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지공원 맹꽁이숲의 비밀(연재, 9)

by 박독수


제 4 부


1.원숭이 대왕의 매봉산 행차


<아빠 꿈을 꾸다>


엄마가 대전에 있는 병원으로 아빠 면회를 다녀오고 나서 며칠이 지났어.

아빠 몸이 많이 나아졌다고 하는데 재경이가 전화를 해도 잘 받지 않고,

어쩌다 통화를 해도 옛날만큼 말을 많이도, 재미나게 하지 않았어.

어느 날 밤에 엄마가 욕실에서 재연이를 씻기고 있는 동안

재경이는 아빠처럼 거실 소파에 누워 창밖을 보다가 봤지.

아직 아주 동그랗지는 않지만 제법 환한 달빛이 노을공원 쪽을 비추고 있었어.

그러다 깜빡 잠이 들어 꿈을 꾸었어.


밤인데, 산 길이었어.

커다란 황소가 코에 커다랗고 동그란 귀걸이 한짝을 달고 수레를 끌고 있었지.

재경이는 무서웠지만 궁금하기도 했어. 저 수레 안에는 무엇이 있을까?

어디로 가는 걸까? 재경이는 용기를 내서 수레를 쫓아가서 수레 안을 들여다봤지.

누가 이불을 덮고 누워있어서 아픈가 보다 생각했는데, 목소리가 들렸어.


“재경아, 아빠다. 나 좀 구해줘. 바이러스 대왕이 나를 끌고 가서 죽이려하는구나.

이 이불이 너무 무겁구나, 숨을 못 쉬겠어. 좀 벗겨다오.”


재경이가 이불을 벗기려는데, 갑자기 뒤에서 이상한 소리가 났어.

돌아보니 파랗게 눈이 빛나는 원숭이가 사납게 이빨을 드러내 보이며 노란 쇠종을 흔들려는 거야.

그 순간 재경이는 귀를 막으며 소리를 지르다 꿈에서 깨었어.

안방에서 재연이를 재우려던 엄마가 뛰어나왔어.


“재경아, 무슨 꿈이라도 꾸었니?

무서운 꿈을 꾸면 키가 크는 거니까 너무 걱정하지 마라. 요새 혼자 자서 무서운가 본데

아빠 오면 같이 자.

괜찮아 질 거야.”


재경이가 엄마에게 물었지.


“아빠는 언제쯤 올 수 있는 건데?”


엄마는 한숨을 쉬다 말했어.


“글쎄다. 나도 정확하게는 모르겠는데 조그만 더 기다리면 될거야.”


다음날 재경이는 308호 할아버지에게 찾아가서 어제 꿈 이야기를 했어.

혹시 아빠도 원숭이에게 잡혀가서 어딘가 나무인간으로 변해 있는 게 아닐까 생각했지.

할아버지가 말했어.


“내일 모레가 보름이란다. 달이 동그랗게 차는 날이지.

보통 보름달이 뜨면 원숭이 대왕이 매봉산으로 행차를 간다하니 그 날 밤에는 맹꽁이 공원에

꼭 가보자꾸나.”


이틀이 지났어. 저녁 때 할아버지가 재경이네 집으로 오셔서 엄마에게 말했어.


“지난 번에 재경이가 우리집에 잘 때 들려주다가 만 이야기가 있었는데,

괜찮으면 오늘 밤에 마저 들려주면 어떨까 해서요?”


“아유, 저나 재경이는 좋지만 어르신께서 귀찮으실 텐데요.

밤이면 늘 아빠와 딱 붙어있었는데 요즘은 아빠가 걱정된다고 잠도 잘 안자네요.

재경아 오늘 할아버지네 가서 잘래?”



<행렬을 뒤쫓다>


할아버지와 재경이는 해가 져서 어두워지기 전에 맹꽁이 숲에 도착했어.

할아버지는 공원 입구에 있는 작은 사무실에 들어가 있다가

다시 바깥쪽으로 돌아나가 숲 중간쯤에 있는 전망대로 갔어.

물론 재경이도 바짝 뒤를 따라갔지. 원래부터 전망대는 아닌데

시멘트로 높고 튼튼하게 지어져서 지나는 사람들이 올라가 맹꽁이숲을 내려다보며 구경하기가

너무 좋았지.


시간이 지나자 해가 지고 어두워지기 시작했어.

이쯤이면 나무조각 동물들이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갈 시간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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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데군데 가로등이 있긴 하지만 나무가 많고 풀이 우거지고 그림자도 많이 생겨서

구석구석 잘 보이지는 않았어.

하지만 오늘은 환한 달빛이 있고, 손전등이 있고,

할아버지가 계셔서 떨려서 도망가고 싶은 정도는 아니겠지?

