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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티제이 Jun 22. 2021

에필로그

티끌 같은성취감으로 다져 올린 자아

 남편 혼자 산에 다니기 시작했습니다. 혈혈단신으로 간다는 건 아니고 '나'와 같이 가지 않을 뿐입니다. 누구 신랑은 혼자 히말라야도 다녀왔다더라, 누구네 남편은 혼자 운동 잘 다니더라, 그동안 해 왔던 잔소리가 업보가 되어 돌아왔나 봅니다.

 이 업보, 나름 반갑기도 하고 섭섭하기도 하고.


 비자발적으로 시작한 등산이었지만 덕분에 우리 부부는 꽤 부부 같은 모양새가 되어가는 듯합니다.


 나 없이는 헬스장도 가는 둥 마는 둥 하던 사람이 본격 등산 크루를 꾸렸다는 건 정말이지 장족의 발전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제 주말마다 쉬지도 못하고 끌려다니지 않아도 되고, '나같이 귀여운 생명체를 두고 정말 나갈 거야?' 하며 뒹굴거리는 남편놈을 어떻게 떼어놓을까 궁리할 필요도 없습니다.

 기회다! 하고 쾌재를 불러야 할 텐데, 물가에 내놓은 애처럼 걱정이 먼저 앞섭니다. 

 "야, 너 막 갔는데 완전 또라이들이 나오면 어떡해?"

"그럼 튀어야지"

 "막 이런 거 있잖아. 아이고 형님~ 진짜 산 엄청 잘 타시네요! 근데 혹시 형님도 주식하세요? 아유~ 제가 요즘 짭짤하게 수익 보는 게 있는데 함 보실래요? 이게 진짜 아무한테나 알려주는 정보가 아닌데 이러면서, 사기꾼 같은 녀석들이 막 나온다던가?"

"어 리얼했다ㅋㅋㅋ 와 상상만 해도 깝깝한데?"

 "아니면 막 반대로 초면부터 말 까고 그러는 허세 가득한 아재면? 야, 너 군대 어디 나왔냐? 내가 말이야~ 어? 얌마 내가 말이야~ 이러고, 이거 끝나고 한 잔 콜? 인마 너 진짜 운 좋은 줄 알아라, 좋은 데 소개해줄게! 이러거나."

 "그러게. 그러면 아, 안녕히 계세요 하고 집에 후딱 돌아오지 뭐~"

  익숙하고 편한 사람들, 특히 나만 끼고 살려던 인간이었는데, 등산이 뭐 얼마나 대단한 취미라고 그를 바꿔놓았을까요.  

 혼자가 더 편해서 누구에게도 의지하지 않으려던 저 역시 조금은 변한 것 같습니다. 전에는 신랑 없으면 곧 자유라고 느꼈는데, 인정하긴 싫지만 이제는 없으면 좀 불안합니다. 아니, 불안하다고 인정할 수 있는 사람, 너에게 의지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되었다는 편이 더 맞는 말일지도요.

 둘이 함께 짧게는 4-5시간, 길게는 12시간 넘게 고난(?)을 함께 하면서 이제야 보다 부부다운 부부가 된 걸지도 모릅니다. 

 그러고 보니 정말 결혼 잘했다고 생각하는 친구 하나의 명언이 생각납니다. 지금의 배우자와 같이 등산을 갔을 때에서야 '이 사람이다!' 확신했다고 했거든요. 

 등산은 어찌 보면 자신과의 싸움입니다. 함께 가기는 해도 누가 날 대신 업고 가 줄 것도 아니고(물론 중국에서는 돈만 내면 가마 타고 올라갈 수 있습니다만), 고귀하게 타고나신 양반이셔서 몸종을 부릴 게 아니라면 자기 몫의 짐은 스스로 챙겨야 하죠. 기가 막히고 코가 막히는 유용한 잇템들이 아무리 많아도 그 역시 자기가 직접 잘 써야 하는 법입니다. 

 그런데 제각기 중력과의 치열한 전투를 벌이는 와중에 타인까지 챙겨준다면, 그것도 그 '타인'이 진정 필요로 하는 도움을 제공한다면, 역시 감동의 쓰나미 아니겠습니까. 

 저는 등산을 통해 그의 사람됨을 확신했다기보다, 변하고 개선되는 모습에 위안을 얻었다는 편에 가깝습니다. 이 남자, 딱히 누굴 챙기는 스타일이 아니었거든요. 

 제 배우자는 지극히 자기중심적인 사람입니다. 이기심과는 약간 다릅니다. 판단과 행위의 기준이 자기 내부에 있을 뿐입니다. 그런 사람 많잖아요, 자기가 못 하는 건 당연히 남도 못 할 거라 생각한다던가, 자기에게 쉬운 게 남들에게는 왜 어려운지 이해하지 못한다던가. 

 이건 우리가 먹자. 이게 더 예쁘니까.

