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남편의 주재원이 확정되었다.
결혼 초부터 신랑은 계속 말했다.
"어디로 주재원 갈까?"
"어디로 주재원 가고 싶어?"
내가 말한 데로 다 갈 수 있는 건가... 싶지만 신랑은 계속 물어본다.
호주? 미국? 캐나다?
영미권에 가서 영어 공부도 하고, 미술관 박물관 구경 실컷 하고 선진국의 문화를 실컷 즐겨 볼까?
혹은
식모와 기사를 쓸 수 있는 동남아시아에 가서 사모님 생활을 해볼까?
회사에서 보내주기도 전에 신랑과 나는 김칫국부터 마시고 세계 이곳저곳 주재원으로 살아 볼 수 있는 나라들을 꼽아보며 그곳의 생활을 상상해 보곤 했다.
신혼초에는 폴란드에 가서 유럽의 곳곳을 여행 다닐까, 남아프리카에 새로운 문화를 접해 볼까 라며 젊은 패기(?)로 살아 볼 수 있는 곳들을 생각했다.
아이들 낳고는 아이들의 교육을 생각하다 보니, 저명한 국제학교가 많은 중국과 동남아시아를 고려하게 되었다.
결혼 8년 차 때쯤, 본격적으로 남편은 주재원을 지원했다. 그 시기에 뜨는 주재원 국가 중에 우리는 선택을 해야 했고 우리는 1순위를 중국을 적었다. 곧 초등학교에 입학하는 아이들의 교육을 고려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신랑이 그곳에서 일했을 때 얼마나 신랑의 성과에 도움이 될까도 고민을 했다.
영미권도 너무 가고 싶었지만 영미권은 정말 운이 좋아야 갈 수 있는 곳이었고, 우리가 지원하는 시기에는 영미권이 올라와 있지 않았다. 그리고 3순위에 적은 인도네시아 자카르타.
주재원 지원한 지 한 달쯤
신랑이 집에 와서 나지막이 나의 눈치를 살피는 목소리로 말한다.
" 우리 자카르타로 주재원 확정됐어"
가슴이 쿵 하고 한번 내려앉는다.
"내가 동남아 가서 잘 생활할 수 있을까?"
잠이 오지 않았다. 밤마다 내 머릿속을 가득 채우는 수많은 걱정과 불안감으로 밤새 인도네시아 관련 검색과 그곳에 살고 있는 엄마들이 적은 블로그의 글을 정독하고 또 정독했다. 더 이상 읽을 글이 없을 때까지 말이다.
그동안 주재원을 간다 안 간다, 미뤄졌다, 다음에 가자 등등으로 나의 인생계획을 어떻게 세워야 하나 고민하다가 이제 내 인생에 큰 무언가가 딱 하고 정해진 것이다. 무언가 결정이 되었다는 시원함과 동시에 전혀 상상도 해보지 않았던 도시에서 내가 잘 살 수 있을까? 불안과 걱정이 휩싸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