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 여기서 잘 살 수 있겠지? -그럼 그럼
친구들이 말했다.
"너 진짜 가기는 가는 거야?"
또 다른 지인은 이렇게 말했다.
"올해 못 가는 거 아니야?"
이런말들이 인사말처럼 오고갔었다. 2019년12월부터 2021년 7월 출국할때까지 코로나로 국경이 열리고 닫히기를 몇번. 비행기표 취소를 두세번 하고 나서야. 드디어 출국!
2021년 2월에 해외 이삿짐은 다 보냈다. 그리고 3월에는 전셋집에서 나와 친정살이를 시작했다. 6월이면 갈 수 있겠지 하던 일정이 인도네시아 코로나 확진자 급증으로 외국인 입국 금지, 백신 접종 완료자만 입국 가능 등 여러 변화가 많아서 정말 가슴 졸이며 입국을 했다는 표현이 맞을 것 같다. 신랑 신부가 식장에 입장하기 전까지는 알 수 없다고 말하듯 내가 비행기를 타기 전까지는 간다고 할 수없던 딱 그런 상황이었다.
출국날 아침.
둥이들은 약 8개월 만에 아빠를 만난다는 생각에 연일 신이 나있었다. 그동안 아이들도 친정에서 자기들만의 공간과 장난감 없는 곳에서 지내다가 '내 집', '내 장난감' 이 있는 곳으로 간다니 좋은 거 같았다. 공항은 썰렁했다. 그래도 작년 신랑을 보낼 때보다는 조금 나아 보이는 듯했다. (신랑은 2019년 12월에 먼저 출국했다.)
비행기 안은 매우 여유로웠다. 우리 세모녀를 제외하고 한국사람은 4명 정도 더 탄 거 같았다. 그리고 20명 가까이 되는 인도네시아인들이 타고 있었다. 다들 비행기에서 마스크를 벗지 않으려 기내식을 먹지 않는다고 했는데, 나는 아이들에게 음식 한입을 베어 물게 하고 바로 마스크를 씌웠다. 6살 여아 둘에게 7시간 금식은 사실 너무 힘들다. 비행기에서 내려서 호텔까지 가는 길까지 생각하면 거의 10시간을 먹지 못하기 때문이다. 비행기에 타고나니 몸은 힘들었지만 그동안 오니가니 하던 상황이 일단락되었기에 마음은 편안했다.
내가 출국하던 시기가 인도네시아가 확진자가 급증하던 시기였고, 도시 봉쇄로 마트 외에는 어디도 갈 수 없는 상황이었다. 다들 외출도 삼가며 집에만 지내고 지인들끼리도 서로 조심하며 지내던 때라( 이 글을 쓰는 지금도 봉쇄 중이다. 그리고 봉쇄는 계속 연장 중이다.) 다들 우리의 출국을 걱정했지만, 또 반대로 한국도 점점 코로나 확진자가 급증하고 있었기에 한국에서 머물다간 아얘 갈 수 없는 상황이 생길까 봐 더 이상 미루지 않고 출국을 했다.
비행기에서 내려서, 기내 짐도 많던 나를 공항에 있는 직원들이 도와주셔서 정말 아이 둘 데리고 잘 나올 수 있었다. 물론 짐 이동을 도와주신 분들께는 사례를 했다. 공항에서 내려서 나오면, 격리할 호텔 차량 기사가 기다리고 있다. 어두운 밤에 도착한 인도네시아 자카르타. 더운 바람이 나를 반겼다.
공항에서 호텔로 가는 길에 보이던 어두운 밤에 자카르타의 첫인상은 사실 그렇게 웰컴 하지 않았다. 마스크를 끼고 있지 않는 사람들이 너무 많았고, 판잣집에 많은 오토바이들... 그리고 가장 충격은...
길거리에서 차문을 두드리며 돈 달라고 하는 아이들이었다. 내가 도착했을 때 마주했던 그 여자아이의 눈빛이 너무 강해서 정말 어디에 눈을 둬야 할지 몰랐다. 무엇보다 둥이들이 가질 궁금증과 질문들에 어떻게 대답을 해야 할지 머리에 지진이 올 지경이었다. ( 이후 이렇게 도로에서 돈을 달라는 사람들을 만나는 것이 일상이 되었다. 아이들에게 '일자리가 없어서 돈이 없어서 저렇게 하는 거야'라고 했더니 ' 그러면 컴퓨터로 일해서 돈 벌면 되잖아'라고 아이들이 이야기했다. 둥이들은 아빠, 엄마가 매일 컴퓨터 두드리며 일한다고 말하니까 컴퓨터 하면 일하고 돈 버는 줄 아는 거 같다.)
인도네시아는 호텔 격리 8일이 의무사항이었다. 그리고 PCR 검사부터 호텔 격리 비용 모두 자비부담이기 때문에 매우 부담되는 격리이다. 우리 세 모녀 격리 비용이 200은 넘었던 거 같다. 아빠가 너무너무 반가운 둥이들이었지만, 외부인과는 접촉 금지여서 서로 눈인사만 나눴다.
격리가 두렵기는커녕, 주는 밥 먹고 청소해야하는 스트레스 없고 집안일로부터 해방이라 호텔 격리 8일은 나에게 쉼표와 같은 시간이었다. 자카르타 갈 준비 하느냐고 매일같이 짐을 꾸리고 무게를 재고, 더 필요한 건 없는지 체크하고 약 5개월 동안 친정에 벌려놓은 내 짐들 정리하느냐고 몸이 정말 남아나지 않는 것 같았으니까 말이다.
둥이들도 오랜만에 호텔에서 잠을 자니 좋아했다. 7시간 비행에 시차로 거의 한국시간 새벽 1시가 다 되었는데도 피곤한 모습은커녕 너무 신나 했으니까.
이제 동남아 라이프 시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