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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광한 Dec 21. 2020

거두고래를 아시나요?

육아차차 육아 육아 #4

    육아의 세계엔 ‘공룡 시즌’이 있다. 아이들이 공룡에 큰 관심을 가져 덩달아 부모도 그걸 외게 되는 시기. 다는 아니어도 꽤 많이들 거친다는데, 첫째 역시 과하지는 않아도 그 과정을 보냈다. 덕분에 우리도 다양하고 복잡한 공룡 이름을 어렵잖게 뱉을 수 있게 됐고. 자연스레 애가 둘이니 익힌 지식은 재활용하면 되겠다 싶었다. 

    그런데 두 살 터울의 둘째 녀석은 누나가 놀 때만 적당히 같이할 뿐 별 흥미가 없어 보였다. 대신 전혀 다른 세계에 눈을 돌렸다. 마치 나이 들어 습득한 지식을 다시 못 써 안타까운 엄마 아빠를 비웃듯, 새로운 과제도 던져줬다. 그것은 거대한 바다였고 그 속엔 어마 무시한 생명체들이 살고 있었다. 차라리, 공룡이 나았다.

    

    그렇게 우린 ‘공룡 시즌’ 대신 ‘바다 시즌’을 맞았다. 잠깐 지나고 말 줄 알았더니 도무지 끝이 나질 않았다. 그는 여전히 바다를 엄청 많이 사랑한다. 그리고 편견 없이 바다의 모든 생명체도 사랑한다. 당연히 모든 생각은 기-승-전-바다로 흘러간다. 숨 쉬듯이 바다 생물의 이름을 외쳐대고 티브이에 바닷물만 나와도 눈을 반짝이며 신나라 한다. 자막도 없는 내셔널 지오그래픽의 다큐멘터리를 몇 편이고 보고 앉아 있는 것으로 봐선 보통 애정이 아니다.

    아쿠아리움이 시작인 건 알겠다. 그런데 왜일까? 너무 일찍부터 데려가서일까. 아니면 그때 과하게 흥분한 걸 아이의 일상 취급한 게 오판이었을까. 그것도 아니라면 무료입장이 가능한 개월 수를 꽉꽉 채워서, 너무 자주 간 게 원인일지도 모르겠다. 특히 36개월이 되던 그해에는 별일이 없으면 매달 일삼아 갔으니까. 어쩌면 그때 부모의 억척이, 애가 스스로 허파 호흡이 가능한 인간이라는 사실을 망각하게 만들어버린 걸지도 모른다. 

    이유야 어찌 됐든, 그의 바다 사랑은 식을 줄도 모르고 날로 더 뜨거워졌다. 유치원에서 그림을 그리면 으레 커다란 고래가 등장했고 놀이에서 자신의 역할은 폭군 상어여야 했다. 더 나아가 플라스틱을 사용하면 안 된다는 한 차원 높은 주장을 하기에 이르렀으니, 그야말로 자기가 사는 터전이 바다라는 물아일체의 경지다.

    급기야 어느 핼러윈에는 드디어 사람이 아닌 상어가 되어 유치원에 등장했다. 그런데 아내가 손수 만든 상어 옷은 시야 확보가 굉장히 힘들어 보여 나로선 걱정이 됐다. 대체 저걸 입고 보이기는 하는 건지. 하루 내내 생활하기에 적합하지 않은 건 분명해 보였다. 

    제작자에게 조심스레 물어봤다.


    “차라리 입을 크게 뚫어서 얼굴이 아예 나오는 게 낫지 않을까?”

    

    그녀는 고개를 젓기만 했다. 나지막한 한숨도 뱉었다. 고객의 단호한 요청이었다는 것이다. 그는 상어 입에 본인의 얼굴이 나오는 건 진정한 상어가 아니라고 고집했다. 


    모든 바다 식구들을 좋아하지만, 그중에서도 고래목과 상어상목의 동물들을 제일 좋아한다. 이게 무슨 소린지. 그냥 고래는 고래고, 상어면 상어지 않나. 실상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 깊이 들어가니 끝도 없었다. 세상에 고래와 상어 종류가 그렇게나 많을지는 몰랐다. 

    그의 덕분에 우리는 대부분 고래가 여과 섭식을 한다는 것과 상어라고 다 영화처럼 포악하진 않다는 걸 알게 됐다. 엄니가 있어 빙하를 깰 수 있는 일각고래와 쇠도 자를 수 있는 쿠키커터상어라는 신기한 존재도 인지했다. 그러다 어느새 깊숙이 ‘인셉션’이라도 당한 양, 우리 역시 따뜻한 바다 어딘가에서 고래상어와 반갑게 마주하기를 꿈꾸기도 한다.      


    취향이 분명하다는 게 딱히 나쁠 건 없다. 아이 특유의 호기심이 긍정적인 영향을 끼치기도 하고 애써 외운다고 해가 될 지식도 아니니 우리로선 반갑기도 하다. 그런데 이게 문제가 될 때가 있다. 애한테 선물을 줘야 할 때, 혹은 갖고 싶은 게 생겼다고 우리에게 긴히 요청할 때인데, 이게 최근 들어 적잖이 곤란해졌다. 

처음에야 바다 동물 장난감인 경우가 대부분이니 어려움 없이 그의 요구에 응할 수 있었다. 기껏해야 알려진 고래, 상어들이었고 다 인터넷 세상에 존재하는 것들이었다. 봉제 인형이나 동물 모형이 그렇게 마구 비싼 것도 아니었고.

    하지만 해가 갈수록 어려워지는 게, 매년 생일과 어린이날, 크리스마스만 해도 꼬박 3번인데, 칭찬 스티커라도 모으면 선물의 기회는 훨씬 더 늘어났다. 지식이 풍부해진 그는 점차 우리가 구하기 힘들거나 전혀 알 수 없는 생물을 요구하기 시작했다. 이미 확보된 종의 다양성이 차고도 넘쳤건만, 자기 방에 하나의 대양 생태계를 구성하고 싶은 여섯 살은 만족을 몰랐다. 그해 크리스마스를 앞두고서 뭘 원하는지를 넌지시 물어봤다. 


    “아들은 크리스마스에 산타할아버지한테 뭘 달라고 할 거야?”

    

    그의 답변은 간단했다. 

    

     “거두고래. 나 거두고래가 없어.” 

    

    처음 듣는 포유류의 이름에 급히 검색하고서야 생김새를 알게 됐다. 보기엔 돌고래나 비슷한 거 같다니 다른 거라고 다시 강조한다. 좀 평범한 걸 원하면 얼마나 좋을까만 역시나 쉽지 않았다. 다행인지 해외 배송까지는 요구하지 않는 범위에서 구할 수는 있을 것 같은데 믿을 만한 회사인지는 좀 더 알아봐야 할 문제였다. 물론 그 와중에도 놀랐다. 대체 거두고래 피겨가 수요가 있나? 여긴 왜 이런 게 있는 거지? 우리 아들만 이런 게 아닌가 싶어 한편으론 꽤 위안이 됐다. 그런데 가만 생각하더니 더 복잡한 조건을 덧붙였다.

    

    “물속에서 헤엄을 칠 수 있는, 움직이는 거두고래였으면 좋겠어요. 나 산타 할아버지한테 이것도 쓸래.”


    이러면 문제가 되는 거다. 첩첩산중이다. 

    

    얘야, 그냥 거두고래도 잘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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