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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옷을 벗고 있다

2024.3.27.

by 친절한 James Mar 27. 2024


"철컥"

"삐삐삐 삑 삐빅"

도어록이 알은체를 했다.

현관문이 열리고 닫혔다.

센서 등이 기지개를 켰다.

부스럭, 탁탁, 쿵.

신발은 신발장에 들어갔고

J는 현관에 들어섰다.

"다녀왔습니다."

바로 옆에 있지 않았다면

들을 수 없을 만큼 작은 목소리.

대화라기보다 독백에 가까운,

스스로를 달래는 나직한 토로.


J는 바로 앞에 있는

공부방으로 들어갔다.

말이 공부방이지, 한쪽은 책상이고

맞은편은 벽걸이 행거와

작은 옷장이 놓인 공간.

여기서 공부한 적이 언젠지 까마득하네.

J는 익숙한 손놀림으로 옷을 벗었다.

미세먼지 향기 풍기는

검은색 모직 반코트를 벗어

옷걸이에 걸었다.

의류관리건조기가 있으면 편하다던데

이참에 하나 살까. 중고도 괜찮으려나.

요즘 종종 드는 생각이지만

막상 찾아보지는 않았다.

바지 단추를 풀고 지퍼를 내리고

한쪽 다리를 빼내었다.

그러고 보니

난 매번 왼발을 먼저 들어 올리네.

그게 더 안정적인가.

아무튼 바지도 걸고 티도 벗자.

몸이 가벼워지고 마음도 가뿐해졌다.


외출했다 집에 오면

제일 먼저 옷을 갈아입어야지.

옷을 입는다는 것,

때와 장소에 맞는 의복을 갖춰 입고

밖에서 활동하다가

자신만의 보금자리로 돌아오면

외부에서 나를 꾸미고 지켜 준

갑옷을 벗고 긴장을 풀고

온전한 속살을 내밀어

쉼의 여백 속에 빠져드는 거야.

J, 당신은 옷을 벗고 있다.

의식하지 않아도

손과 발이 움직이며

미션을 완수하지.

무슨 자동인형 같단 말이야.

J는 자신과의 대화가 익숙했다.

집에 다른 사람이 없으니 더 그런가.


어느덧 J는

속옷과 양말만 걸친 반알몸이 되었다.

옷장 옆 거울을 봤다. 살이 좀 쪘나.

아직 이만하면 나쁘지 않아.

배에 힘을 줘 본다. 날씬해졌다.

숨 참기가 힘드네.

J는 해묵은 빚을 갚듯

잠옷을 훌렁훌렁 걸쳤다.

얼른 몸뚱이를 가려야지.

너무 멋진 몸이라

다른 사람이 훔쳐보면 어떡해.

운동을 다시 시작해야 할 것 같은데

언제 하지. 뭐가 좋을까.

의미 없는 듯

매일 비슷한 생각의 고리에 빠졌다가

돌아오는 반복의 순간.

이런 걸 생각이라 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변화 없는 되돌이표는

이제 그만두면 좋겠다.

그래, 일단 손부터 씻고

밥을 먹어야겠다.

J는 방에서 나와 화장실로 들어갔다.

휴, 오늘도 수고 많았다.


https://youtu.be/bYjuwTSc-XI?si=1X97oWssbovrmetl

당신은 옷을 벗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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