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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몽생미셸 Nov 02. 2020

제16화 난생 처음 청약이란 걸 해봤다

난생 처음 청약이란 걸 해 봤다. 청약 통장을 만든 지 십이년 만의 도전이다.

한국감정원 어플을 설치하고 은행에서 받은 공인인증서로 본인 인증을 한뒤 클릭 한번에 청약이 끝났다.

이렇게 간편한 줄 알았더라면 진작에 하는 건데...후회가 밀려온다.


지난 2016년 나는 서울에 집을 사려고 했었다. 하지만, 당시 나는 언제까지 외국에서 일을 할 수 있을 지 불투명한 상태였다. 불면증과 향수병에 시달리며 회사를 관두고 귀국을 할까 말까 치열하게 고민하던 시기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몇억 씩 대출을 받기가 부담스러웠다. 그 집은 내가 당시 가진 돈 보다 2억 5천만원이나 비쌌다. 하지만, 불과 4년여가 지난 지금, 그때 알아본 그 집은 현재 내가 가진 돈 보다 4억이나 비싸졌다. 내가 지난 4년여간 모은 돈 보다 그 아파트의 집값이 더 크게 뛰어서다. 허탈한 순간이다. 빚을 지고라도 아파트를 사지 않은 것이 두고두고 후회스럽다.


사실, 내 또래 친구들에 비해 내 연봉이 적지는 않은 편이다. 그리고 예전부터 내 이름의 집 한채 갖는 것이 꿈이었던 나는 나름 알뜰하게 살았다. 친구들 사이에서 '짠돌이' 소리를 들을 정도로 악착같이 돈을 모았던 적도 있다. 하지만, 불혹을 갓 넘긴 지금 나이에도 내가 모은 돈으로 서울에 아파트 한채 사기란 여전히 '로또당첨' 내지는 '희망사항'처럼 어려운 일이란 게 참 씁쓸하다. 참고로 내가 눈독들이고 있는 아파트는 그 비싸다는 강남쪽도 아닌데도 말이다.


나는 어릴 때부터 집에 대한 집착이 강했다. 어린 시절, 월셋방을 전전할 만큼 가난하지도 않았고, 부모님은 내가 4살이던 1980년대 중반에 이미 서울에 방 4개짜리 단독주택을 보유하셨다. 하지만, 천성적으로 경쟁심이 강했던 나는 당시 부의 상징과도 같았던 아파트에 대한 동경이 무척이나 강했다. 새로 지은 넓은 아파트에 살아보는 것이 유년기 내내 나의 꿈이었다.(2화. 개천의 용이 멸종된 한국, 코리아노마드가 꿈틀댄다 참고)

  우리 집은 내가 고등학교 시절이던 1990년대 후반 드디어 서울 변두리의 서남부 지역에 있는 아파트란 곳에 살게 되었다. 하지만, 2000년대 초반에 당시 인기였던 1기 신도시로 이사를 간 것이 화근이었다. 서울의 노후한 아파트에 비해 새로 지어 깔끔하면서도 가격도 몇 천만원 저렴한 곳이기에 처음에는 가족 모두 '이사하길 참 잘했다'는 만족감이 더 컸다.


하지만 2000년대 중반부터 갑자기, 우리가 팔고 온 서울의 그 아파트 가격이 3배로 뛰기 시작했다. 반면, 이사온 경기도의 아파트는 제자리 걸음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2020년 현재. 우리가 살았던 서울의 낡은 아파트와 현재 우리가 살고 있는 경기도 아파트의 가격 차이는 무려 4배에 달한다. 순간의 판단 착오로 우리집은 졸지에 서울의 중산층에서 서민으로 추락했다. 이제 다시는 서울에 돌아가고 싶어도 돈이 없어 갈 수 없어졌기 때문이다. '경제적 실향민'이 된 셈이다.


이렇게 우리집은 부동산 재테크에 처참히 실패했다. 부모님은 종종 이런 말씀을 하신다. "그때 [1980년대 초반] 우리가 단독주택을 사지 말고 강남이나 잠실 쪽에 아파트를 분양받았어야 했는데..." "그때[2000년대 초반] 우리가 경기도로 이사오지 말았어야 했는데..."


물론, 어느 나라나 어느 사회나...어느 시대에나 인기있는 부동산과 인기 없는 부동산은 나뉘었다. 내가 지금 살고 있는 싱가포르만 해도 부촌과 슬럼, 집값이 비싼 곳과 싼 곳은 나뉜다. 아시아에서 가장 집값이 비싼 곳 중 홍콩과 1,2위를 다투는 곳이 바로 싱가포르이기도 하다.


내가 현재 월세로 한화 기준 150여만원을 내고 살고 있는 콘도는 크기가 거의 '쪽방' 수준이다. 한국으로 치면 약 8평형 밖에 안된다. 하지만, 싱가포르의 금융가인 래플스 플레이스 (Raffle's Place)가 지척이고, 걸어서 마리나베이를 산책할 수 있는 요지에 있어 매매 가격은 거의 8-9억여 원에 달할 정도다. 확실히 한국 보단 싱가포르의 부동산 가격이 비싼 게 맞다.


하지만, 정작 전세계에서 집값이 둘째 가라면 서러울 싱가포르에 사는 사람들은 집 걱정이 없다. 거의 대부분의 국민들이 자기 집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싱가포르의 부동산 정책은 철저히 '거주'와 '투자'가 분리 돼 있다. 소위 HDB (Housing & Development Board) 라고 불리는 정부 아파트는 싱가포르 국민이라면 누구나 살 수 있다. 가격은 정부가 관리하고 있어, 보통 시내 중심부를 제외하면 2-3억원 이면 20평형대 방 2개 짜리 아파트를 구입할 수 있다. 대신, 싱가포르 국민이거나, 가구원 두명 이상이 영주권을 갖고 있어야 구입 가능하다.


