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서히 완성되는 밤-데이비드 세인트 존

2024.10.1.

by 친절한 James


낮이 지고 있다.

진다는 말은

저문다는 뜻도 되고

패배라는 뜻도 된다.

지금 낮은 두 가지 의미

모두로 탈바꿈하고 있다.

낮은 약해지고 있고 사라지고 있다.

이글거리던 열정이 꺼지고 있다.

노을은 낮의 마지막 발악이다.

광기 어린 외침은

피를 토하며 하늘을 물들인다.

스러져가는 추억은 아름답다.

감탄이 나올 만큼 눈부시다.


이젠 빛의 흔적이 거의 사라졌다.

그리움보다 짙은 어둠이 내려앉아

길을 비추고 있었다.

어스름한 후회가 깔려온다.

땅거미가 기어 다니고 있다.

이제 곧 이 녀석도 땅 속으로 파고들어

없어질 터이다.

더 어두워지고 더더욱 캄캄해지겠지.

서서히 완성되는 밤이라고 해 두자.

밤이 촘촘해지며 숨이 가라앉는다.


한낮처럼 활발하지는 않아도,

새벽처럼 예민하지는 않아도

차분한 번뜩임이 정신을 채운다.

지나치지도 모자라지도 않는

딱 좋은 각성 상태라고 할까.

상대방을 너무 의식하거나

나를 너무 내세우려고 하지 않는 대화,

잘 들어주고 알맞은 말을 쓰고

적절한 공감이 오가는 이야기가

두런두런 꽃피는 시간이다.

시끄럽지 않은 음악이 경쾌하게 물든다.

가사는 없고 여러 악기가 조화로운 선율을

보드라이 뭉쳐내는 연주,

오늘 같은 밤을 닮았구나.

귀여운 웃음이 상큼하게 터졌다.

짜낸 여드름처럼 시원 팡팡하다.

구름에 모습을 감췄던 달이 드러났다.

선탠처럼 문탠도 있다고 하지. 달맞이.

달빛에 몸을 담가 밤의 공기를 가르는 시간.

얼굴에 뭘 펴 바를 필요는 없지.

설레는 마음만 담아가도 충분할 거야.

손을 마주 잡고 걸어 나가볼까.


이제 밤은 푹 익었다.

해의 자취는 찾을 수 없는

검고 검은 시간의 풍경.

달빛이 없다면

밤의 낭만이 완성되지 않아.

꼭 보름달이 아니어도 좋다.

밤 한 조각을 담아낼 수 있는

느낌 한 스푼이면 충분하니까.

별빛까지 담아 더욱 알찬 날이 되었다.

그리고 맞잡은 우리의 손,

밤은 완성되었다.


서서히 완성되는 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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