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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광한 Jan 04. 2021

용감무쌍 그녀의 출구 없는 매력

육아차차 육아 육아 #13

    우리는 종종 냉정하다고 하지만, 그보다는 무뚝뚝하달까, 감정 표현이 호들갑스럽지 않달까, 이 정도가 더 나은 표현일 듯하다. 딸아이 말이다. 지금은 많이 밝아졌다. ‘밝아졌다’라는 표현이 좀 우습긴 한데, 실제로 들은 적도 있으니 보기에 따라 그럴 수 있다고 인정한다. 돌 즈음 아내를 도와주셨던 가사 돌봄 여사님께서 어느 날 조심스레 한 말씀이다. 


    “저기, 애기 엄마, 요새 애가 많이 밝아졌어요.”


    “네? 밝아져요?”


    “처음만 해도 좀 어두웠거든. 요새는 웃기도 하고 그래.”

    

    그땐 과도한 폭식으로 애 볼이 터져나가기 직전이었다. 원래 방긋거리고 잘 웃는 애는 아니었으니까 충분히 통통한 심술쟁이로 보였을 수는 있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애더러 어둡다니…

돌이켜 그 시절 사진을 보면 부모인 우리야 당연히 이쁘기만 하다. 그러다 이성을 부여잡고 다시 보면, 확실히 뚱하니 무표정한 게 많긴 하지만. 

    사실 그 당시 우리도 애가 좀 독특하다고 여기긴 했다. 단지 애 키우는 게 처음이니 그저 의심만 쌓이지 확인할 방법이 마땅찮았을 뿐. 그런데 그 생각이 조금 강한 확신으로 다가온 일이 생겼다. 


    하루는 아이가 걷는 게 불편한 듯해서 살펴보니 오른쪽 발에 티눈이 생겨있었다. 티눈 밴드를 붙여보고 동네 의원도 가 봤는데 통 나을 기미가 보이질 않았다. 조금 큰 병원에 가서 진찰한 뒤에야, 그 부분에 작은 유리 조각이 있다는 걸 알게 됐다. 언젠가 컵을 깨트린 게 말끔히 처리가 안 된 건지. 말도 못 하는 아이가 얼마나 아팠을까 싶어 미안하고 속상했다. 


    “부분 마취하고 피부를 절개해야겠네요. 아버님이 아이를 좀 붙잡아 주시겠어요?”

    

    갑작스러운 요청이었다. 미처 마음의 준비도 안 됐는데. 


    “꼭 살을 찢어야 하나요?”


    “유리 조각을 제거하지 않으면 계속 티눈이 생길 겁니다. 오신 김에 해결하시는 게 나을 거예요.”


    젊은 의사 선생님은 강권했다. 그게 맞는 건 알더라도, 어린 것한테 마취까지 하고 칼을 대야 하는 게 무서워 잠시 주저했다. 스스로 쥐어박으며 청소기를 좀 더 꼼꼼히 돌렸어야 했다고 소용없는 자책을 하다, 결국 애나 잘 붙들기로 마음을 고쳐먹었다. 

    그런데 애가 의외로 잘 버텼다. 주사가 따끔했을 건데 크게 울지도 않고 씩씩하게 치료를 잘 받았다. 생살을 가르는 걸 옆에서 보기만 해도 힘든데, 꿋꿋하게 잘 견디고 서너 바늘 꿰매는 것도 무사히 마무리했다. 치료하던 분들도 놀라시고, 그중 우리가 제일 놀랐다. 어머? 얘 봐라?


    이후로도 마찬가지였다. 매일 밤 봉합 부위를 소독했는데 덤덤히, 마치 다른 사람의 피부를 보듯 지긋이 보고만 있었다. 서서히 우리의 자책이 희석됐다. 그 꼿꼿함은 마치 태연히 바둑을 두며 생살을 가르던 긴 수염의 장수를 소환했다.

    그리고 우린, 그녀를 관우라 부르기 시작했다. 


    관우께선 그 이후로도 변함없으셨다. 주기적으로 돌아오는 예방 접종에는 의연함으로 대처하셨고 담대하게 주삿바늘이 어떻게 자기 몸에 들어가는지 친히 관찰하시기도 했다. 애가 통각에 문제가 있나 걱정하기도 했는데 다행히 그건 아니었다. 놀다가 부딪히거나 넘어지면 서럽게 울어 댔다. 다만 으앙 크게 한 번 울고는 그쳤다. 좀 심하게 다쳐 많이 아픈 경우라도 우리가

    

    “죔죔 돼?”라고 물으면 눈물이 줄줄 나면서도 손을 꼭꼭 쥐어줘 보였다. 그리곤 울먹이며 

    

    “잼 잼 대…”라고 대답을 해 줬다. 

    

    과연, 관우다웠다.

 

    심지어 모든 부모의 난제인 치과 치료도 아무 문제가 없었다. 조금의 칭얼거림도 없이 치료를 마치고는 반지와 자동차를 쟁취하셨다. 장난감이 고통을 이긴 건지, 아무튼 굉장했다. 


    그러던 아이가 최근 들어 무서운 게 생겼다. 여전히 주사도 잘 맞고 치과 가기도 꺼리지 않지만, 어릴 적 결기를 생각하면 좀 약해졌달까. 부쩍 겁이 늘고 주저하는 게 많아졌다. 아마도 나이 먹고 아는 게 많아지니 걱정과 두려움도 늘어난 듯하다. 그렇듯 어린 꼬마에게 있던 관우의 기운이 이젠 조금씩 사라지고 있다. 언제까지고 천방지축 겁도 없이 사는 것보다는 좀 몸을 사리는 것도 좋아 보인다. 원체 무서운 세상이다 보니 차라리 잘됐다고 느끼는 걸지 모르겠다. 

    그런데도 씩씩하기만 하던 그 아이를 그리워하고, 단지 추억 속의 존재로만 여기기 싫은 건 그 모습이 엄청나게 매력적이었기 때문이다. 딸아이가 계속 당당하게, 겁낼 것 없이 자라면 좋겠다. 성인이 되어서도 세상을 향해 머리 휘날리며 청룡언월도를 휘두르는 모습을 그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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