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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ifeel co Aug 24. 2023

사소함을 특별하게 만드는 학교

A부터 Z까지

국제학교에서는 이런저런 사소한 이벤트가 많다. 이벤트의 참 의미를 다 알기 전까지는 학교의 위클리 일정을 볼 때마다,


'굳이 이런 걸 왜 해?'

'애들도 이제 나이가 있는데, 이건 너무 유치하지 않나?'

'이런 걸 이벤트로 한다고?'

라고 생각하며 아이들 학교에 준비물이라도 하나 더 챙겨야 한다는 '귀찮음' 정도로 여겼다.


6월. 한 학년의 마무리를 앞두고( 미국학교는 6월 초에 학년이 마치고 8월에 새로운 학년으로 올라간다.)  

학교에는 A부터 시작해서 Z까지의 알파벳으로 여러 가지 이벤트를 만들었다.  A는 사과를 먹는 날, T는 탤런트 데이여서 내 장기 자랑을 뽐내는 날, C는 Change 데이여서 내가 친구와 이름을 바꿔보는 날, P에는 피크닉 데이여서 교실에서 나와 학교 캠퍼스 테이블에서 먹는 것만으로도 아이는 종일 설레했다. 


'A라는 알파벳에, 사과를 먹는 날이 라니.. 아니 교실에서 나와서 그냥 학교 가든에서 먹는 게 피크닉이라고?'


하지만 이러한 나의 생각은 아이의 반응을 보고는 180도 바뀌었다. 그리고 국제학교 3년 차 되고, 조금은 이러한 문화에 스며들고 나니 이러한 과정이 이해가 가고 그 의미를 찾기 시작했다.




1. 사소함을 특별하게 만들어보는 거 어때?


아이들은 매일매일 바뀌는 테마에 신이났다. 


"엄마 엄마 내일은 이름을 바꿔볼 거야. 나는 누구랑 이름을 바꾸지? 내일 선생님 이름으로 바꿀까? "

"엄마 내일은 내가 가장 좋아하는 책을 가져오는 날이야. 나는 앨범을 가져갈 거야. 그 앨범 어디 있어? 친구가 이사진을 보면 어떨까"

"엄마 내일은 내가 학교에 내가  가장 좋아하는 편안한 인형을 가지고 가는 날이야! 가져갈 생각 하니 너무 신나!"


세련된 엔터테인먼트도 없고, 그렇다 할 구경거리도 없는 이 도시에서 아이는 학교의 이런 작은 이벤트를 너무 즐거워했다. 어른인 나의 시선에서는 저게 신날 일인가? 싶었는데 아이의 학교생활을 통해서 일상을 특별하게 만드는 일은 그리 어려운 게 아니구나 싶었다. 


3.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아. 점프만 잘해도 너의 재능이 될 수 있어!


T데이 Talent day 전날 저녁, 아이는 저녁을 먹으며 나에게 물어봤다.


"엄마 나는 어떤 재능이 있어?"

"음.. 너는 그림도 잘 그리고, 친구들도 잘 배려하고, 운동도 잘하지!"


그렇게 그날 학교를 다녀온 아이가


"엄마 내가 앞에 나가서 뭐야 해 할지 모르니까, 선생님이 너는 한국어를 잘하니까, 그것도 재능이야! 하면서 Mrs Berry가 영어로 Hello 하면 나는 옆에서 안녕? 하고 한국말로 번역했어"


사실 나는 아이의 말을 듣고 경악했다! 약간 코미디 같기도 했다. 얼마나 앞에 나가서 할 게 없었으면 선생님이 한국말을 하라고 했을까 싶었다. 하지만 조금 시간이 지난 뒤 다시 생각해 보니 한국아이가 한국말을 하는 것을 '재능'이라고 해주고 찾아준 선생님한테 한번 놀랐다. 

그 주 학교 위클리 뉴스의 사진을 보니 앞에 나가서 점프한 친구, 다리 찢기 한 친구 등 그 '재능'이라는 것이 엄청난 게 아니었다. 아마도 한국의 재능 데이였으면 몇 달 전부터 갈고닦아서 친구들 앞에서 준프로의 모습을 보여주지 않았을까? 싶었다. 이렇게 사소한 것도 재능의 날에 친구들 앞에서 뽐내고 박수받을 수 있어서 내 아이는 그날 행복해했다. 




그렇게 알파벳으로 하루하루 일상을  보내다 보니 내 아이의  1학년이 마쳐있었다. SNS의 속 사람들을 보다 보면 다들 365일 약속으로 가득 차고 열정적으로 지내는 것 같아 자연스럽게 내 삶이 참 건조하고 특별하지 않다고 생각했었다. 심심함, 무료함이 꼭 내가 아무 의미가 없는 사람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내 아이의 학교생활을 쭉 함께 몇 년을 경험해 보니, 저렇게 사소한 것으로도 아이의 하루를 새롭게 만들고 특별하게 만들 수 있구나 싶은 게 내가 어디서 무엇을 찾고 갈구하고 있던 것이 참 어리석게 느껴지던 6월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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