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무의 냄새

2024.10.3.

by 친절한 James


발걸음의 무게를 덜어내고 있다.

어두운 산길은 종이에 번지는 물방울처럼

옅어지고 흐려진다.

햇살의 간질거림이 암흑을 흔들어 틈을 내고

나무줄기를 닮은 빛줄기가 하늘에 물들고 있다.

길이 차츰 또렷해졌다.

선선한 응달에 보송한 햇볕이 고이고 있네.


바다가 내다보이는 산속 암자로 가는 길이다.

산아래 진입로에서 중턱 주차장까지는

차를 타고 왔다. 일주문에서 시작한 도보는

그들을 굽이굽이 산 안쪽으로 끌어들였다.

오늘 일출을 보려고 숙소를 일찍 나섰다.

풍경 좋고 영험한 곳이라 방문객이 많은데

아직은 한산하다.

새해 첫날은 아니고 주말도 아니다.

물론 그들에게는 더없이 소중한 날이다.

남해로의 신혼여행 중이니까.

지금 그들은, 뭐랄까,

시간의 솜털 한 올 한 올이

세밀한 부드러움으로

살랑이며 가볍게 물결치는 기분이다.

지금까지, 그리고 이곳까지 이어진

나날들이 바람처럼 귓가를 스쳤다.

눈물에 젖어 무거운 날도 있었고

웃음에 날려 가벼운 때도 있었다.

그저 말없이 바라봄

마음을 나누던 순간도,

감정을 외치며

가슴을 울리던 시절도 있었다.

여태 그런 날들이 있었고

앞으로도 많은 하루들이

그들 앞에 펼쳐질 것이다.

때로는 그들의 의지와 상관없이

어렵고 힘든 일들이 있겠지.

그래도 손을 놓지 않고

함께 걷는 걸음을 멈추지 않을 테야.


어둠은 밝아지며 길을 비출 것이다.

지금처럼.

아, 이제 목적지가 얼마 남지 않았다.

활짝 펼쳐진 하늘과 산, 바다를

마음껏 바라볼 수 있게

길 한쪽에 튀어나온 반원 데크에 다다랐다.

순백의 구름 이불을 뚫고 태양이 떠올랐다.

와, 정말로 영롱하고 따사로운 빛이네.

눈길이 닿는 모든 곳마다

금빛 주황빛 행복이 물결쳐 흐른다.

막힘없이 탁 트인 자연의 품이

그들을 넉넉히 안아 주었다.

살아왔고 살아갈 시간들이 이와 같기를.

고통은 지나가고 아름다움이 남기를.

앞이 보이지 않는 캄캄함 속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고 나아가며

지금처럼 밝게 타오르기를.


먼바다에서 피어오르는 건

안개일까 구름일까.

일출의 온기에 바삭해지는

해무의 향기가 느껴지는 듯하다.

잘 마른 빨래처럼,

바스락거리는 낙엽의 내음처럼,

이슬 머금은 솔잎의 향취처럼,

맑은 바다향기가 바람에 실려

숲 속 그들을 감쌌다.

평온하다.

그윽하다.

지금 우리도 그렇다.


해무의 냄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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