그래서, 대부분의 싱가포르 국민들은 결혼을 하기 전, 혼인신고를 먼저 하고 이 정부 아파트에 청약을 한다. 싱글인 경우에는 30대 중반 이후부터 새로 지은 정부아파트를 제외한 곳을 구입할 수 있다.


결국, 싱가포르 국민이거나, 영주권을 가진 커플의 경우에는 크게 집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되는 구조다.


그렇다면, 싱가포르의 그 비싸다는 부동산은 대체 어디에 있는 걸까. 싱가포르 사람들은 주로 투자를 위해 정부아파트의 반대 개념인 '콘도'를 구입한다. 콘도에는 수영장, 짐을 비롯 야외 바베큐장, 친목 도모 시설, 도서실, 간이 영화관 등 다양한 편의시설이 갖추어져 있다. 가격은 최소 몇 억원에서 최대 수백~수천억 까지 다양하다.


보통의 싱가포르 사람들은 일단 싱가포르 국민들의 특권이나 다름없는 '정부아파트'를 먼저 구입하고, 그곳에 거주하면서 돈을 모아 투자용으로 '콘도'를 산다. 그리고 25-30년 장기 모기지를 2-5%의 저렴한 이자로 받아 매달 원금과 이자를 갚는다. 그리고 그 돈은 대부분 외국인 세입자들이 '갚아' 준다. 외국인들이 많이 들어와 있는 나라다 보니, 대게의 경우 콘도 세입자가 낸 월세로 콘도 구매 잔금을 갚아 나가게 하는 구조로 부동산 재테크가 이뤄지기 때문이다. 아마 내 집 주인도 내가 매달 내는 150여만원으로 이 집 모기지를 갚아 나가고 있을 게다. 평범한 싱가포리안들은 대게 그렇게 부자가 된다.


어찌보면, 이렇게 양분화 되어 있는 부동산 정책은 마치 자본주의와 계획경제의 융합형 같기도 하다.


가격을 통제하는 정부부동산을 통해 거주를 위한 집을 보장함과 동시에, 콘도나 단독주택을 통해 투자 내지 투기의 자유를 주는 제도. 매년 정권이 바뀔 때마다 "집값을 잡겠다"는 공약이 가장 먼저 나오고, 집값이 전 국민의 가장 큰 스트레스인 한국이 벤치마킹 해봄직 한 제도가 아닐까 싶다.


요즘들어 꽤 자주 여러 부동산 관련 유튜브를 보는데, 한결같이 나오는 얘기가 있다. "집은 내가 살고 싶은 곳이 아니라, 남들이 사려고 하는 집을 사야 한다." "순간의 선택이 부자와 가난뱅이를 나눈다." 등등이 바로 그것이다.


결국, 내가 살고 싶은 집을 고르는 기준은 나의 취향이 아니라, 불특정 다수의 취향이 되어야 하는 시대가 왔단 얘기다. 씁쓸하다. 적어도 한국에서 집을 고르는 기준은 나한텐 없다.


우린 자리를 어느 곳에 펴냐에 따라 빈부의 격차, 재운의 희비가 극명하게 엇갈리는 '부동산 도박의 시대'를 살고 있다. 집은 더이상 나와 내 가족이 편히 한 몸 뉘이는 따뜻한 공간이 아니다. 우리 집안 재물의 흥망성쇠를 가르는 일체 절명의 '주사위'가 되어 버린 것이다.


3일 후에 아파트 청약 결과가 나온다고 한다. 난 숲이 바로 옆에 있고, 큰 공원이 보이는 이 곳에 꼭 살고 싶다. 더 시간이 가기 전에 부모님을 이 곳에 모시고, 가뜩이나 외국에 살아 자주 보지 못하는 딸내미와 가끔이라도 행복한 시간 보내드리게 하고 싶어서다.


하지만, 사람들은 이번에 당첨되면 2-3억 짜리 로또에 당첨되는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떠들썩하다. 서울에 바로 붙어 있고, 주변 시세는 이미 2-3억이 더 비싸기 때문에, 당첨 되기만 하면 큰 시세차익을 거둘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나도 큰 돈을 번다는 데, 기분 좋은 게 당연하다. 나도 꼭 분양 받아서 깨끗하고 좋은 집에서 삶과 동시에, 목돈도 벌고 싶다.


하지만, 한편으론 겁이 난다. 만약, 내가 한 지금 선택이 과거 우리집이 했던 선택처럼 '역선택'이 되진 않을까. 그래서 나는 내 재산의 상당수를 저당 잡히고 계속해서 추풍낙엽처럼 감가상각되지 않을까 하는 노파심 때문에서다.


한국의 집은 더이상 내 몸 편히 오래오래 뉘이는 휴식의 공간이 아니다. 주식 처럼 시세의 오름과 내림을 예의주시 해야하며, 선견지명 있는 성공 전략을 통해 잃지 않는 투자를 해야 하는 '종목'이 되어 버렸기 때문이다.


나는 과연 제대로 된 종목에 베팅을 한 것일까?


예전부터 돈이 생기면 꼭 사고 싶은 집이 있었다. 오스트리아 할슈타트의 탄광마을에 있는 시골 집이 바로 그것이다. 알프스 산자락과 영롱한 호수가 보이고, 평화로운 백조와 예쁜 꽃들을 감상할 수 있는 곳. 그런 곳에 있는 집에서 살아 보는 게 나의 소원이었다.


집이란 바로 그런 게 아닐까...집이란 무엇일까...


나의 집은 과연 어디에 있을까. 그리고 과연 어디에 '있어야' 할까.


그런데 과연 '있기는' 한걸까.


생각이 많아지는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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