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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 피아노를 치고 있다

2024.3.26.

by 친절한 James Mar 26. 2024


"오늘 날씨도 참 좋군."

K는 중얼거렸다. 옆에 누군가 있는 듯

말했지만 오늘도 홀로 길을 걷고 있었다.

동그란 호수 2개가 나란히 있는 S호수.

겨우내 얼어붙은 수면도

푸릇푸릇 반짝이고

거위와 오리들이 호수를 떠다니며

사람들을 구경하는 풍경.

아직 매화나 벚꽃은 없지만

제법 다스한 바람결이

머릿결을 쓰다듬는 산책길.

K는 점심을 먹고 이곳을 종종 거닐었다.

요즘엔 사람들이 더 많아졌다.


가볍게 먹어서일까, 발걸음도 경쾌하다.

아, 어딘가에서 음악 소리가 들려.

스피커로 나오는 건 아닌 듯하고,

누군가 악기를, 피아노를 치는 것 같아.

K가 걸음을 옮길수록 선율은 가까워졌다.

호수 2개를 잇는 산책길 위로

큰 다리가 놓여있고

그 아래에는 피아노가 한 대 있었다.

누구나 칠 수 있는 공개용 악기였지만

여태 아무도 쓰는 걸 못 봤는데

오늘은 누군가 피아노를 치고 있었다.

행인 몇몇이 옆에서 연주를 듣고 있네.

은은한 자홍색 카디건을 입은

단정한 은발의 주인공이 피아노 건반을

손가락으로 두드리고 있었다.

음악회에서 들을 법한 클래식이

아주 능숙하지는 않아도 실수 없이

물새의 수영처럼 느긋하게 이어졌다.

아, 이거 어디선가 들어봤는데 뭐였지.

모차르트였나 베토벤이었나

아니면 쇼팽이나 슈만?

아는 음악가를 다 떠올려봤지만

야트막한 지식에 걸리는 답이 없었다.

뭐, 어쨌든 듣기 좋으니 됐다.

검색 엔진으로 음악을 찾아봤는데

정식 음원이 아니라서 못 찾겠다네.

좀 더 똑똑해졌으면 좋겠구나.

너도 그리고 나도 말이야.


K의 걸음이 느려지다가 멈췄다.

알 듯 말 듯 익숙한 멜로디가

머릿속에서 따라 나왔다.

고개를 살짝 까딱거리며

입술을 웅얼웅얼했다.

나도 피아노를 배우고 싶었는데

그럴 형편은 아니었지.

체르니니, 바이엘이니 하는 말이

참 부러웠는데, 지금이라도 시작해 볼까.


연주자의 표정은 부드럽고 편안했다.

옆에서 누가 듣든 말든

자신만의 호흡과 손놀림으로

음정을 하나씩 잡아

펼쳐내고 흔들어 내었다.

음파의 진동을 느꼈는지

물고기와 새들도

이쪽으로 몰려드는 것 같다.

곧 음악이 멈췄다.

작은 박수의 물결이

허공의 공백을 채웠다.

수줍게 웃으며 뒤돌아

목례를 하는 어르신, 멋지다.

나도 저렇게 나이 들면

좋겠구나.


남은 호수길을 마저 돌고

K는 집으로 돌아왔다.

아까 본 장면을 떠올려봤다.

부럽기도 하고 또 보고 싶기도 했다.

클래식 음악을 자주 들어봐야겠어.

모르면 알 수 없지.

친숙해지고 익숙해져야겠다.

K는 앞으로 가리지 않고

다양한 음악을 들어야지 생각했다.

괴테가 그랬다고 하지.

누구나 매일 한 곡의 노래를 듣고

한 편의 아름다운 시를 읽고

좋은 그림을 감상하며

가능하다면 몇 마디

도리에 맞는 말을 해야 한다고.

이제는 가사 없는 음악도

찾아 들어봐야겠다.

그리고 이제는

한 번 어릴 적 못다 한 꿈을 이뤄볼까.

K의 마음에 직접 연주한

피아노곡 한 송이가 피어났다.


https://youtu.be/v18agl7Yd0A?si=DL3sl-T1q2z0EwLu

누군가 피아노를 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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