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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상명 Aug 31. 2020

경청(傾聽)과 타협(妥協)

I & You

사람에게 입이 하나이고, 귀가 둘인 이유는 자신이 말하는 것보다 남의 이야기 듣는 것을 두배로 하라고 조물주가 사람을 그렇게 만드셨다는 말이 있다. 우리에게 남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를 일깨워 주는 좋은 예라고 생각한다. 남의 이야기를 듣는 데에는 두 가지가 있다. 영어로 이야기하면 Hearing과 Listening이 된다. Hearing은 그저 들리는 데로 듣는 것이다. 소위 영혼 없이 듣는 것이다. 이것은 시간이 좀 지나면 무엇을 들었는지 내 기억에는 거의 남아 있지 않게 된다. 그저 스쳐 지나가는 소리였을 뿐이다. 반면에 Listening은 남의 이야기를 정성 들여서 이해하면서 듣는 것이다. 정성을 들여서 듣게 되면 상대방이 하는 말 중에 비록 말하지 않은 내용에 대해서도 공감할 수 있게 된다. 소위 영혼을 가지고 듣는 것이다. 이것은 시간이 지나도 무엇을 들었는지 내 기억에 오래 남게 된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매 순간 이야기를 하게 되고, 또 이야기를 듣게 된다. 이러한 이야기들 중에 어떤 이야기는 천냥 빚을 갚기도 하고, 어떤 이야기는 불화를 가져오고 갈등을 유발하기도 한다. 또한, 우리가 살아가는 동안 맺게 되는 모든 관계에서 이야기를 빼면 관계가 성립하지 않는다. 조직생활도 마찬가지로 이야기의 연속이다. 우리가 조직 생활을 하면서 나의 이야기에 상대방이 공감을 해주고, 인정을 해주게 되면 나는 더 신나서 일할 수 있는 반면에 나의 이야기에 대해서 상대방이 별로 관심을 가져주지 않으면, 당연한 말이지만 나는 조직생활에 실망이 커지게 되고, 어려움을 겪게 될 것이다. 또, 이야기를 통해서 표현되는 나의 입장, 의견이 다른 사람들로부터 받아들여지면 나는 자신감을 갖고 조직생활을 해나가게 되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나는 조직생활에 좌절감이 생길 수도 있고, 의기소침해질 수도 있다.


이렇듯 우리가 살아가는 데 있어서 이야기가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는가는 굳이 설명 안 해도 누구나 동의할  것이다. 모든 관계와 성과의 출발과 바탕이 이야기이다. 모든 관계와 성과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이야기는 내가 영향을 받는 것처럼, 다른 사람도 똑같이 이야기를 통해서 영향을 받는다. 내가 그렇듯이 다른 사람도 똑같이 자신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 주기를 바라고, 이야기를 통해서 표현되는 입장, 의견이 받아들여지기를 바란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이것이 가능하지는 않다. 다른 사람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는 것을 당연히 노력해야 하지만, 입장과 의견이 다 받아들여질 수는 없다. 그것은 나의 입장과 의견도 마찬가지이다. 서로 입장이 다 같을 수가 없기 때문이다. 이때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남의 이야기를 귀 기울여 듣는 Listening에 해당되는 경청과 나의 입장, 의견을 양보하고 다른 사람의 입장과 의견을 받아들일 줄 아는 타협이다.


경청은 그 사람을 존중하는 것으로부터 출발을 한다. 이야기를 흘려듣는 것이 아니라 정성을 들여서 듣는 경청은 그 사람에 대한 존중이 없으면 가능하지가 않다. 부모와 자녀 간에 대화가 잘 이루어지지 못하는 경우는 존중이 부족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부모 입장에서는 자녀를 보호하고 가르쳐야 되는 존재로만 생각하게 되고, 자녀의 이야기는 귀 기울여 듣기보다는 자라는 과정에서 생기는 투정이나, 불만으로 여기게 된다. 자녀는 자녀대로 이야기를 해도 귀 기울여 들어주지 않는 경험을 통해서 부모는 이야기를 해도 받아들여지지 않는 상대로 부모를 생각하게 되고, 이러한 점은 대화를 점점 어렵게 만들고 이런 상황에서는 경청이 일어나지 않는 것이다. 또한, 대부분 내 입장에서만 이해하고 판단하려는 경향으로 인하여 경청은 방해를 받는다. 조직 내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상사와 부하 직원 간에 대화가 쉽지 않은 것도 똑같은 이치이다. 사회적으로 세대 간에, 집단 간에 대화가 어렵고, 자기주장만을 강하게 제기하여 갈등이 유발되는 것도 똑같다. 상대방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만으로 그 상대방과 나와의 관계에서 생길 수 있는 문제나 갈등의 상당한 부분이 해소된다고 한다. 이때 이야기를 들어준다는 것이 바로 경청이다. 이 경청을 통해서 나는 조직 생활에서도 나를 유연하게 만들고, 협력하고 싶고, 관계를 고 싶은 존재로 만들어 갈 수 있다. 그리고, 경청이 잘 정착되어 있는 조직은 강한 조직, 경청이 잘 정착되어 있는 사회는 성숙한 사회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타협은 우리가 조직 구성원이라면, 사회 구성원이라면 꼭 갖추어야 할 덕목이다. 타협이 없다고 한다면 어떻게 조직이 돌아가고, 사회가 돌아가고 유지될 수 있겠는가? 자신의 입장, 의견 주장만이 있는 조직과 사회는 발전을 할 수가 없다. 자신의 입장, 의견만이 있는 조직과 사회에서는 갈등만이 조성되고 협력이 일어날 수 없기 때문이다. 지금과 같이 협력 없이는 할 수 있는 것이 하나도 없다고 말해도 지나치지 않을 정도로 협력이 중요한 4차 산업혁명 시대에는 더욱 타협이 중요하다. 이러한 면에서 최근 우리 사회에 경청과 타협이 점점 사라지고, 나의 입장 의견에 대한 주장만이 강하게 제기되는 현상은 안타까운 일이다. 우리 사회가 앞으로 나갈 수가 없다. 모든 사람이 자신의 입장, 의견을 주장하고 관철시키는 것은 의미 있는 일이다. 하지만, 모든 것을 나의 입장, 의견대로만 할 수는 없는 것이 현실이다. 상대방의 입장, 의견을 경청하고 그것을 받아들이는 것은 나의 입장, 의견을 관철시키는 것 보다도 더 중요하고 의미 있는 일이다. 왜냐하면 같은 구성원으로서 입장이 다르기 때문에 제기되는 의견이 타협을 통해서 받아들여져야 나의 입장에 따른 의견도 받아들여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이것이 우리 사회를 발전시켜 나가는 원동력이고, 우리를 행복하게 만들어 주는 힘이다.


나의 입장, 의견만이 받아들여지는 조직은 CEO 입장에서 그리고, 조직을 리드하고 있는 입장에서 반드시 헤아려 봐야 한다. 조직을 망치지 않기 위해서 왜 다른 의견이 없는지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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