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조 안에 몸을 푹 담글 때
2024.10.5.
by
친절한 James
Oct 5. 2024
"아~"
탄식이 나왔다.
시냇물이 흐르듯 자연스럽게,
뿜어지듯 입에서 스며 나오는 소리.
이 순간만큼은 걱정도, 근심도 없지.
세상의 풍파를 견뎌 낸 몸을 누일 작은 공간,
넓지 않고 크지 않아도 좋다.
피로를 녹일 따스한 물이 담긴 욕조면 충분해.
화려한 무늬나 장식도 필요 없다.
물만 있어도 좋고
향긋한 입욕제까지 있으면 더 좋다.
바삐 돌아간 일상에서 빠져나와
나만의 작은 공간에 들어섰다.
깊은 가을 산속 호수처럼 고요하다.
손발을 까딱까딱 놀려볼까.
백조의 호수란 여기를 두고 하는 말일까.
심장 박동은 왈츠 선율에 맞춰
경쾌한 리듬을 울리네.
공기 중에서 물속으로 들어설 때
수면이 몸 구석구석을 매만져 준다.
낭만적 왈츠는 아라베스크로 첨벙거렸다.
양수가 이런 느낌이었을까.
따뜻하고 포근한 어머니의 자궁 속에서
1년 가까운 시간 동안 몸을 의탁한 곳,
무조건 보호받고 사랑받은 공간,
새싹처럼 자라는 작은 생명을 잉태한
작지만 큰 우주, 위대한 성배.
의식적인 기억은 없다.
무의식적인 추억은 분명
세포 하나하나에 새겨져 있을 듯하다.
태곳적 평화를 품은 그곳은
모든 이의 고향이다.
삶의 무게 한 방울조차
온전히 내려놓고 마음껏 놀던 곳.
존재 자체가 기쁨이자 축복으로
빛나던 눈부신 시절.
욕조 속에서 그때의 감각과 감성을
일으켜 보려고 눈을 감고 귀를 기울였다.
이런저런 상념이 일고 사라졌다.
생각은 파도처럼 오고 간다.
고요히 멈추는 때가 별로 없다.
어쩌면 그게 생각의 본질일지도 모른다.
계속 생겨나고 없어지는 것.
바람처럼, 파도처럼 무심한 듯 불어오네.
때로는 생각을 내려두는 것만으로도
놀라울 만큼 깊고 편안한 휴식 속에
푹 빠져들 수 있다.
자연 속이라면 더 그렇다.
여의치 않을 때는
이렇게 작은 물 속이라도 좋다.
인생이라.
단말마 이후의 삶은 어떨까.
생각이 끊긴 새로운 삶이 펼쳐질까.
물을 끌어안듯 나를 안아본다.
일렁이는 물결은 곧 내 마음이다.
어쨌든 여태껏 잘 살아왔다.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욕조에서 몸을 푹 담글 때
다시 생으로 돌아왔다.
가을이라는 주머니가
깊어간다.
욕조 안에 몸을 푹 담글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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