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긴 밤
그날도 별일 없는 하루였다.
아버지와 아침 통화를 했고, 평소와 다름없는 짧은 말들이 오갔다.
“밥 잘 먹고, 잘 지내라.”
그 말이 그날 들은 마지막 인사가 될 수도 있다는 것을,
그땐 미처 몰랐다.
저녁 무렵, 엄마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
수화기 너머로 들리는 엄마의 목소리는 평소보다 훨씬 떨리고 있었다.
“아버지 쓰러지셨어… 지금 대학병원 응급실에 오자마자 과다출혈로 의식이 없어.
소생이 어려울 수도 있대…”
숨이 턱 막혔다.
말문이 막힌다는 말이 이런 것이구나 싶었다.
나는 손에서 휴대폰을 놓지도, 붙잡고 있지도 못한 채
그 자리에 앉아 멍하니 어둠이 내리는 창밖을 바라봤다.
울릉도.
이 섬은 평소엔 고요하고 단단했지만,
그 순간엔 도저히 빠져나올 수 없는 외딴섬 같았다.
내가 엄마 옆에 있어야 하는데,
엄마 혼자 병원 응급실에서 아버지를 바라보고 있다는 사실이 나를 죄인처럼 만들었다.
엄마는 평정심을 유지하려 애썼지만, 그 말끝에서 느껴지는 불안은 쉽게 지워지지 않았다.
"지금 너는 올 수 없지… 배도 없고, 어쩔 수 없지…"
그 말에 더 미안해졌다.
누군가의 말처럼, '어쩔 수 없다'는 말은 무력함을 인정하는 답일뿐이다.
배는 다음 날 오후에나 있었다.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그 밤.
그 밤은 내 생의 가장 긴 밤이었다.
눈은 감겼다 떠지기를 반복했다.
몸은 피로했지만 정신은 도무지 가만있질 못했다.
혹시…
혹시 아버지를 다시는 뵙지 못하게 되는 건 아닐까.
그 두려움이 온몸을 조였다.
홀로 누워 있는 작은 방 안에서 그토록 넓은 세상과 단절된 감각은 처음이었다.
정말로 내가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다는 걸, 몸으로 느낀 밤이었다.
다음 날 아침.
오전 근무를 마치자마자 급히 배낭을 메고 배에 올랐다.
하늘은 청명했지만 마음은 잿빛이었다.
선착장을 떠나 멀어지는 섬을 보며,
나는 간절히 기도했다.
부디…
제발…
한 번만 더, 아버지의 손을 잡게 해달라고.
대구 병원에 도착하자 밤이 되었다. 어두운 마음으로 병실로 향했다.
위기를 넘기고 다행히 응급실에서 일반 병실로 옮겨 아버지는 침상에 누워 계셨다.
얼굴은 한눈에 봐도 수척했고, 눈을 뜨고 계셨지만 초점은 흐렸다.
내가 눈앞에 있는데, 당신은 꿈을 꾸는 것처럼 나를 부르며 하시는 첫마디
“너, 나 죽으면 어떡할래.”
그 말은 마치 한평생 가장 묵직하게 마음속에 숨겨두셨던 말을 마지막으로 꺼내는 듯했다.
“백수가 되더라도, 나왔으면 좋겠다…”
그 말을 듣는 순간, 나는 숨을 들이마신 채 한동안 내뱉지 못했다.
왜 하필 그때, 그 말이었을까.
그 한마디에 섬으로 떠나올 때 품었던 나름의 결심과 명분들이 모두 부끄러워졌다.
다행히 아버지는 의식이 회복되었고 일반 병실에서 며칠간 경과를 보기로 했다.
그러나 안도의 한숨도 채 끝나기 전, 또 다른 전화가 걸려왔다.
“할머니가 쓰러지셨어.” 요양원에서 걸려온 전화.
100세를 바라보던 우리 할머니.
누구보다 정정하고 말씀도 또렷하시던 분이었는데,
갑작스럽게 의식을 잃고 쓰러졌다는 소식이었다.
의식이 돌아오지 않는다고 했다.
엄마는 고향으로 급히 내려가셨고,
나는 병원에 남아 아버지를 지켰다.
온몸은 쪼개진 것처럼 갈라져 있었고, 마음은 이미 그 어느 곳에도 닿아 있지 않았다.
무너진 건 시간도, 건강도, 나 자신도 아닌 이 상황을 제자리에서 바라볼 수밖에 없는 나의 무력함이었다.
다음날 아버지도 그렇지만 마지막이 될지도 모를 할머니를 뵙기 위해 고향으로 갔다.
그렇게 마주한 할머니의 모습 깊은 잠을 주무시는 평온한 모습이었다.
언제 선종하실지 모를 할머니를 그리고 아버지를 모시고 있을 수는 없었다.
나는 내 자리로 돌아가야했다.
그렇게 나는 내 삶이 터전 울릉도로 복귀하고 보름 뒤, 할머니는 끝내 의식을 회복하지 못하고 조용히 세상을 떠나셨다.
임종조차 지키지 못한 손자.
그 불효는 내 삶 어디쯤엔가 오래도록 남을 것이다.
장례식장에선 수의보다 먼저 죄책감을 입었다.
마주한 고모들의 눈빛도, 나보다 더 많이 울지 않으려 애쓰던 엄마의 눈물도
그저 죄스럽게 느껴졌다.
나는 왜,
내 삶을 살겠다는 명분 아래
소중한 것들을 지키지 못한 채 서 있었을까.
섬에서의 삶은 나를 단단하게 만들 줄 알았지만,
그 단단함은 누군가의 슬픔 앞에선 너무도 쉽게 부서졌다.
무엇이 의미 있는 삶이고,
무엇이 가치 있는 선택인지
나는 도무지 알 수 없었다.
단지 한 가지 분명한 것은, 그해 가을 이후
나는 더 이상 예전의 내가 아니었다.
울릉도로 돌아온 나는,
이제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잎 하나에도 마음이 흔들렸다.
가끔은 섬의 고요가 내 안의 고요와 닮았다고 느꼈고,
어느 날은 그 고요가 모든 감정을 덮어버리는 침묵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그렇게 나는, 다시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섬의 일상으로 걸어 들어갔다.
하지만 알고 있었다.
이제부터의 시간은 전과는 조금 다를 것이라는 것을.
그렇게 나의 가을은 지나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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