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계가 아파하고 있었다. 아니 패닉상태에 빠졌다. 코로나 이전의 삶으로 돌아가기 힘들거라고 누군가는 말했다. 해외에서는 하루 사망자가 수도 없이 나오고 코로나로 인한 폭동도 여기저기서 일어났다. 영화이야기가 아니다. 이건 현실이었다. 우리나라에서도 코로나의 확산이 지역사회에 까지 퍼지면서 이제 안전한 곳이 없었다. 누구라도 걸릴 수 있다는 현실은 국민들을 불안에 떨게 만들었다. 하지만 이런 감염의 불안보다도 더 무서운 것이 경제적인 문제였다. 사람들이 경제 활동에 제약을 받으니 경기가 위축되었고 가정경제에도 수입이 줄어들었다.
이런 경제적 타격은 집사람의 학원 사업도 예외는 아니였다. 그동안 모아놓은 돈으로 가계경제에서 부족한 부분을 메꿔 왔지만 집사람의 수입만으로는 더 이상 가계가 버틸 수 없었다.
내가 복직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였다. 사실 휴직을 하고 곧바로 코로나 유행이 시작되어서 그동안 몇 번의 복직에 대한 고민을 했었다. 그럴때마다 곧 코로나가 줄어들겠지란 기대감과 휴직을 하고 아무것도 성취해 놓은 것이 없다는 미련은 복직에 대한 결심을 몇 번씩 미루게했다.
하지만 이번은 달랐다. 경제적인 여유가 없다는 현실적인 문제는 복직 할 수밖에 없는 결정을 내리게 했다. 그렇게 사회생활에 대한 나의 투정은 6개월 만에 막을 내렸다. 나의 무기력에 대해 고민하고 해결해보겠다고 시작한 휴직이 그렇게 싱겁게 끝나고 마는 것이였다.
우선 회사에 복직 신청을 해야했다. 6개월 만에 찾은 본사 사무실이 어색하진 않았다. 마치 시간이 정지되었다가 다시 도는 것처럼 모든 것이 그대로였다. 집에서부터 고민을 많이 했다.
사람들의 물음에 뭐라고 답해야할지, 조기 복직에 대한 무슨 핑계를 만들어서 말해야할지 오로지 나를 변호할 생각으로 몇일을 보냈다. 하지만 다행인 것이 휴직 후 6개월의 나에 대한 고민이 헛되지는 아닌 듯 했다.
이렇게 생각하니 한결 마음이 가벼워지는 것을 느꼈다. 있는 그대로의 나를 보여주고 싶은 용기가 생겼다. 그래서 좀 더 솔직해지기로 했다.
“양대리, 휴직하는 동안 뭐했어?”
“복직을 빨리하네.
“잘되서 다른데 갈줄 알았는데....”
만나는 사람마다 나의 조기 복직에 대해 한마디씩 물어왔다. 그럴때마다 나는 솔직하게 대답을 했다. 원래는 1년을 휴직할 생각이였으나 코로나 때문에 경제적 사정이 안좋아서 조기 복직하게 되었다고 대답을 했다. 나를 변호할 필요도 없었고 다른 사람이 듣기에 기분좋은 말을 해줄 필요도 없었다. 남의 말의 뜻에 내 스스로를 옭아맬 필요도 없었다. 그 순간 내 의식의 자유로움을 느꼈다. 조기 복직했다고 주눅들 필요도 없었고 다른 사람의 생각을 내가 의식할 필요도 없었다. 주위의 일어나는 일들에 신경쓰지 않고 오롯이 나에게 집중할 수 있었다.
이 순간에 이런 생각을 가질 수 있어서 다행이였다. 그렇지 않았다면 또 다시 다른 사람의 말에 상처받고 또 무기력에 빠질 수 있었기 때문이다.
