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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단디몬 Jun 09. 2020

1996년 동물의 왕국

1화 중학교 입학! 맹수 사파리 입성!

때는 1996년, 나는 중학교에 입학하게 되었다. 하필 남중이다.

 그 당시 막 충격 은퇴를 감행했던 10대의 대통령 서태지와 아이들은 '1996년 그들이 지구를 지배했을 때'라는 노래를 통해 정치 비판을 했던 것 같은데, 나에게는 각각의 국민학교에서 통을 잡고 나온 맹수 같은 아이들이 중학교를 지배하기 위해서 온 것만 같았다.

 그중에 단연 눈에 띄는 애들은 몇몇 있었다. 170센티 정도는 되어 보이는 '종두'라는 아이는 아직 중학교 입학도 하기 전인 예비소집일임에도 불구하고 위아래는 휠라 남색 운동복에 아디다스 삼색 찍찍이 신발 그리고 머리는 노랗게 염색(과산화수소로 염색한 느낌)을 한 상태로 입으로 자신의 앞머리를 휘휘 불며 '나 싸움 좀 한다'라는 흔히 가오를 잡고 있었다.

 예비 중1 중에서는 종두처럼 170센티를 넘는 아이는 몇 명 더 있었는데, 그중에서 180센티에 가장 근접해 보이는 아이에게 종두는 주변 똘마니들을 데리고 갔다. 종두가 지나가자 마치 모세의 기적처럼 주변의 아이들이 다들 비켜섰다.

 종두 패거리는 '180센티에 가장 근접한 아이' 근처로 갔다. 종두는 먼저 짝다리를 짚고 입으로 앞머리를 휘휘 불며 눈빛으로 기선 제압을 하며 뭔가를 이야기했다. '180센티에 가장 근접한 아이'는 생김새가 피카추에 나오는 잠만보처럼 생겼는데, 원래 싸움 같은 것에는 전혀 관심이 없는 아이였는지 그냥 종두의 눈빛에 고개를 숙였다.

 종두는 '내가 이 학년의 통이다.'라는 위세로 예비소집일 내내 눈에 띄는 행동을 했다. 중학교는 국민학교와 뭔가 달랐다. 하루 종일 긴장되었던 예비소집일이었다.

 

 국민학교는 6반에 한 반에 40명 정도였는데, 중학교는 12반에 한 반에 45명 정도 되었으니 규모가 아주 컸다. 여러 국민학교에서 모여서 그런지 모두가 긴장하고 또 견제를 했던 것 같다. 3월이 되어 중학교를 입학하니 진짜 강자는 따로 있었다. 사실 '종두'의 국민학교에서도 종두가 통이 아니었다. 성운이라는 170센티를 넘는 아이가 하나 있었는데, 키로 보나 얼굴로 보나 중3 정도는 되어 보였다. 국민학교와 중학교 레벨은 많이 다르구나 싶었다. 내가 사는 지역은 생각보다 많은 인물들이 있었고, 나와 같은 국민학교 출신들은 중학교에서 가서 생각보다 튀지 않았다. 나름 우리 국민학교에서는 5명이서 어울려 다니면서 무슨 파를 만들어 무리 지어서 다녔는데, 중학교에서는 소용이 없었다.다섯 명 중 나를 포함한 세명이 같은 중학교에 가게 되었는데, 모두 새로운 중학교 생활에 적응하기 바빠 서로를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나는 1학년 11반에 배정되었다. 일단 교실문을 들어가는 순간, 어떻게든 우위를 점하고 싶었다. 먼저 반 친구들을 스캔했고, 그중 강해 보이는 애들이 누군지 정보를 파악해 갔다. 나보다 키가 큰 아이는 3명 정도였다. 한 명은 173센티, 다른 한 명은 167센티 정도고 남은 하나는 축구부였는데 셋 다나보다 많이 컸다. 그리고 국민학교 때 씨름을 했던 아이도 있었고, 국민학교 6학년 때 티브이에 나와서 서태지와 아이들의 컴백홈 춤을 췄다는 애도 있었다. ‘정말 세상은 넓고 사람은 많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컴백홈 춤을 춘 아이는 이름은 '현준'이라고 했다. 현준이는 나를 안다고 했다. 국민학교 때 학교는 다르지만 같은 영수학원을 다닌 여자애들한테 나에 대한 소문을 들었다고 했다. 알고 보니 우리 아파트 바로 옆에 있는 아파트에 살고 있었다. 집에서 학교까지는 버스로 20분 정도 걸렸는데, 현준이와 등하교를 같이 하게 되면서 자연스럽게 친해졌다.

