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는 전 재산을 날렸다

2024.4.10.

by 친절한 James


"제발 살려주세요.

저는 가진 걸 다 날렸어요.

이 사기꾼들 꼭 좀 잡아주세요!"

그녀는 한참을 울먹였다.

민원을 만나는 건 일상이었지만

유독 기억에 남는 사람이었다.

아직 시보가 끝나기 전이라 더 그랬는지도.

벌써 5년 전이었지만 지금도 생생하다.


K는 새내기 경찰이었다.

시민의 지팡이가 되겠다는

투철한 사명감은 없었다.

그저 어릴 적부터 멋있어 보인

경찰이 되고 싶었다. 공무원이라고 하니

그것도 끌렸다. 경찰차가 지나갈 때면

나중에 꼭 타봐야지 생각했다.

시험에 합격하고

경찰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큰 감흥은 없었다.

삼수까지는 안 가서 다행이라고,

컵밥 먹던 백수가

이제 고시촌을 벗어나

번듯한 직장을 가졌다고,

지금껏 힘들게 키워주신 홀어머니에게

작지만 큰 자랑거리가 된 점이 좋았다.


첫 발령지는 H 지구대였다.

전국에서 사건 사고가

많기로 유명한 곳이었다.

주취자 대응은 일상이었고

각종 폭력 사건도 종종 일어났다.

K는 2살 많은 동기 O와 함께

근무를 시작했다.

O는 가끔 얄미울 만큼 선배들에게

싹싹했고 굵직굵직한 사건

몇 건에 이미 참여했다.

평가도 잘 받는 것 같았고

내심 자부심도 있어 보였다.

K는 그렇지 않았다.

선혈이 낭자한 현장은 가보지 못했고

그러고 싶지도 않았다.

고속 승진 따위는 필요 없으니

몸 건사하면서 그저 오래 있으면 했다.

민원 응대를 할 때도

사무적인 태도가 묻어났고

상사에게 핀잔을 듣기도 했다.

그런 K에게 그날의 사건은 전환점이었다.


그녀는 빌라 세입자였다.

장애가 있는 어머니를 모시고

미용실을 운영하고 있었다.

작은 오피스텔에서 살다가

혼자 사는 어머니와 함께 살려고

좀 더 큰 신축 빌라에 전세를 얻었다.

하필 이게 깡통 전세일 줄이야.

부동산을 잘 몰랐던 그녀는

입주할 때 여러 가지도 챙겨주고

편의도 봐준 분양 업체와

공인중개사의 말만 믿고 이사했다.

2년 동안은 잘 살았다.

금리가 계속 오를 때라 집주인이

역월세를 주면서 있어 달라고 해서

그러려니 했다. 이게 전세사기일 줄이야.

보증금은 반드시 돌려받는다고 했지만

모두 짜고 임차인인 그녀를 속였다.

잘 살던 집이 압류되어 경매로 넘어간다는

날벼락이 날아들었고 그녀의 보증금은

가습기 수증기처럼 증발해 버렸다.

집주인은 체납자였기에 경매 낙찰금은

대부분 세금 변제에 쓰이고 그녀 가족은

길거리로 쫓겨날 지경이었다.

그녀는 전 재산을 날렸다.


K는 그녀에게 동질감을 가졌다.

가족이 홀어머니 한 명뿐인 것도,

고향이 같은 것도 그랬고

자기도 전세에 살고 있기에

더 그랬다. 경찰서에서 눈물로 호소하는

그녀를 도와주고 싶었지만 안타깝게도

근본적인 해결책을 줄 수는 없었다.

자기가 부자라면 작은 방을 알아봐 주면

좋겠다 생각했지만 어림없었다.

모아둔 돈은커녕 매달 생활비도

빠듯한 시보였다. 제 코가 석자였다.

주택도시보증공사 전세피해지원센터에

연락해 지원을 받도록 연계했는데

뾰족한 대책은 없었다.

다행히 지방도시공사

임대주택에서 임시 거처는

마련했다고 들었는데

그 이후로는 어떻게 되었는지 모르겠다.

세상에는 이렇게 힘겨운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았다. 경찰이 되어보니

그런 일들이 적지 않아서 안타까웠다.

현장으로 출동하는 경찰차 안에서

K는 생각했다. 그저 잘 살고 있기를.

그리고 어떤 상황에서든

피해자들이 더 생기지 않기를.


https://youtu.be/H7cCbQ_SSDk?si=8iaetzaerEEFTekB

그녀는 전 재산을 날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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