복직일은 2주뒤에 하기로 했다. 회사에서도 행적적인 절차가 필요했고 또한 인사이동과 맞물려 복직이 이뤄지면 나 역시 자연스러운 복직이 될 것 같았다. 더욱이 2주정도의 시간적 여유는 그동안의 휴직생활에 대해 정리하는 시간도 가질 수 있었다.
6개월의 긴 휴직 시간보다 앞으로 남은 2주간의 짧은 시간이 더욱 소중하게 느껴졌다. 그동안 코로나를 핑계로 아깝게 보낸 6개월의 긴 시간을 생각하니 그래도 좀 더 알차게 보냈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았다. 일을 하지 않고 보냈던 6개월의 시간이 나를 무기력에서 탈출할 수 있게 해준 것은 아니였다. 집에서 생활하는 대부분의 시간동안 무기력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었다. 무기력에서 벗어나는 것은 일을 하고 하지 않고의 문제는 아니였다. 무기력은 주위의 환경과는 어느 정도 무관하다는 것을 느꼈다. 중요한 것은 내 마음상태였던 것이다. 물론 주위 환경에 의해 무기력이 나타나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 문제로 인해 무기력을 겪을 필요가 없었다. 문제에 대한 생각, 그 생각에 의해 내가 취하는 태도 그런 것들이 무기력의 늪에 점점 빠지게 만드는 것이였다. 이런 생각이 드는 것은 보면 짧은 휴직 기간이 꼭 무의미 한것만은 아닌 것 같다.
지나간 6개월의 시간보다 앞으로 남은 2주간의 시간에 집중 할 필요가 있었다. 우선 집에 도착해서 그동안 다이어리에 썼던 기록들을 살펴보기 시작했다. 휴직 초에는 다이어리에 일상의 모든 것들을 적어보겠다고 다짐했지만 역시나 초창기에는 빼곡이 적혀있던 내용의 양이 날짜가 넘어갈수록 적어졌다. 계획했던 마음가짐이 점점 흐트러지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무기력이 심해졌던 어떤 날은 아예 기록이 없었고 귀찮아서 넘긴 날도 있었다. 자기와의 약속을 지키는 것이 쉬운 것이 아닌 것을 알았다. 그래도 간간히 적혀 있던 기록들이 나의 마음가짐을 다시 한 번 되짚어 볼 수 있게는 했다. 그동안 무기력에 대한 생각과 내가 무기력을 벗어나기 위해 다짐했던 일들을 객관적인 시각으로 관찰 할 수 있었다. 이런 기록들이 내가 앞으로 무기력을 빠졌을 때 헤어나오는 무기라고 생각하니 한 글자 한글자를 머릿속에 되내었다. 잊어먹지 않기 위해 여러번 보았지만 기억력의 한계가 망각의 샘에 빠지게 해서 또 다시 반복된 무기력에 빠질 수 있다고 생각하니 안타까웠다.
나를 믿고 행할 수 있는 용기, 남의 말에 주눅들지 않고 자신있게 나를 보여줄 수 있는 용기,
업무적으로 부족하다고 해서 스스로 가치없는 존재라고 생각하지 않는 용기 그런 용기들이 필요했다. 그래서 스스로 주문을 만들었다. 내가 무기력에 빠졌을 때 용기를 낼 수 있는 나를 환기 시키는 주문을 만들었다
이것만 외우면 다이어리에 적었던 수많은 나의 기록들을 잊어먹더라도 무기력의 늪에서 빠져나올 수 있을 것 같았다.
나의 이런 의식의 전환을 빨리 실전에 써보고 싶다. 2주 후에 다니게 될 삶의 전쟁터에서 이 주문이 나의 방패가 되어줄지 기대도 되지만 주문이 안 먹히게 되면 어떻하지라는 걱정도 된다. 몸 속에 비장의 무기를 숨기 듯 나의 의식속에 나를 보호해 줄 의식의 주문을 숨긴채 난 앞으로 살아갈 나의 모습을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