재경이는 좀 겁이 났고, 그래서인지 오줌이 마려워져서 어떡하나 하고 할아버지에게 물으려는데,

어디선가 때-앵, 때-앵 하고 두 번 종소리가 났어.

맞아 마술종 소리야. 임금자리 쪽에서 소리가 난 것 같아.

마술 종은 아마도 원숭이 대왕이 들고 있겠지?

재경이는 가슴이 콩닥콩닥 뛰고 자꾸 침이 나와서 목구멍으로 삼켰어.

그때 날카로운 목소리가 들렸어.


“오늘 달이 떠서 환하기는 하지만 사람들이 외출을 하지 않으니 걱정하지 말고 술을 가지러 가자.

너희들은 그 맛을 모르겠지만,

정말 맛있고 힘이 넘치게 하니 술은 정말 소중한 거야. 자, 빨리 출발하자.”


원숭이 대왕은 나무 임금의자에 아주 거만하게 반쯤은 누운 듯이 앉아 있었어.

임금의자에는 나무바퀴가 달렸고, 의자에서 시작된 굵은 줄이 나무소의 어깨와 연결되어 있었지.

나무소는 살이 없어서 뼈만 앙상했지만 무거운 수레를 끌 듯 천천히 의자를 당기며 걸어갔어.

소 앞에는 사납고 무서운 괴물 네 마리가 앞서고,

원숭이 대왕의 뒤에도 온몸에 가시가 돋고 굵은 뼈가 튀어나온 네 마리가 주위를 두리번 거리며

따라갔지.


그런데 제일 앞장 서서 가는 동물은 새들이었어.

서너마리가 훨씬 먼저 날아가면서 사람이 있나 없나 살피고

그 중에 한 마리가 자주 돌아와 신호를 주면 다시 앞으로 가거나 길을 바꾸어 가는 방법이었어.

원숭이 대왕의 매봉산 행차는 사람이 다니는 길을 피해 흙으로 덮인 아파트 산책로를 많이 이용했는데,

그것은 의자바퀴나 소발굽, 괴물들이 발이 모두 딱딱해서 돌에 부딪히면 큰 소리가 나기 때문이었지.


할아버지는 거의 날마다 그 길로 자주 산책을 다녔기 때문에

그들에게 들키지 않고 뒤를 쫓아갈 수 있었어.

그들은 아파트 단지 옆으로 산책로를 따라 매봉산쪽으로 갔어.

하지만 산 꼭대기로는 가지 않고 큰 소나무가 몇 그루 서있는 곳을 겨우 빠져나가자

조금 아래로 기울어진 곳으로 내려갔어. 그 때 할아버지가 작은 목소리로 말했어.


“어, 저기는 문화비축기지나 월드컵 경기장으로 가는 길인데...”



<썩은 기름이 고여 있는 곳>


원숭이 대왕의 행렬은 얼마쯤 가다가 아파트만큼 아주 커다랗지만 둥그런 건물이 서 있는

왼쪽으로 방향을 틀었어. 재경이가 지나가면서 봤더니 나무로 된 표지판에 화살표와 함께

‘문화비축기지’라고 적혀 있었지.

밤이라서 사람은 없었지만 아주 넓고 가로등이 켜 있어서 행렬의 모습이 아주 잘 보였어.

제일 안쪽에 있는 둥그런 건물 앞에 도착하자 행렬이 멈췄어.


원숭이 대왕이 의자에서 내리고, 청설모처럼 생긴 작은 동물 몇 마리가 병을 들고

지하층으로 내려가는 게 보였어. 그리고 원숭이 대왕은 자기 키만한 큰 항아리를 소의 등에서 내렸어.

소와 나무의자 수레가 건물 뒤쪽으로 돌아가 숨는 것을 보고는

원숭이 대장이 따라 온 괴물들을 돌아보며 말했어.


“내 뒤를 따라오는 놈은 가만두지 않을 테다.

너희들은 내가 돌아올 때까지 여기에서 조용히 기다려라.

하지만 사람들 소리가 나면 빨리 숨거나 도망쳐야 한다.

사람은 하나하나는 힘이 없어 보이지만, 그들이 힘을 합치면 우리들은 아무 것도 아니다.

시끄러워져서 들키기라도 하면 다시는 이곳에 올 수 없을 테니 조심하여야 한다.”


검은 모자 밑으로 원숭이 대왕의 사나운 두 눈이 보름달 빛에 반짝였는데,

더 반짝이는 것은 말할 때 마다 벌어지는 입속의 날카로운 이빨들이었어.

원숭이 대왕은 무거운 항아리를 한 손으로 어깨에 떡 짊어지고는

청솔모들이 내려간 지하층으로 성큼성큼 걸어갔어.


건물 앞 쪽에 서있던 괴물들이 자기들끼리 들릴만한 소리로 떠드는 게 들렸어.

그때, 할아버지가 재경이에 말했어.


