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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티제이 May 24. 2021

등산스틱 필요 없다던 사람 어디 갔나

스틱은 과학입니다

 등산스틱 완전 민폐라고 생각하던 시절이 있었다.


 노인도 아니고 산에 가는데 지팡이를 왜 들고 간담. 지팡이 없이는 무릎 아파서 못 걷는다면, 이렇게 험한 코스는 안 다녀야 하는 것 아닌가? 대체 왜 주변 사람들 위험하게스리 기다란 폴대를 앞뒤로 휘휘 휘두르며 다니는지. 

 이런 오만한 판단은 딱 20대 때까지.


 30대가 되어 노화가 시작되었다기보다, 운동을 좋아해서 그동안 많이 다치고 다녔다. 테니스 치다 테니스 엘보 나가고, 다친 팔 아끼다가 반대쪽 팔 나가고, 몇 시간씩 운전하다가 오른쪽 무릎이 슬슬 아파오기 시작하고, 그렇게 차곡차곡 통증을 저축해오며 살아왔으니, 꼭 노화나 등산 탓만은 아니다. 

 무릎 한쪽, 팔꿈치 한쪽을 쓰다듬으며 아프면 등산 왜 가냐던 20대의 나에게 조용히 속삭여본다. 

야, 스틱은 과학이야, 임마

 20대의 나도 원리는 익히 이해하고 있었다. 호모 에렉투스가 네 발 걷기를 포기하고 두 발로 일어선 순간부터 디스크를 비롯한 천형 같은 각종 질환이 시작되었으니까. 중력을 거슬러 차곡차곡 위로 쌓아 올린 직립보행은 너무도 불안전하다. 

 그러니 스틱을 써서 바닥으로 무게를 분산하면 마치 네 발 짐승처럼 안정적인 이동이 가능한 것이다. 

 몰랐던 건 아니지만 머리로 이해하는 것과 몸으로 체득하는 건 천지차이다. 그리고 몸으로 깨달았다고 하더라도 잘 쓰는 건 또 다른 문제다. 무게가 분산되어서 허리나 다리는 물론 어깨까지 훨씬 편안하다는 건 알았지만, 처음 쓰는 도구가 어설픈 것도 사실이다. 

 처음에는 길이 맞추는 데에도 한참 걸렸다. 이만큼? 너무 긴가? 아니, 너무 짧은가? 이렇게 잡으면 되나? 요렇게 잡으라고 하던데 좀 불편한 듯도 하고...

그렇게 거치적거리기만 했던 폴대가 이토록 나를 자유롭게 하다니! 

 처음에는 어색하겠지만 인간은 역시 적응의 동물이라, 심리적인 거부감만 극복하면 도구쯤이야 거뜬히 사용해 낼 수 있다. 그 복잡하다는 컴퓨터, 스마트폰까지 쓰는데 이까짓 막대기쯤이야.

  폴을 써도 그만 안 써도 그만이라고 여겼던 나와는 달리, 신랑은 절대 쓰고 싶지 않는 축에 속했다. 우린 아직 젊고 관절도 튼튼한데 폴대를 쓰는 건 오버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어쩌면 약간은 '자존심이 달린 문제'기도 하고, 또 한편으로는 짐을 더 늘리기 싫은 마음도 있었다. 내 몸뚱이만으로도 충분히 버거운 데 말이지.

 한국의 산에는 폴대가 굳이 필요 없다느니, 그런 건 길 넓고 흙 많은 북유럽에나 적합하다느니, 거추장스럽다느니, 핑계는 많고 많았다. 직접 써 보기 전 까지는. 

 배우자는 이제 내 카본 스틱보다 약간 더 무거운 두랄루민 재질의 등산스틱, 잘만 들고 다닌다.  

 난코스, 그러니까 손으로 뭔가를 붙잡고 올라가야 하는 구간에서는 스틱이 불필요하기는 하다. 손목에 달고 가기도 위험하고 접었다 넣었다 하기도 번거로운 점, 인정한다. 암릉과 밧줄 구간만 계속되는 코스로 간다면 장갑만 잘 챙기고 폴대는 아예 포기하는 것도 한 방법이다. 

 한국의 산에 바위가 많기는 하지만, 입구와 출구 부근은 반드시 경사가 완만할 테니까 그 구간에서라도 스틱을 쓰느냐 안 쓰느냐는 천지차이다. 등산 초반에는 초반 체력을 아낄 수 있다. 혹은 같은 체력으로 조금 더 빠른 이동 할 수도 있다. 체력을 아끼거나 시간을 아끼거나 둘 중 하나는 얻는다. 

 후반부에서는 안전을 도모할 수 있다. 하산길에 부상이 많은 이유는 오랜 산행으로 힘이 풀리기도 하고 무엇보다 발을 아래로 내딛을 때 하중이 더 많이 실리기 때문이다. 아무리 낮은 경사여도 터벅터벅 내딛다 보면 발목이나 무릎에 압박이 계속 가해질 텐데, 그 하중을 양 손에 잡은 스틱을 통해 지면으로 흘려보내면 안정적으로 부상 없이 귀가할 수 있다. 


 허벅지와 엉덩이, 코어가 워낙 좋아서 몸이 위아래(↑↓)로 크게 움직이지 않고 이동할 수 있는 근력이 된다면야 스틱이 무슨 필요가 있겠냐마는, 평범한 우리네로선 어려운 일이다. 다른 동물에 비하면 가히 허접하다 할 만한 육체를 타고났음에도 물리적 한계를 극복하고 요로코롬 지구를 가득 채울 수 있었던 건 다 도구를 잘 썼던 덕분 아니겠는가. 

 우리 부부는 이제 스틱은 물론 무릎 보호대도 미리 차고 출발한다. 다치거나 무리하기 전에 미리미리 준비하고, 나는 심지어 복대(!)도 챙긴다. 데드리프트처럼 무게 칠 때 허리를 보호하기 위해 복대를 차는 것과 같은 원리라고 생각하면 된다. 

 다음에는 어느 장비를 마련해볼까.

 쇼핑(?) 할 생각에 매일 밤 폰을 뒤지는 요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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