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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몽생미셸 Nov 02. 2020

제22화 내 인생 두 번째 고소장을 접수했다

나는 오늘 내 인생 두 번째 고소장을 접수했다. 원고는 나, 피고는 전 집주인이다.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한 서킷 브레이커 (Circuit Breaker) 가동이 한창이던 4월 15일에 이사를 해야 했던 나는 그야말로 '개고생'을 했다.


서킷 브레이커는 사실상 도시를 전면 봉쇄하는 락다운과 다름없거나 더 강력한 조치였다. (자세한 내용은 이전 글 '서킷 브레이커라 쓰고...' 참조) 싱가포르 정부는 같이 거주하는 동거인 이외에 친구, 동료는 물론 자기 부모까지도 못 만나게 막았다. 벌금은 최대 10000불에 달했다.


게다가, 이삿짐 업체도 정부에서 허가를 받은 업체만 쓸 수 있어서 나는 미리 예약해 두었던 업체와 정부 허가증 여부를 놓고 20여 번의 전화질로 실랑이를 한 뒤, 겨우 취소하고, 이사 비용이 두배나 더 비싼 정부 허가 업체를 써야 했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이사를 할 때 짐을 옮기는 것보다 더 '힘든' 게 살던 집을 청소하는 것인데, 싱가포르는 스크래치 하나, 티끌 하나도 꼬치꼬치 따지고 보증금에서 거액의 돈을 떼어 가는 악덕 집주인들이 많아서 이사 청소를 엄청나게 꼼꼼히 해야 한다.


평소 같았으면, 헬퍼라 불리는 가사 도우미들을 고용해서 80불에서 100불 정도면 집 청소를 끝낼 수 있었을 텐데, 이놈의 서킷 브레이커 때문에 이사를 할 경우에도 헬퍼를 고용하는 것이 전면 금지됐다. 하는 수 없이 나는 장장 7시간여에 걸쳐 혼자 집 전체를 대청소해야 했다.


대청소는 자정이 넘어서야 끝이 났다. 내 몸은 락스와 세제로 뒤범벅이 된 상태였다. 고무장갑을 꼈는데도 손 끝에 습진이 생길 정도로 청소는 고됐다. 창문에 붙인 시트지를 떼어내고 창문을 박박 닦느라 팔이 떨어져 나가고 허리가 끊어지는 줄 알았다. 온몸의 근육 세포가 얼얼하게 달아오르면서 열이 났다. 청소를 끝내고 집에 가야 하는데, 도저히 일어 설 힘이 없었다. 그렇게 한 몸 바쳐 빛내고 광낸 집에서 쥐 죽은 듯 엎어져서 강제 휴식을 취한 뒤 겨우 새 집으로 무거운 몸을 옮겼다.


그렇게 힘들게 한 청소였다. 난 만약을 대비해서 동영상까지 찍어 뒀다. 싱가포르 일부 집주인 중에는 외국인 세입자를 상대로 '보증금 떼먹기' 사기를 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아니 나의 경우는 운이 나빴는지 내가 그동안 만난 10명의 집주인 중에 순순히 보증금을 돌려준 사람은 불과 3명에 불과했다.


지난 2014년 당시 싱가포르에서 근무를 했던 친오빠와 함께 처음으로 방 3개짜리 큰 집을 렌트했을 때는 계약 과정에서 집주인이 홀딩 디포짓(Holding Deposit: 집을 가계약하고 내는 한 달 치 월세)을 들고 말레이시아로 날르는 바람에, 소송까지 해서 4개월 간의 법정 싸움 끝에 겨우 2600불, 우리 돈으로 약 240만 원가량을 돌려받은 적도 있다.


당시 부동산 에이전트를 통해 그토록 연락을 취했던 집주인은 감감무소식으로 일관하다가, 내가 고소장을 날리고 내용증명이 자기 집에 도착하고 나서야 겨우 연락이 닿았다. 다행히 법적 분쟁에 겁을 먹은 집주인이 자발적으로 법정에 나오면서 재판까지 가지 않고 합의로 사태를 마무리할 수 있었다. 하지만, 치사하게도 "메이드를 고용해서 집 청소를 했던 비용 200불은 꼭 받아야겠다"는 집주인의 주장 탓에 2600불 중 200불을 제한 2400불만 돌려받았다.


