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들리고 방황하는 시간 속에서 나는 결국 제자리로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그것은 도망이 아니라, 오히려 삶이 내게 내린 또 하나의 결정이자 숙명이었다. 다시금 바람 앞에 서야 했고, 그 앞에서 나를 시험하는 듯한 시간들은 여전히 이어지고 있었다.
그러나 달라진 것은 있었다. 이제는 흔들리면서도 중심이 무너져 내려 일어설 수 없는 삶은 살지 않겠다는 다짐이 내 안에 단단히 자리하고 있었다. 그 다짐 하나가 나를 붙잡았고, 그 덕분에 나는 허우적거리며 무너지던 과거의 나와는 조금 달라진 모습으로 하루하루를 이어갈 수 있었다.
새로운 곳에서의 일상은 정신없이 흘러갔다. 일의 흐름은 나를 숨 가쁘게 몰아갔지만, 나는 그 속에서도 잠시 숨을 고를 틈을 반드시 만들어내려 애썼다. 비록 작은 틈이었지만, 그 시간들이 쌓여 나를 지탱해 주었다.
5월, 어버이날을 맞아 부모님을 뵙기 위해 고향집을 찾았다. 가족과 즐거운 시간을 보낸 다음 날, 나는 아버지를 모시고 병원 진료를 함께했다. 하지만 그 진료는 단순한 확인이 아니었다. 팔순의 아버지는 더 이상 약으로만 버틸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고, 결국 큰 수술을 앞두게 되었다.
입원과 수술, 그리고 회복과 악화가 반복되는 나날들. 긴 병실의 시간 속에서 아침저녁 면회는 나를 초조하게 만들었고, 무기력하게 만들었다. 중환자실의 공기는 매 순간 삶과 죽음의 경계를 오갔다.
그렇게 세 달이 지나, 장마와 폭염이 한창이던 어느 여름날. 아버지는 긴 싸움을 멈추고 하늘로 떠나셨다. 그날은 나도 울었고, 하늘마저 함께 울고 있었다. 보내드린 뒤 남겨진 나는 한동안 제자리를 잃은 듯 허공에 떠돌았다.
그러나 흔들리고 방황하는 시간 속에서도, 결국 나는 나를 붙잡기 위해 몸부림칠 수밖에 없었다. 그 몸부림은 때로는 처절했지만, 그 안에서 나는 조금씩 깨달아 갔다. 누군가의 시선이 나를 만드는 것이 아니었다는 것. 세상과 사람들 앞에서 흔들린다고 믿었던 것은, 사실 내가 내 안을 붙들지 못했기 때문이었다는 것.
그리고 그 흔들림의 중심에는 언제나 내가 있었다. 결국 나는 내 안에서 스스로를 세워야 했고, 그것이 삶이 내게 준 가장 깊은 가르침이었다.
물론 깨달음이 있다고 해서 흔들림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나는 여전히 바람 앞에 흔들리고, 때로는 좌절을 맛본다. 그러나 이제는 두렵지 않다. 흔들림이 곧 내 자화상이고, 방황이 곧 내 삶의 무늬임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앞으로도 살아갈 것이다. 흔들리고 방황하는 시간 속에서도, 그 모든 순간을 나의 자화상으로 남기며. 그리고 언젠가, 이 모든 흔들림과 방황이 결국 나를 단단하게 세운 길이었다는 것을, 담담한 미소로 말할 수 있기를 바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