“나를 꼭 붙잡고 잘 따라와야 한다.

이곳에서 길을 잃으면 집에 돌아갈 수가 없어. 원숭이 대왕에게 붙잡힐 수도 있고. 알겠지?”


재경이는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였어.

나무 뒤에 웅크린 채 숨어있던 할아버지가 갑자기 콜록콜록 기침을 했어.

그리고는 딸깍 손전등을 켰어. 그리고는 괴물들 쪽으로 비췄지.

놀란 괴물들과 새들이 갑자기 이리저리로 흩어져서 사라졌어.

할아버지와 재경이는 재빨리 원숭이 대왕이 내려간 지하층으로 달려 내려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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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층으로 내려가 보니 극장처럼 생긴 커다란 방이 있었어.

방으로 들어가는 입구 오른 쪽에 쇠로 만든 울타리가 있는데, 그 아래로 또 지하가 있는지

그곳에서 물 흐르는 소리가 나다 멈추곤 했어.

할아버지와 재경이는 물소리가 크게 날 때를 기다렸다가 조심조심 그 쪽으로 내려갔지.

한 쪽 구석에서 보니 원숭이 대왕이 큰 항아리를 세워놓고 서 있다가

청솔모 같은 작은 동물들이 작은 병에 뭔가를 담아오면 그걸 큰 항아리로 옮겼어.

청솔모들이 아무리 힘들어보여도 원숭이 대왕은 재촉을 했어.


“야, 이 느림보 녀석들아, 더 빨리 움직이지 않으면 너희들 모두를 괴물들 먹이로 줄거야.


원숭이 대왕이 사나운 이빨을 드러내며 말했어.

할아버지와 재경이는 한참동안 그곳에 숨어서 지켜봤지.

항아리가 가득 찼는지, 원숭이 대왕이 뚜껑을 덮고 끈으로 묶더니 두 손을 벌려 박수를

딱, 딱 쳤어.


그러자 어디선가 사사사삭, 스사사삭 급한 발 소리가 났고,

뿔난 공룡처럼 생겼는데 등이 거북이처럼 평평하고 다리가 여러개 달린 괴물이 나타났어.

원숭이 대왕이 항아리를 괴물의 등에 싣자마자

다리 중에 두너서개가 위로 올라와 항아리를 꼭 잡더니 나머리 다리를 움직여서

다시 스사사삭 하고 윗층으로 올라갔어.

이번에도 원숭이 대왕이 박수를 치자 청솔모들이 모이고 원숭이 대왕을 따라 밖으로 나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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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아버지는 원숭이 대왕과 괴물들의 소리가 완전히 들리지 않을 때까지 기다렸다가

행렬이 청솔모들이 들락거렸던 작은 구멍 쪽으로 가서 손전등을 비췄어.

그곳에서는 아주 작게 물 흐르는 소리가 들렸고, 토할 것 같은 기분 나쁜 냄새가 났어.


“할아버지, 이게 무슨 냄새래요?”


“응, 이건 썩은 석유 냄새야.

원래 이곳은 자동차나 공장의 원료로 쓰이는 석유를 저장하던 곳이야.

네 엄마, 아빠가 너만 했을 때는 이곳에 정말 엄청나게 석유가 많았는데,

이제는 쓸모가 없어져서 문을 닫았지.

남은 기름을 완전히 없앴는 줄 알았는데 아직까지도 찌꺼기가 남아서 썩고 있나 봐.

그래서 홍수가 나면 난지천에 그렇게 기름이 둥둥 떠다녔던 거지.

재경아 이 손전등을 들고 저 쪽을 좀 비춰 주겠니.

내가 사진을 찍어두려고 한다.”


할아버지는 냄새와 소리가 나는 아래쪽으로 조금 내려가셔서 찰칵찰칵하고 여러번 사진을 찍고

다시 올라오셨어.


“할아버지, 그런데 이 걸 먹으면 어떻게 힘이 나는 거죠?”


“보통 사람이나 동물을 이 걸 먹으면 죽거나 병이 드는데, 원숭이 대왕은 좀 다른가 보다.

아니면 다른 방법이 있든가...

그나저나 이제 원숭이 대왕이 힘이 세지는 비밀을 알았으니

오늘은 이만 집으로 돌아가자. 옷에 기름이 묻거나 냄새가 배이지 않도록 조심조심 하고...”


할아버지와 재경이가 다시 지상으로 올라와 원숭이 대왕을 일행을 찾아보니

그들은 벌써 저만치 보름담이 뜬 매봉산 기슭을 따라 소나무 밭 사이로

소가 끄는 수레를 앞뒤로 호위하며 돌아가는 게 보였어.

원숭이 대왕이 기분이 무척 좋은지 노래를 흥얼거리기도 하고 자주 킥킥 대기도 했어.(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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