 좋은 걸 나누고 못난 건 내 선에서 처리해야 하는 줄 알고 살아왔는데, 그이는 반대로입니다. 좋은 건 내 것이었으면 좋겠습니다. '갖지 못하면 부숴버리겠어'는 아니어도 스스로를 챙기기도 바쁜 세상에 남에게 너무 많이 퍼주는 건 낭비이자 지나친 허례허식이라고 여기는 정도랄까요. 체면 차리려고, 남에게 잘 보이려고 애쓰지 않아도 된다고요.

 짠돌이, 사회성 떨어지는 녀석이라 핀잔을 줘도 타격감 제로일 만큼 신경 쓰지 않습니다. 전에는 그의 자아가 단단해서 그런 줄만 알았습니다. 그런데 결혼하고 보니 문제가 닥치면 무작정 튀튀 하거나 안절부절못하고 버럭 허튼 소리나 해 대는 모습에 적잖이 당황했습니다. 방어기제는 자아가 약할수록 더 강하게 표출되잖아요. 

 그랬던 사람이 이제는 저를 먼저 챙깁니다. 밥상 차리다 보면 배고프다고 제가 앉기도 전에 우걱우걱 본인 아가리부터 채우던 인간이, 물 마실래? 간식 먹고 갈까? 이거 국물만이라도 조금 먹을래? 하고 먼저 물어봅니다. 

 덥고 힘들면 되레 곁에 있는 사람한테 짜증부터 부리기도 일쑤 더니만, 이제는 제 표정을 읽고는 알아서 진정하고는 사과도 합니다. 고맙다, 미안하다는 말을 일절 안 하던 새끼라 인성에 문제 있는 것 아닌가 진지하게 고민하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한데,

 귀찮고 번거로워도 함께 등산 다닌 보람이 있네요. 


 액션 어드벤처(?)를 함께하다 보니 저 역시 은근히 변했습니다.

 타인에게 의지하고 도움을 구하는 일을 창피하게 여길 땐 등산이 정말 싫었습니다. 애써 태연한 척, 후들거리는 무릎을 숨기기 급급했으니까요. 초췌한 몰골로 육수를 뿜어내는 남편도 창피하고, 이럴 거면 굳이 이 고생을 사서 해야 할 이유도 없고. 

 약함을 긍정해도 세상은 멸망하지 않는다는 걸 슬슬 깨닫고 나자, 그제야 나를 돌아볼 수 있었습니다. 제 체력의 하찮음을, 근력의 저열함을, 타고난 체형의 비루함을 인정하기로 했습니다. 부족한 부분을 극복하기 위해 끝없이 공부하고 운동하고 노력해왔던 삶을 드디어 놓아주기로 한 거죠.

 제가 먼저 약한 부분을 드러내고 그에게 도움을 구하던 행위 하나하나가 그의 자아를 충족시켜 줬던 걸지도 모릅니다. 그의 변화를 믿고 내가 가장 숨기고 싶었던 나약한 모습을 드러낼 수 있었던 게 아니라, 반대로 내가 변했기 때문에 그 역시 변할 수 있었다던가.

 선후관계를 따지는 것 자체가 무의미하다는 생각도 듭니다. 어쨌든 우리는 자잘한 시간들을 모아 모아 태산처럼 쌓아 올렸으니까요. 실제 태산은 그다지 높지는 않습니다만...


 산이 변해가는 속도로 우리 부부도 조금씩 변했습니다. 육체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작기만 했던 어른이들이 진짜 어른으로 거듭나려는 몸부림이었달까요. 비자발적으로 시작하긴 했지만 등산은 저에게 참 많은 것을 안겨주었습니다.

 그럼에도 저는 여전히 요가가 더 재밌고, 독서가 더 재밌고, 게임은 훨씬 더 재밌습니다. 보고 싶은 영화는 리스트를 만들 수 있지만 가고 싶은 산을 리스트업 하고 싶은 마음은 들지 않습니다. 산 타는 요령이 아무리 좋아져도,

 저의 등산은 여전히 비자발적입니다. 

 

누가 가자 그러면 가고,

 여기 가자 그러면 여기로,

 저기 가자 그러면 저기로 갑니다. 


그러다

 됐고, 뭐 맛있는 거나 먹으러 가자 그러면 제.일. 좋구요.

 비자발적으로 시작한 등산이었지만 덕분에 우리 부부는 서로를 더 알아가고 서로를 변화시킬 수 있었습니다. 제 등산은 여전히 비자발적이고 남편은 어느덧 자발적으로 등산을 다닐 만큼 성장했지만, 우리 부부, 우리 둘 만의 취미는 역시 등산입니다. 

 자잘 자잘한 중얼거림을 이렇게 모아놓고 보니 비자발적으로 시작한 것 치고 꽤 즐겼구나 싶습니다.


 아마 곧, 또, 등산 갈 것 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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