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afety in Sport (1)
최근 프로야구에서 안타까운 사고가 있었습니다. 지난 3월 29일 창원NC파크에서 열린 NC다이노스와 LG트윈스의 경기 중 경기장 내 창문 쪽 벽면에 고정되어 있던 구조물이 떨어져 이동 중이던 여성 관중을 덮쳤고, 낙하물과 충돌한 20대 여성 한 분은 끝내 목숨을 잃었습니다. 예기치 못한 사고에 많은 팬들이 충격을 받았고, 자연스럽게 프로스포츠 경기장의 '안전'에 대한 관심과 우려가 커지고 있습니다. 며칠 전에는 안전 등급이 C등급인 부산의 사직구장에 대한 안전이 우려된다는 기사가 나오기도 했습니다. 이제는 단순히 노후 시설의 문제가 아니라, 팬들의 안전과 직결된 문제로 인식하는 거죠.
K리그에서도 경기장 안전 이슈가 불거진 적이 있습니다. K리그는 종합운동장을 홈경기장으로 사용하는 구단이 많기 때문에, 팬들에게 더 가까운 관람 환경을 제공하고자 가변석을 활용하는 구단이 많습니다. 하지만 가변석은 기본적으로 임시 구조물이기 때문에 지속적인 점검과 관리가 필수적입니다. 2023년 광주FC의 축구전용구장에서는 실제로 가변석이 팬들의 응원과 점프로 인해 크게 흔들리는 일이 있었습니다. 이에 대한 우려가 제기되자, 구단에서는 가변석을 임시 폐쇄하고 긴급 점검을 하기도 했습니다. 다행히 큰 사고는 없었지만, K리그에도 안전은 늘 경계해야 하는 문제임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FAJ0SQB9hOI
다른 영역에서도 마찬가지지만, 경기장에서의 안전 이슈는 그 어떤 것보다도 우선이 되어야 하는 일입니다. 팬과 선수의 생명과 직결되는 일이기 때문이죠. 스포츠에서도 1989년 관람객 94명이 압사한 영국의 힐스버러 참사나, 1992년 프랑스 바스티아의 홈 경기장에서 발생한 스타디움 붕괴 사고 등 안일함과 부주의로 인한 큰 사고들이 종종 발생하곤 합니다. 그리고 이런 사고들은 오랜 기간 동안 그 지역과 스포츠의 아픔으로 남아 있습니다.
최근 국내 스포츠는 안전에 대해 다소 관대하지 않은가 싶습니다. 대표적인 것이 경기장 내 캔 음료 반입에 대한 규정의 변화입니다. 이전에는 KBO(프로야구)와 K리그(프로축구)에서 모두 관중과 선수들의 안전을 위해 캔과 병 등 딱딱한 재질의 음료 용기 반입이 불가능했습니다. 구장 내에서 캔 음료를 판매하더라도 일회용 컵에 옮겨서 제공되어야 했죠. 하지만 최근 환경 이슈와 국민 의식 수준의 향상을 명분으로 야구와 축구 모두 캔 음료 반입이 가능해졌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이런 변화들은 조금 우려스럽긴 합니다. 일회용기를 쓰는 건 환경에 문제가 되겠지만, 유럽의 스포츠 리그처럼 다회용기를 도입하거나, 친환경 재질을 활용하는 등의 대안이 아닌, 그냥 캔 반입을 허용하는 것은 경기장 내 안전을 충분히 고려치 않은 단순히 가장 쉬운 길을 택한 건 아닌지 하는 아쉬움도 있습니다. 실제로 물병과 캔을 경기장으로 투척하는 일들은 아직도 심심치 않게 발생합니다. 텀블러도 허용하는 추세인데, 작년 테니스 대회에서 팬들에게 사인을 해주던 중 관중석에서 실수로 떨어진 텀블러에 맞아 쓰러진 테니스스타 조코비치(Djokovic)는 분명 이러한 결정을 환영하진 않을 겁니다. (높은 위치에서 떨어진 게 아니어서 큰 부상은 아니었지만, 자칫 큰 사고로 이어질 수 있었습니다. 다음 날 조코비치는 머리에 헬멧을 착용하고 등장하기도 했죠.)