이게 내 인생 최초의 법정 다툼이었다. 나는 외국에 나와서 살면서 참 한국에서는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것들을 많이 해봤다. 고소장을 접수하는 것도 그중 하나이다.


나는 오늘 내 인생 두 번째 고소장을 접수했다. 그나마 불행 중 다행인 건 예전 첫 번째 고소장 접수 당시보다 기술이 발달해서, 직접 법원에 가서 고소장을 손으로 쓰지 않고도 온라인으로 고소장을 손쉽게 접수할 수 있게 되었단 거다. 접수 비용은 단돈 10불이다. 이 점은 마음에 든다. 대신 재판으로 가게 된다면 내가 나를 변호해야 한다.


싱가포르엔 보증금 관련 분쟁이 많은지, Small Court (소액 법정) 사이트에는 아예 보증금 반환 청구 소송이라는 카테고리까지 있었다.


나는 사실, 설마설마했었다. 설마 또 내가 인생 두 번째 고소장을 접수하게 될 줄이야... 과거 첫 번째 고소 땐 난 지금보다 어렸고, 외국 생활도 얼마 안 됐던 탓에 정말 많이 힘들었다. 난생처음 해 보는 고소. 낯선 외국에서 '당했다'는 피해의식. 돈의 액수를 떠나서 외국에 나와서 이런 일을 겪게 되면 참 막막하고 한국 생각난다. 돈을 떠나 내 권리가 침해된다는 건 뼈아픈 일이기 때문이다. 이래서 미우나 고우나 내 나라, 내 가족이란 말이 나오는가 보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외국 살이에도 어느 정도 잔뼈가 굵었다. 이럴 줄 알고 동영상이니 사진이니 엄청나게 박아 뒀다. "넌 나한테 잘 걸렸다."


서킷 브레이커 핑계로 50일이나 지나서야 집을 체크하고는 벽에 곰팡이가 생겼다며 집 전체 페인트칠 비용, 800불을 떼 가야겠다는 악덕 집주인. 매일 기온이 27에서 34도를 왔다 갔다 하는 적도의 열대 기후 싱가포르에서 집이 한 달 반 동안 내팽개쳐져 있는데, 곰팡이, 아니 더 한 것도 생기는 게 당연하다. 그걸 왜 내가 부담해야 하지?


아무 프로그램도 나오지 않아 보지도 않은 티브이가 자체 결함으로 스스로 망가졌고, 이미 계약서대로 집주인에게 고지한 지가 작년인데, 150불 이상이 드는 수리비용은 주인이 부담한다는 면책조항을 훑어보기는커녕 1000불짜리 티브이를 다시 사야 하니 추가로 또 1000불을 떼어 가겠다는 이 도둑놈 심보의 집주인을 난 절대로 용서할 수가 없다. 그래서 총 3100불의 디포짓 중에 고작 1200불만 주겠다는 이 네가지 없는 사기꾼 집주인을 난 내손으로 '고소'했다.


돈을 다 날리는 한이 있더라도, 난 끝까지 싸울 작정이다. 고질적인 인재 가뭄에, 자원도 없는 더워 빠진 나라에 들어와서 생산력 높여 주고 없던 부가가치도 만들어 주는 외국인 엑스팻들에게 감사는커녕, 보증금 사기로나 화답하는 일부 악덕 싱가포리안 집주인들은 고질적 '사회 문제'다.


이럴 때마다 한국에서 일하는 외국인 엑스펫들이 부럽다. '동방예의지국' 한국에서는 엑스펫들도 손님이라며 되려 더 잘 해 주는 일이 허다하다. 하지만, 일부 '돈벌레' 싱가포리안 악덕 집주인들은 거액의 렌트비로 집값 대출금까지 자동으로 갚아주는 외국인들에게 고마움은커녕, 이런 '돈벌레' 짓이나 하고 있다. 이럴 때마다 정말 한국이 그립다.


싱가포르에서 열 일하는 모든 외국인 엑스펫과 외노자의 명예와 권리와 이름을 걸고 끝까지 싸울 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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