사님, 저는 이재경이라고 하는데요,

저기 있는 아기곰이 궁금한 게 있으면 박사님에게 가보라고 해서요.”


처음에는 꽉 감겨 있던 쌍둥이 박사의 네 눈이 깜짝 놀란 듯 한꺼번에 떠졌어.

그런데 눈이 꼭 아빠 숟가락만 한데,

눈동자는 젓가락질 연습할 때 자주 보았던 까만 콩자반처럼 작았어.

네 개의 콩자반이 네 개의 숟가락 안에서 이리저리 굴렀어.

눈동자가 움직이면 그 위에 검정 크레파스 같은 눈썹도 송충이처럼 꿈틀꿈틀 따라 움직였지.

그러다 갑자기 네 개의 눈동자와 눈썹이 한꺼번에 땅 쪽으로 향하더니

살찐 얼굴의 가느다란 입술이 움직이며 작은 소리로 말했지.


“재경아, 목소리를 작게 하고 내 발 밑에 풀썩 앉으렴.

그렇게 서 있으면 저기 부하개한테 들켜요.”


재경이는 얼른 그 자리에 앉았어.

앉아서 올려다보니 두 손의 손가락이 아래를 향해 가리키는 게 보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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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대체 뭐가 궁금한 거니?”

“박사님은 왜 여기 서 있어요? 원숭이 대왕은 어디 갔나요?

아기곰은 어떻게 나무였다가 진짜 곰으로 변하는 건가요?”


“재경아, 너는 정말 궁금한 게 많구나.

그런데 많은 걸 모두 안다고 해서 행복한 건 아니야.

정말 알아야 할 것만 알면 되지 모든 걸 알 필요는 없어.”


“저는 저 아기곰처럼 아는 게 정말 조금이거든요. 초등학생인데 학교에도 자주 못 가요.”


“재경아, 이 맹꽁이숲에는 비밀이 정말 많단다.

밤새도록 해도 다 못하는데, 너는 무섭지도 않아?

엄마 아빠가 기다리는 것 아니야? 어른 없이 혼자 밤에 이곳에 오면 위험해.”


재경이는 그 말을 듣고는 갑자기 무서워졌어.

시간이 많이 지난 걸 깨달았지. 이제 겨우 길만 보일 정도로 어두워진 데다가,

엄마가 곧 돌아오실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어.



“그, 그런가요?

조금만, 아주 조금만 말해주면 안 될까요?”


하지만 쌍둥이 박사는 말이 없었고,

네 개의 콩자반은 숟가락 뒤쪽 같은 눈꺼풀 속으로 숨어버렸지.


“알았어요. 그럼 우리 아빠... 아니면 외할머니...

아니 아무튼 어른이랑 밤에 올게요. 그때는 비밀을 다 들려주셔야 해요. 꼭이요.”


재경이는 쌍둥이 신하의 손가락에 약속을 하고는 다시 아기곰에게 돌아갔어.


“아기곰아, 너무 늦어서 오늘은 안 된다고 하네. 다음에 우리 아빠랑 다시 올 거야.”


“정말이지? 다음에 꼭 와서 나랑, 우리 엄마랑, 이 숲에 불쌍한 동물들을 모두 구해줘야 해.

기다릴 게.”


아기곰이 아주 슬프게 눈물을 흘리면서 말했지.

재경이는 두 손으로 눈물을 닦아주고는 작은 가방을 챙겨 서둘러 집으로 돌아왔어.

이제 밤이 다 되어서 무서울 것도 같은데,

재경이는 머릿속이 복잡해서 무섭지도 않았어. 다행히 엄마는 그때까지 돌아오지 않았지.



3. 다시 할아버지를 만나다


<308동 할아버지 >


“엄마, 아빠는 집에 언제 오는 거야? 안 오는 거야?

한국에 돌아오면 금세 집으로 오는 줄 알았는데...”


“엄마도 아빠 기다리고 있어.

재경이가 많이 심심한 거 아는데 아빠가 제일 답답하고 힘들 거야.

이따 아빠 힘내시라고 전화하자.”


재경이는 집에서도 학교에서도 아기곰 생각이 났어.

쌍둥이 신하의 빙글빙글 돌아가는 까만 콩 눈동자랑 가느다란 입술도 자꾸 떠올랐어.

그렇지만 아빠가 오실 때까지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생각했지. 왜냐고?

밤이 되어서 쌍둥이 신하가 원래의 모습을 찾아야만 비밀 이야기를 들을 수 있으니까?

또 원숭이 대왕이 숲으로 돌아와 있으면 얼마나 무섭겠어.

재경이도 얼음땡에 걸려서

낮에는 나무 조각 사람이 되어 죽을 때까지 숲에서 하루 종일 있어야 할지도 모르잖아?

밤에는 절대 혼자 못 가!


학교 갔다 온 날, 308동 앞 놀이터에 있을 때였어.

엄마는 긴 나무의자에서 재연이에게 요구르트를 먹이고 있었지.

재경이는 미끄럼틀에 올라가 큰길 건너 하늘공원 쪽을 바라보았지.


“어, 너 재경이구나. 오늘은 학교 가는 날이었지? 학교는 어땠어?


숲에서 만났던 원숭이 할아버지야. 재경이는 반갑게 인사를 했지.

엄마가 옆에서 놀란 표정으로 재경이랑 할아버지를 보았어. 할아버지가 말했지.


“지난번에 재경이가, 재경이가... 여기서 혼자 놀 때 알게 됐어요.