https://youtube.com/shorts/MkoW0udeUSQ?si=8bcR-hu1kZ3U2g2q
https://www.youtube.com/watch?v=vVpKzRzc5IY
K리그에서는 경기장 안전사고 예방을 위해 스폰서인 페덱스와 함께 엑시트(Exit) 캠페인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이 캠페인은 비상시 팬들이 경기장 내 비상대피로를 빠르게 찾을 수 있도록 비상대피로 표지판을 보다 명확하고 눈에 띄게 설치하는 프로젝트로 페덱스의 로고 내의 글씨 Ex와 화살표를 활용하여 만든 사이니지가 특징입니다. 작년에는 인천유나이티드의 홈경기장에서 비상대피로 사이니지를 추가 설치했고, 올해는 FC안양의 홈경기장에 설치되었습니다. 어제인 4월 19일 FC안양과 수원FC의 경기부터 안양종합운동장에서도 동선 상 필요한 곳에 부착된 엑시트 사이니지를 볼 수 있습니다. (어제 현장에서 해당 캠페인 런칭 행사를 하느라 글이 조금 늦었습니다.)
축구장을 비롯한 프로스포츠 경기장은 기본적으로 군중이 많이 모이는 다중이용시설입니다. K리그1을 기준으로 매 경기 매진이 되지는 않지만, 평균 경기 당 만 명 이상이 모입니다. 그리고 압사 사고는 꼭 만원 관중이 아니더라도 예상치 못한 사고나 화재, 테러나 자연재해 등으로 인해 다수의 인원이 특정 구역으로 몰리면 쉽게 발생할 수 있습니다. 게다가 경기장에는 수많은 게이트가 있지만 실제로는 일부만 운영되기 때문에 비상시에는 '열려 있는 출구'를 명확하게 안내하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지금도 비상대피 안내 표지판은 경기장에 존재하지만, 작고 눈에 띄지 않아 긴급 상황에서는 제대로 인식되지 못할 가능성이 있고, 엑시트 캠페인은 이런 상황을 보완하기 위한 캠페인이죠.
https://www.youtube.com/watch?v=97d6V7Uz8sY
작년, 처음 캠페인을 시작했을 때 모든 팬의 지지를 받지는 못했습니다. 경기장에 사람이 꽉 차지도 않는데 이런 사이니지가 왜 필요하냐는 의견도 있었고, 사이니지를 처음 설치했던 인천 경기에서 팬들의 물병 투척이라는 다른 안전 이슈가 발생하여 '비상대피로'를 강화하는 것에 대한 공감을 많이 얻지 못했습니다. CSR업무를 하면서 가장 어려운 점이 이런 점입니다.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일을 대비하는 일이기 때문에 다수의 공감을 받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이런 일들은 장기적으로 보면 매우 의미 있는, 꼭 필요한 일들입니다. 페덱스와 함께하는 엑시트 캠페인도 그중 하나죠. 아마 우리가 만든 이 비상대피로 사이니지가 모든 이들의 공감을 받는다는 건 사회적으로 이슈가 되는 큰 안전 문제가 경기장에서 발생했다는 의미이기 때문에, 개인적으로는 이 엑시트 사이니지가 영원히 쓸모없었으면 좋겠습니다. 하지만 언젠가 필요한 순간이 온다면, 꼭 의미 있게 활용되기를 바랍니다.
세계적으로도 스포츠 경기장의 안전은 점점 강화되는 추세입니다. 유럽의 축구경기장을 방문하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우리나라보다 훨씬 꼼꼼하게 소지품을 검사하고, 반입이 금지된 물품들도 많습니다. 일부 경기장에서는 경기장 내에 개인 소지품을 아무것도 가지고 가지 못하게 하는 곳도 있습니다. 안전을 강화한다는 건 이렇게 소비자인 팬의 편의를 떨어뜨리는 일인 경우가 많기 때문에, 실제로 이런 의사결정을 한다는 게 쉽지 않음을 알고 있습니다. (K리그가 캔 반입을 허용하는 것도 실제로 팬 편의 증진 측면도 크게 작용했습니다.) 하지만 안전이 보장되지 않는 편의는 아무 의미가 없죠. 모든 팬들의 지지를 받지 못하더라도 경기장에 오는 팬들이 마음 놓고 즐겁게 경기를 관람하고 돌아갈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게 프로스포츠 안에서 일하고 있는 이들의 역할이라고 생각합니다.
모든 안전수칙은 피로 쓰인다는 말이 있습니다. 실제로 큰 사건 뒤에 안전 규정들이 강화되곤 하죠. 경기장에서 또 다른 가슴 아픈 사고들이 발생하지 않도록 경기장에서의 안전만큼은 모두가 계속해서 관심을 갖고 목소리를 내는 게 필요하다고 생각됩니다. 모든 안전수칙은 피로 쓰인다는 말이 반복되지 않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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