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아차차 육아 육아#1
해맑음이 매력인 둘째는 조금은 대책 없이 해맑다. 아직 어리니 백치미라는 표현까지는 지나칠지 몰라도 생각의 흐름이 참 단순하다. 거기에 약간 4차원이기도 하다. 그러다 보니 간혹 아이 특유의 산만함과 과한 순수함이 만나 의외의 방향으로 생각이 튀기도 한다. 그런 그가 어느 날 유치원에 다녀와서 눈이 동그래서는 엄마를 잡고 묻더란다.
“엄마, 엄마. 그럼 아빠는 결혼 두 번 한 거야?”
아내는 처음에 무슨 말인지 전혀 몰라 다시 물었다. 그러자 아들은 조금 답답하다는 듯이 엄마를 가르치기 시작했다.
“아니, 아빠랑 결혼해서 아기가 나온 거잖아. 누나랑 나랑 두 명이니까 아빠랑 결혼을 두 번 한 거 아냐?”
요즘은 아이들을 상대로 일찍부터 성교육을 한다더니 아마 그 날이었나 보다. 내용을 전부 이해하기에는 이를 수도 있고 이 녀석이 아주 집중하지도 않았을 거니 저런 엉뚱한 질문이 나온 거다. 아이로서는 수정이나 착상보다는 결혼이 더 와 닿는 개념이었을 것이고.
그래도 뭐, 아빠와 엄마가 결혼을 통해 자기가 만들어졌다는 건 이해했으니 다행인 걸까. 직접 들은 아내도, 그걸 급히 톡으로 받은 나도 모두 빵 터졌다. 심지어 주위 사람들에게도 재밌는 얘기랍시고 팔불출 짓을 했다. 결혼이 두 번이라니, 웃기고 기발한 발상이었다.
그런데 낄낄거리다 보니 곱씹을수록 씁쓸해졌다. 두 번이나 결혼한다는 건 내겐 천재지변과도 같은 얘기라 그랬을 텐데, 그건 아마도 결혼을 준비하던 과정 때문이리라.
갑작스러운 고백을 하자면, 난 절대 ‘결혼식’을 두 번 하고 싶지 않다. 워낙에 힘든 과정이었다. 결혼 당시 난 가난한 학생이었고 아내는 이미 직장인이라 누가 보기에도 아내가 손해였다. 상황이 그러면 미루는 게 맞겠지만 난 아내랑 당장에 꼭 결혼하고 싶었다. 그 고집을 당연히 처가에선 탐탁지 않게 여기셨으니 결혼식까지가 엄청난 고통의 시간일 수밖에 없었다. 몇 번이고 엎니 마니 하는 얘기들이 오가고 울고불고… 더 자세한 얘기는 않겠지만, 아무튼 결혼 자체는 매우 만족해도 식을 또 진행한다는 건 생각도 하기 싫은 끔찍한 일이다.
한편 임신을 얘기하자면, 결혼 자체만큼이나 신중했어야 했음에도, 정작 구체적 계획도 구상도 없었다. 거창한 무엇도 없이, 정신 차려 보니 애가 둘이 됐다.
첫 일 년은 온전히 신혼을 즐기고 싶었다. 그렇지만 우리의 계획과는 다르게 갑작스러운 환경의 변화로 그 일 년은 주말 부부를 하게 됐다. 애틋한 주말 부부가 끝나갈 무렵, 그러니까 뭐 신혼이고 나발이고 그다지 제대로 누리지도 못한 그즈음의 어느 날 밤이었다. 웬일인지 이상한 예감이 들었다. 꼬집어 표현할 수는 없어도 오늘이 아니면 절대 안 될 것 같은 어떤 확신이었다. 급히 아내를 불러 앉혔다.
“나는 애가 없이 우리 둘도 충분히 행복한 거 같아. 하지만 애가 생긴다고 해서 우리 둘 관계가 지금과 달라지는 건 원치 않아. 나한테는 니가 제일 소중해.”
아무리 회상해도 무슨 말이었는지 정확하진 않은데 대충 저런 내용이었다. 횡설수설해도 내 진심이었다. 그리고 거짓말처럼, 그다음 날 아침에 임신 테스트 시약은 선명한 두 줄을 나타냈다. 무슨 직감에서 그랬는지는 몰라도 첫째는 그렇게 우리에게 찾아왔다.
둘째는 더했다. 역시나 철저한 계획하에 태어난 건 아니었다. 오히려 하나 더 있으면 좋겠지만 차마 엄두가 안 나던 그 틈을 용케 비집고 나왔다. 돌이켜봐도 대체 언제 생성된 건지 아리송할 만치 뜻밖의 임신이었다. 결과적으로 그 어떤 정갈한 마음가짐과 몸의 채비를 갖추지 못한 채 아이들이 생겼다. 그것도 둘이나! 육아에 대한 구체적이고 철저한 그림이 완성되기도 전에 아이 키우기 미션에 던져진 것이다.
다 지나고서야 생각하지만, 육아의 과정을 미리 경험했다면 절대 섣불리 출산하지는 않았을 거다. 아이를 키운다는 게 얼마나 신경 쓰이고 힘든 건지 체득한 상황이라면 덜컥 임신하기란 결코 쉽지 않았을 테다. 멋모르는 초보 부모라 막연히 아이가 귀엽고 귀했지, 꼬물거리는 핏덩어리를 사람 비슷한 사회 구성원으로 만드는 일에 동원되는 거였다면 애초에 시도조차 안 했을 거다. 우리는 그렇게나 위대하고 훌륭한 일에 참여한 거였고 감사하게도 잘 자라준 아이들을 둘이나 데리고 있다. 결과가 좋을 뿐, 돌이키면 아찔하기만 하다.
주양육자도 아닌 내가 이런데, 직접 고생한 아내는 더할 것이다. 훌륭한 동반자 덕에 밥숟가락 얹고 따라만 가도 막막하고 힘든 걸 어찌 견딘 걸까. 답은 의외로 단순했다.
“닥치니 그냥 한 거지. 뭘 재고 따지고 하지 않았으니 한 거 아닐까?”
그랬다. 아무것도 모른 채 주어진 상황에서 가진 매 순간 최선을 다했다는 게 전부인, 뻔하고 재미없는 결론이었다.
어르신들이 종종 애들이 자기 먹을 건 갖고 태어난다고 말씀하신다. 애들 젖먹이 시절에는 이 말이 그렇게나 야속하고 얄미웠는데 지금 와서는 제법 그럴싸하다. 부모 된 우리도 처음 마주하는 상황에 진을 뺀 거지만, 정작 아이들은 자기가 원하지도 않은 상태로 서툰 초짜들에게 던져진 게다. 섭리가 이런 악조건 속에서도 생명이 온전히 자랄 수 있게 인도했다는 것 말고는 딱히 설명이 안 된다. 믿는 신이 무엇이든 돌이켜 보는 모든 것이 감사함과 겸허함으로 가득할 수밖에 없다. 부모가 노력은 언제나 최선이었겠지만 어쩌면, 그저 거들뿐이었다.
어린 4차원의 엉뚱한 사고가 남긴 생각의 꼬리들이 꽤 여운 짙게 남는다. 그토록 중요한 걸 별생각 없이 두 번이나 한 게 아니었다. 오히려 그만큼 중요하니까 복잡한 생각이 없어야 가능했던 거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처음부터 이런 막중하고 힘든 임무인 줄 알았더라면 꿈도 안 꿨을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