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이 피부에 닿는 느낌
2024.9.29.
by
친절한 James
Sep 29. 2024
아, 몸이 피로에 젖었다.
소금물 절인 배추처럼
사지는 흐느적 툴툴대며 숨이 죽었다.
활력소가 필요하다.
물기 빠진 세포벽을 채우듯 수분을 머금자.
몸 틈새마다 촘촘히 박힌 피로를 씻어내자.
어떻게 하면 좋을까.
첫사랑을 마중 나가는 가을의 노래처럼
짭짤한 탕 속으로 뛰어들 차례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
바닷물로 채운 사우나로 갈 시간이다.
오랜만이다.
해수탕, 바다 향기가 가득한 공간.
수도꼭지를 틀었다.
어김없이 뿜어져 나오는 물줄기가 반갑다.
물방울들은 바로 이 앞에서
이때의 만남을 기다리고 있었을 텐데
언제 올지 모를 지금을 위해
보글보글 두근거리고 있었겠구나.
셀 수 없이 많은 물 분자들이
살갗에 닿고 엄청난 진동수가
미세한 떨림으로 온몸을 감싸 안는다.
행복이 살에 닿은 듯 선명한 감촉,
얇게 덧칠해지는 물의 막은
봄날의 꽃잎처럼 향기롭게 흩날렸다.
삶이라는 고단한 여정에 묻어난
찌꺼기들을 보듬어 씻어 내렸다.
미온수가 좋다.
뜨거운 물은 깜짝 놀라고
차가운 물은 화들짝 놀라니까.
산들바람처럼 부드럽게
내 몸에 감기는 착용감이랄까.
물의 옷을 가볍게 걸치는 기분이 좋다.
슬픔의 때를 머금어내는 촉촉한 간질거림,
눈을 감고 느껴보자. 모든 것이 밝고 아름다운
물방울들의 합창을, 몸에 그려지는
물결의 지도를, 하늘을 가득 채운
가을 푸르름을 닮은 수분의 향취를.
기울어가는 달빛의 손길처럼
머리를, 얼굴을, 어깨와 팔을,
손을, 가슴과 배를, 등을,
다리와 무릎과 발을 어루만지는
어린 손결을 담는다.
몇 년 전의 기쁨과
몇 달 전의 외로움과
며칠 전의 감동을 매만지는 추억이
물결 따라 일렁이고 흘러간다.
염화나트륨 내음에 담긴 수 억년 전의 기억,
물에서 태어나 물과 함께 살다가
물처럼 떠나갈 시간,
물이 피부에 닿는 느낌,
물속에서 삶을 적셔내는 순간이다.
물이 피부에 닿는 느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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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욕
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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