씩씩하고 똑똑해서 이름도 잊어버리지 않았네.

그때 나는 저기 면허시험장 쪽 6단지에 살았는데,

지난주에 여기 308동으로 이사 왔어요. 아들네랑 합쳤지요.”


엄마가 나무의자에서 재연이를 안고 일어나며 말했어.


“아, 그러셨구나. 저는 그것도 모르고...

저희도 지난봄에 이사 왔어요. 코로나 때문에 옆집 하고도 인사를 못했는데,

재경이 이름을 아시는 게 신기해서 좀 놀랐어요.”


엄마 말이 끝나자마자 재경이가 말했어.


“할아버지, 저 할아버지 집에 놀러 가도 되나요?

강아지나 고양이 있나요?”


“아니, 예전에 할멈 살아있을 때는 원숭이가 한 마리 있었는데,

지금은 아무것도 없어. 허허, 그 녀석 참, 아빠가 아직 안 돌아오셨나 보구나.

아빠 오실 때까지 정말 심심하면 한 번 놀러 와.

엄마한테 할아버지 전화번호 알려줄 테니까 미리 전화 한번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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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밀을 털어놓다>


며칠 지나서 재경이는 할아버지 집에 놀러 가게 되었어.

엄마가 라별에서 사 온 순대를 그릇에 담아 할아버지네 집 현관까지 데려다주었지.

재경이가 벽에 걸린 할머니와 원숭이 사진을 봤어.


“할아버지, 이 원숭이를 잃어버린 거예요.”


"응, 그래. 그놈을 잃어버렸지. 이름이 ‘사루’였어.

참 순하고 예뻤는데, 귀 한쪽이 없지. 예전에 큰 개랑 싸우다가 많이 다쳤어,

그래도 정말 영리해서 할머니가 많이 좋아했는데,

할머니가 죽으니까 밥도 안 먹고 맨 날 울기만 하는 거야.

그래서 우리 아들이 와서 데려가서 좀 나아지는가 싶었는데, 그만 그 숲에서 잃어버린 거지."


원숭이 이야기를 듣자 재경이는 쌍둥이 박사에게 들은 원숭이 대왕이 생각났어.

아기곰의 슬픈 눈도 떠올랐지.


“할아버지, 저 비밀이 있어요. 거짓말은 절대 아니고요.”


재경이는 엄마가 사 주신 순대를 그릇에서 꺼내지도 않은 채

그동안 알게 된 맹꽁이숲의 비밀을 할아버지에게 말해줬지.

할아버지는 가끔 기침을 하시긴 했지만, 재경이의 말을 끝까지 잘 들어주셨지.


“재경아, 그 쌍둥이 박사가 원숭이 대왕이 어떻게 생겼는지 말해준 건 없니?

우리 사루가 생각나서 말이야.”


“없어요. 그리고 그 숲에 있는 동물들은 밤에만 원래 모습으로 돌아온대요.

그래서 아기곰과 쌍둥이 박사는 밤에만 말을 할 수 있어요.

저도 더 알고 싶은데, 솔직히 밤에 혼자 가기 무서워서 아빠가 오기만 기다렸거든요.”


“그렇구나. 나도 사루를 찾아본다고 딱 한 번 밤에 가본 적이 있는데,

어쩐지 기분이 이상하더라고.

다른 사람들이 거기는 도깨비불이 돌아다닌다는 말도 하는 걸 보면 뭐가 있긴 있나 보다.

우리 좀 생각을 해 보자. 엄마가 기다릴 테니 오늘은 이만 집으로 돌아가자,”


할아버지가 다시 재경이를 집까지 바래다주었어.

엄마는 할아버지에게 재경이랑 놀아줘서 고맙다고 몇 번이나 인사를 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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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찾아온 기회>


“어르신, 저 309동 사는 재경이 엄만데요,

혹시 괜찮으시면 오늘 오후에 재경이를 좀 맡겨도 될까요?”


자기 방에서 숙제를 하고 있던 재경이는 엄마의 전화소리에 귀를 쫑긋 세웠어,


“아유, 감사합니다. 재경이 아빠 상태가 많이 좋아져서 면회를 와도 좋다고 해서요.

근데, 아이들을 데려갈 수는 없고, 재연이는 이모네 맡기려고 하는데,

재경이가 아기들과 있는 걸 정말 싫어해서요.”


잠깐 소리가 안 들리더니 다시 엄마의 소리가 들렸어.


“정말 잘 되었네요. 사실은 저도 대전까지 갔다 오는데 얼마나 걸릴지 알 수 없거든요.

그래도 그 시간쯤에는 충분히 돌아올 수 있을 것 같아요.

어르신 정말 감사합니다.”


재경이는 어떻게 된 일인지 궁금했어. 그래서 얼른 엄마에게 갔지.


“재경아, 오늘 아빠 만나러 가.

병원이 먼 곳에 있어서 시간도 걸리고, 아이들은 데리고 오면 안 된다네.

308동 할아버지가 너를 맡아주시기로 했어.

할아버지가 이따 저녁 먹고 공원 관리사무소에 가실 일이 있어서 너도 데리고 갈 거야.

괜찮지? 너 맨날 거기 가고 싶다고 했잖아.”


재경이는 고개를 끄덕끄덕 했어.

보고 싶은 아빠를 당장 만나지는 못하지만,

드디어 밤에 할아버지랑 맹꽁이숲에 갈 수 있게 된 거야.(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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