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릉도에 가을이 왔다.
세 번째 계절을 이 섬에서 맞이한다는 사실이 낯설다.
그 낯섦은 곧 익숙함이 되고, 익숙함은 때로 마음을 느슨하게 만든다.
하지만 가을은 느슨함보다는 선명함을 품은 계절이다.
하늘은 높고, 바다는 한층 더 깊고 푸르다.
여름이 남기고 간 열기마저 파도가 훑고 지나가면서, 섬은 제 속도로 천천히 식어간다.
가을을 맞이하며, 환경미화원 형님이 돈 벌자고 연락이 왔다.
추석을 앞두고, 객지생활로 때론 연로한 어르신들 벌초를 대신해 주는 아르바이트...
일명 ‘벌초 대행.’
가족이 직접 해야 할 일을 남이 대신한다는 게 이상하게 느껴졌지만, 곧 그런 생각이 내 경험 밖에서 비롯된 것임을 알게 됐다.
벌초를 하는 날은 이른 아침부터 움직였다. 낫과 장갑, 물통을 챙기고 차를 타고 해안도로를 달리는 시원함이란 일이라는 것보다 상쾌함을 느끼는 일상이었다.
그렇게 도착한 비탈진 언덕길을 오르다 보면 이내 땀이 비 오듯 흘렀다.
묘지들은 산비탈을 따라 다닥다닥 붙어 있었다. 이렇게 표현하는 게 적절할지 모르겠지만 마치 두루마리 화장지 엠보싱처럼 울룩불룩 붙어있는 묘들이 많았다.
울릉도의 좁은 땅에 수많은 묘들이 있고 그 묘들은 칡넝쿨이 덮고 있어 걷어내기 전에는 누구의 묘인지 가늠이 되지 않을 정도로 비석은 의미가 없었다. 그래서 큰 나무를 심어 위치를 확인하는 방법으로 조상의 묘를 찾고 성묘를 하는 일들이 많다고 한다.
"여긴 제대로 표시 안 해놓으면 조상 묘도 못 찾는다." 함께 일하던 형님이 웃으며 던진 말이지만, 그 웃음 속엔 삶의 쓸쓸한 단면이 배어 있었다.
형님이 에피소드를 얘기해 주었다.
이곳은 묘비를 세우지 못한 묘들이 많다 보니 자주 찾지 않으면 본인 조상묘를 찾지 못해 남의 조상묘에 제를 올리는 경우도 종종 있다는 얘기를 한다.
실제 제를 올리는데 다른 일행이 올라와 “여기서 왜 제를 올리느냐.?” 묻더란다.
대답하기를 “우리 조부님 묘에 성묘하다.” 답을 하니 상대방이 “거긴 우리 아버지 묘야.”라고 하며 서로 조상의 묘라고 실랑이가 벌어지는 경우도 종종 있다고 한다.
누군지도 모르는 고인의 무덤 앞에 앉아 풀을 베고 묵념했다.
이름 없는 묘 하나에도 누군가의 오랜 기다림과 사연이 있다는 생각이 들자,
손에 쥔 낫이 무겁게 느껴졌다.
그렇게 며칠을 흘려보내고, 추석이 가까워졌다.
같이 일하던 동료들이 슬며시 말했다.
"형님, 육지 다녀오세요. 가족들도 기다리실 텐데." 그 말 한마디가 마음에 오래 남았다.
올해는 연휴가 있다고 해도 이곳은 휴일 없이 근무를 해야 하는 곳이라 누군가는 추석연휴에도 일을 해야 하는 곳이다. 눈치를 보며 조용히 보내려 했던 명절.
하지만 뜻밖의 배려가 나를 다시 고향으로 이끌었다.
짐을 싸고, 배에 올랐다.
출항하는 배의 뱃머리에서 섬을 바라봤다.
가을 햇살에 물든 울릉도가 천천히 멀어졌다.
이제는 익숙한 이별이지만, 떠날 때마다 마음이 흔들린다.
세 달 만에 만나는 가족. 그리고 고향집의 냄새. 모든 게 그대로였다.
하지만 나만은, 어딘가 조금 달라진 듯했다.
"떠나서 살아보니 좋더냐? “
"얼굴이 편해졌다. 예전보다 훨씬 좋아 보여." 가족의 말에 그저 웃기만 했다.
정말로 좋아졌는지, 아니면 그냥 괜찮은 척하는 건지는 나도 잘 모르겠다.
하지만 분명한 건, 섬에서의 시간들이 내 안의 뭔가를 바꿔놓았다는 것이다.
명절 연휴는 금세 지나갔다. 온 가족이 음식을 준비하고, 차례상을 함께 차리고,
밤엔 오랜만에 옛이야기를 나눴다.
고향의 온기는 언제나 따뜻하고,
그 온기 안에서 나는 오래도록 말없이 앉아 있었다.
다시 울릉도로 돌아오는 길,
그리움과 안도감이 동시에 밀려왔다. 이번엔 조금 덜 아쉬웠다.
왜인지 모르게, 돌아갈 곳이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충분했으니까.
추석이 지나고, 울릉도는 다시 활기를 되찾았다.
한동안 조용했던 마을엔 관광객들의 발걸음이 이어지고, 식당, 선착장 주변은 사람들로 북적였다. 섬은 다시 분주해졌고, 나는 그 분주함을 한 발짝 떨어져 바라보았다.
그즈음, 태풍이 섬을 스쳤다. 아니, 스쳤다고 말하긴 어려울 정도로 거세게 몰아쳤다.
울릉도에서 맞이하는 태풍은 그야말로 상상을 초월했다. 집 안 창문이 떨릴 정도로 불어대는 바람, 밤새 이어지는 굉음에 잠을 설쳤고, 아침이 되자 일주도로 여기저기에 바위가 굴러 떨어져 도로가 통제됐다.
그날은 저녁 식사 초대에 바람을 뚫고 나갔다가 처음으로 ‘앞으로 걷는 것’이 이렇게 어려운 일이구나, 실감했다. 몸이 밀리고, 바람이 얼굴을 때렸다.
그렇게 태풍은 순식간에 지나가고, 섬을 쓸고 나갔다.
그리고 그 다음날. 거짓말처럼 모든 것이 고요해졌다.
구름 한 점 없이 새파란 하늘, 어느 때보다 맑고 투명한 바다, 부서질 듯 반짝이는 방파제 위의 햇살.
그날의 하늘은, 그 어떤 순간보다 평화로웠다.
섬의 고요 속에서 오래도록 바다를 바라보았다.
세찬 바람도, 흩날린 낙엽도, 무너진 도로도 결국엔 다시 제자리로 돌아올 것이다.
그리고 나 역시, 흔들리다 멈춰 선 삶을 다시 천천히 걸어갈 것이다.
그렇게 계절은 또 하나의 문을 열고 있었다.
섬의 겨울은 과연 어떤 표정을 하고 있을까.
나는 그 겨울을 맞을 준비를, 조금씩 시작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때,
예상하지 못한 소식 하나가 나를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그 소식이 다시 한번 내 삶의 방향을 바꾸게 될 줄은, 그 순간엔 미처 알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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