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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친절한 James Feb 08. 2024

그가... 을 하면서 살던 시절이었다

2024.2.8.


"자, 이제 시작해 볼까? 다들 책 펴고..."

"아, 조금만 더 있다가 하면 안 돼요?"

"우리 벌써 10분 넘게 쉬었어.

 아까 간식도 미리 먹었고.

 일찍 끝내줄게. 힘내자."


창가에 걸린 하늘이 어스름해지는 시간,

그는 교복을 입은 세 명의 아이들을

앞에 앉히고 교재를 펼쳤다.

귀여운 투정을 다 받아주다가는

진도를 제때 뺄 수가 없지.

그래도 오늘은 분량이 안 많아 다행이다.

내일부터 연휴니까 좀 빨리 마무리할까.


그는 책에 정리된 개념들을 설명했다.

화이트보드에 공식을 쓰고

그림을 그리며 말을 이어갔다.

간단한 문제를 몇 개 같이 풀고

숙제로 내준 분량을 확인했다.

틀린 부분을 점검하고 풀이해 주었다.

추가 질문을 받고 답변을 해준 다음

출력해 둔 종이를 아이들에게 주었다.

"이건 오늘 배운 내용과 이어지는

 기출문제들을 선생님이 정리한 거야.

 양이 많지는 않으니까 다음 주까지

 찬찬히 풀어봐. 오늘도 고생 많았다."

"네 알겠어요."

"고맙습니다."

"오, 일찍 끝났네요. 수고하셨습니다."

아이들은 후다닥 짐을 챙겨 문을 나섰다.

그는 방을 정리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벌써 20년 가까이 지난 이맘때 풍경인가.

그가 알바를 하면서 살던 시절이었다.

고등학교 1학년 아이들에게 

수학과 영어를 가르쳤다.

과외라고도 할 수 있을 텐데

돈을 받지는 않았다. 

그렇다고 뭔가 대단한 사명감이나

희생정신으로 하는 건 아니었다.

재능기부라고 할 만큼 재능이 

뛰어나다고 생각하지도 않았다.

좋은 일을 한다는 자부심까지는 아니지만

아이들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면

좋을 것 같았다. 

대학교 신입생 그는 

수업을 마치고 돌아와

수업을 하고 집에서 저녁을 먹었다.

주로 듣던 사람에서 말하는 사람이 되어

한두 시간을 보내곤 했다.

학교에서 듣고 겪은 일들을

들려주기도 했다.


아이들이 읽고 푸는 문제들은

그가 불과 몇 년 전에 다루던 것들이었다.

나이 차도 얼마 안 나는데 선생님이라니.

그는 겸연쩍기도, 뿌듯하기도 했다.

남들이 떠들던 캠퍼스의 낭만은

안보였지만 이런 생활도 나쁘지 않아.

참 감사한 일이지. 안 그래? 

감사하다는 건, 인생을 선물로 느끼는 

하루라고 하니까. 오늘도 선물 받은 거네.

내년 군대 가기 전까지 하는 거니까

조금만 더 힘내보자. 

아, 이제 출출하네.

오늘은 어머니가 해주신 곰탕에 

밥 말아서 깍두기랑 먹어야겠다. 

그의 발걸음이 차츰 빨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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