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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단디몬 Jun 09. 2020

스승의 은혜는 하늘 같아서

2화 선물 대신 손편지

 5월 15일 스승의 날, 학교에 가기 전에 엄마가 현관 앞에 놔둔 종이가방을 들고 가라고 하셨다. 국민학교 다닐 때부터 엄마는 슈페리어 양말 3족 세트를 항상 스승의 날 선생님 선물로 준비하셨다. 올해도 여느 해와 마찬가지로 엄마는 선생님께 드리라고 양말을 준비해줬고 나는 그걸 들고 학교에 갔다. 학교에서 아침에 몇몇 친구들은 선생님께 드릴 선물을 다른 친구들에게 자랑하듯 보여주곤 했다. 슈페리어 양말 3족은 고작해야 1족당 사천 오백 원해서 3족에 만삼 천오백 원 정도밖에 안 되는데, 집이 좀 산다는 아이들은 십만 원이 넘어가는 선물을 가지고 왔다.

 국민학교 때 담임선생님은 스승의 날에 선물을 드리면 이런 거 가지고 오지 말고 편지 같은 걸 써서 주는 게 선생님은 더 기쁘다고 말씀하시는 소녀 같은 여선생님이셨다. 하지만 중학교의 스승의 날 수준은 달랐다. 아침 조회시간에 담임 선생님이 들어와서는 아이들의 선물을 보고는 못 이기는 척하며 선물을 다 교탁 위에 올려놓으라고 했다.

 어마어마한 선물을 가지고 온 몇몇 친구들 때문에 양말 3족을 올리기엔 뭔가 부끄러운 생각도 들었다. 그래서 나는 고민하다가 교탁 위에 스승의 날 선물을 내지 않았다. 그런데 더 황당한 일이 일어났다. 선생님은 교탁에서 선물을 하나하나 뜯기 시작하는 것이다. 나처럼 작은 선물을 준비한 아이들 선물은 보는 앞에서 뜯지도 않고, 라코스테 피케티 같은 선물을 뜯어보며 자신의 몸에 대보면서 흡족하다는 표정 지었다. 누가 선물을 했냐며 확인하는 과정도 잊지 않았다. 몇몇 좋은 선물들을 뜯다가 마침내 양주가 나왔다. 중학생 신분이라 양주에 대해 잘 몰랐지만 꽤 좋은 양주를 줬던 걸로 알고 있다. 선생님은 즉석에서 그 양주를 뜯고, 누가 선물했는지 확인하고, 그리고 반 아이들이 보는 앞에서 한잔 마셨다. 정말 어이가 없었다. 90년대 중반이고 지방이니까 말이 없었지 그런 짓을 하는 게 2020년이었거나 서울, 수도권 지역이었으면 난리가 났을 거다.

엄마가 열심히 일해서 번 돈으로 산 '슈페리어 양말 3족 세트'를 선생님께 주지 않은 것이 정말 잘한 행동이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그 양말은 내가 신었다. 덕분에 나는 품질 좋은 슈페리어 양말을 신을 수 있었다. 중1에게는 어울리지 않는 슈페리어 양말을 신었다.

 그리고 '양주를 선물한 아이', '라코스테 피케티를 선물한 아이'등 좋은 선물을 선물한 아이들에게는 담임이 잘해줬던 걸로 기억한다. 지금 생각해보면 '한우’랑 싸웠을 때 각목으로 세게 때렸던 건 스승의 날에 선생님에게 좋은 선물을 주지 않아서 그런가 라는 생각도 든다.


 국민학교와는 달리 중학교부터는 과목마다 선생님이 다르다. 그중 '수학' 선생님이 두려움의 대상이었는데, 숙제를 안 해도 때리고, 문제 풀라고 해서 틀리면 때리고, 자세가 흐트러져도 때리고, 수업 중에 웃으면 때리고, 뭐하면 때리고 저하면 때리고, 정말 잘 때리는 수학선생님이었다. 가지고 다니는 넙적한 매도 항상 윤기 나게 니스칠을 했다. 넙적해서 그런지 손바닥을 맞을 때 소리가 매우 커서 아이들에게는 공포의 대상이었다. 좀 꼬장꼬장한 느낌의 선생님이었는데 별명도 "번데기"였다. 왜 "번데기"인지 이유는 모르겠는데, 누가 지었는지 정말 잘 지은 별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그나마 수학을 잘하는 편이었는데도 많이 맞았던 기억이 있다. 항상 그 수업은 두려움의 대상이었다. 그래도 그 선생님이 철저하다고 느꼈던 건 다른 반에도 항상 같은 내용으로 수업을 하고 칠판의 필기 내용도 글자 하나 안 틀리고 항상 똑같이 적는다는 것이었다. 친구들은 어떻게든 그 선생님에게 안 맞는 방법을 연구하기 시작했다.

원래 그 수업은 40분 내내 웃음기 없이 긴장을 하는 수업이었는데, 우연히 다른 반에서 선생님의 농담에 아이들이 좀 크게 많이 오버해서 웃은 적이 있었다. 그런데 그날은 아이들을 많이 안 때렸다고 한다. "번데기"선생님은 우리 반에 와서 수업시간 내내 다른 반에서 했던 농담을 같은 타이밍에 했다. 우리 반 아이들은 열과 성의를 다해 열심히 웃었다. 그 결과 그날 선생님은 아이들을 많이 때리지 않았다. 이거다!! 수업시간에 열심히 웃어주면 잘 안 때린다는 결과가 나왔고, 앞으로 "번데기" 선생님 수업은 웃어줘야 한다는 결론에 다다랐다.

 우리 반 아이들은 다른 반 아이들과 함께 "번데기" 선생님 수업에서 언제 웃어줘야 되는지에 대해 정보를 공유했고, 수업시간에 농담을 할 때마다 열과 성의를 다해서 열심히 웃었다. 많이 웃는 수업에는 많이 안 때렸다. 다른 반 수업시간에 단체로 가식적인 웃음이 들리면 그건 "번데기"선생님 수업이었다. 물론 그 농담들도 정말 재미없었다. 현대 소나타 차는 소(동물)나 타는 차라는 농담에 어찌 웃을 수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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