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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친절한 James Nov 20. 2024

어느 지점에서 죽음이 시작되었다고 말할 수 있는 자..

2024.11.20.


깊은 고요를 뚫고

귀를 파고드는 경쾌한 리듬,

부드러운 멜로디가 다양한 변주 속에서

춤을 추고, 아침을 바삐 달려온 마음에

작은 쉼 한 모금을 건네는 순간.


해는 뜨고 날이 밝았다.

낡은 날이 지나고 새 날이 왔다.

어둠이란 껍질을 벗고 빛이 떠올랐다.

그렇게 하루는 다시 시작되었구나.

어제와 오늘의 경계는 무엇일까.

밤 12시가 기준일까.

시간 기준대가 다른 곳에서는

밤을 맞고 낮을 피우는 때도 다르다.

밤과 낮은 다른데

그 사이에 서로를 향해

자신을 바꾸는 찰나가 있다.

그때는 밤도 아니고 낮도 아니다.

아침 또는 저녁, 혹은

새벽녘이나 해 질 녘으로 불린다.

어쩌면 시간이란 하나인데

우리는 그 단면을 보고

마음대로 이름을 붙여 부르는 건 아닐까.

눈을 감고 코끼리를 만지며

내가 아는 것이 전부라고 하는 것처럼.


삶에는 태어남과 죽음이 있다.

태어나면서 삶이 시작되고

죽으면서 삶이 종료된다고 한다.

적어도 지구상에서의 모습은 그렇다.

삶 속에, 양 끝단에 매어 둔

태어남과 죽음이란 한 순간일까.

단지 한 번씩만 나타나는 일일까.

삶은 언제부터 시작되는 걸까.

태어나기 이전의 삶이 있을까.

그리고 죽음은 언제부터 시작되는 걸까.


<어느 지점에서 죽음이 시작되었다고

말할 있는 자는 누구인가 - 비아 로우>

오늘의 주제문이다.

태어나면서 죽음이 예정되어 있다면

태어나는 순간부터 죽음이 시작되는 건 아닐까.

카운트다운은 이미 진행 중이다.

언제 끝날지는 알 수 없다.

그래도 마냥 불안해하거나 좌절할 수는 없지.

끝이 있다고 해서

모든 게 끝난 건 아니니까.

시작과 끝, 양 끝을 잇는 사이가

어떤 모습을 가질 수 있을까.

그건 삶을 어떻게 할 것인가,

어떤 인생을 살아낼 것인가와 직결된다.

죽음의 파도도 삶의 열정과 의지를

무너뜨릴 수는 없다.

죽음 속에서 다시 태어나는 피닉스처럼

우리는 사랑의 힘으로

새롭게 떠오르고 탄생할 것이다.


어느 지점에서 죽음이 시작되었다고 말할 수 있는 자는 누구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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