 같이 농구하러 다니고 노래방도 가고 밤 따러 다니고 플래이스테이션도 하고 정말 생각 없이 놀았다. 우리 반에 통은 축구부였는데, 축구부 훈련한다고 수업도 들어오지 않았다. 다행히 종두 같은 아이는 우리 반에 없었고, 우리 반 통이었던 친구도 워낙 착해서 우리 반에서 나를 건드릴 아이는 없었다. 반에서 나랑 친한 몇몇 아이 빼고는 다들 나보다 아래인 것 같았다. 대부분의 아이들이 만만했었는지, 반 친구들에게 조금 거칠게 대했던 것 같다.

 

 한 번은 국민학교에서 씨름선수를 했던 '한우'라는 아이와 부딪혔는데 나는 앞 뒤 잴 것 없이 바로 한우의 면상에 주먹을 날렸다. 하지만 내 주먹이 약했을까 한우는 아무런 대미지도 없이 바로 내게 달려들었다. 씨름을 했던 아이라 사람을 넘어뜨리는 재주는 좋아 바로 나를 넘어뜨렸다. 그리고는 넘어진 내 배 위에 앉아 내 머리를 눌렀다. 씨름을 했던 아이라 힘도 좋아 도저히 밀쳐낼 수가 없었다. 하지만 씨름을 했던 아이라 타격을 할 줄 몰랐다. 만약 그때 한우가 주먹으로 내 얼굴을 여러 차례 가격했다면 나는 찬란할 중학 라이프는 아웃사이더로 보냈을 지도 모른다. 아무튼 그때 옆에서 싸움을 구경하던 현준이가 옆에서 한우를 발로 차 넘어지게 만들었다. 나는 바로 일어나 펀칭 기계에 주먹을 날리듯이 한쪽 팔목을 잡고 한우의 왼쪽 눈에 주먹을 날렸다. 주변의 아이들이 나를 우러러볼 정도의 정말 멋진 일격이었다. 한우가 또 반격을 할까 두려움이 엄습해올 때 우리반 담임이 왔다. '영주'라는 아이가 담임을 불러온 것이다. 일주일에 딱 한번 '기술산업' 수업이 있었는데, 그날이 '기술산업'수업이 있는 날이었다. 담임은 '나중에 수업시간에 보자'라는 말을 남기고 교실을 떠났다.

 중학교 1학년 때 담임은 공고에서 전근 온 '기술산업'이라는 수업을 가르쳤는데, 공고 선생 출신답게 각목으로 정확한 위치에 한치의 오차도 없이 때리는 걸로 유명했다. '기술산업' 수업시간에 나와 한우를 한 명씩 불렀다. 그리고는 각목으로 정확하게 허벅지를 3대씩 때렸다. 내가 먼저 맞았는데 1대 맞고 허벅지를 비비며 제자리를 뛰며 한 바퀴 돌고, 또 1대 맞고 허벅지를 비비며 제자리를 뛰며 한 바퀴 돌고, 또 1대 맞고 허벅지를 비비며 제자리를 뛰며 한 바퀴 돌았다. 다행히 비명은 지르지 않았고 준수하게 맞은 것 같다.

 다음은 한우 차례. 한우는 한 대 맞자마자 무릎을 꿇고 담임에게 빌었다. 그리고 한대 더 맞고 또 두 손으로 싹싹 빌고, 거의 울었던 걸로 기억한다. 난 한우에 비해서 멋지게 맞은 것 같아 뭔가 으쓱했다.

 사실 한우는 반에서 축구를 할 때 골키퍼를 했는데 항상 쿠션이 들어간 골키퍼복을 가지고 다녔다. 담임한테 각목으로 맞을걸 알았는지, 한부는 골키퍼 바지에 체육복에 여러 겹을 입어 놨었다고 한다.

 나랑 친했던 현준이는 한부가 옷을 여러 벌 껴입고 각목을 맞았지만 무릎을 꿇고 선생님에게 빌었던 굴욕적인 행동을 한 아이로 소문을 내고 다녔다.

 아무튼 이 싸움을 계기로 비교적 평화로웠던 우리 반에서 나와 내 베프인 현준이에게 덤비는 아이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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