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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심횬 Apr 07. 2024

선택




몇 프로의 확신을 가지고 선택해?


 : 선택의 확신은 나이가 들수록 어려워지는 것 같아, 넌 어때?

: 스무 살 시절엔 무언가를 결정하는 것이 어렵지 않았어. 내 선택이 명확하게 자신 있었지. 그땐 이성보다

감정이 좀 더 앞섰고 내 감정에 따르는 것이 정답이었던 것 같아.

: 지금은? 지금은 이성이 더 앞서는 거야?

: 아니, 지금도 난 이성보다는 느낌, 영감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 같아. 확신에 차 선택하고 그 선택의 목표지점으로 가기 위해 혼신을 다하고, 그걸 이루고 나면 또 다음 선택도 수월해지는 것 같아.

나: 넌 그때랑 비슷하구나. 그때도 최선을 다했었어.

: 하하, 맞아. 5년을 최선을 다했었지.

: 응, 인정해.


그와 매일 통화를 하게 되었다. 그러기로 이야기한 일이 없었지만 매일 밤 9시 지점에서 시작한 이야기는 한 시간이 넘 짓해야 끝이 났다. 주로 삶에 대한 이야기였다. 확실히 예전(20대 연애시절)과 다른 결의 이야기들이 오고 갔으며 그 대화들은 나를 돌아보게 하고 앞으로의 내 선택에 힘을 실어주었다.


마흔의 어느 날, 나를 덮친 쓰나미에 어떤 선택을 해야만 했다. 쓰나미에 쓸려 갈 것인가? 탈출할 것인가?


나는 탈출을 선택했지만, 후폭풍으로 시름시름 앓았다. 그것은 쓸려 갔어도 마찬가지였을 거다. 분명 탈출을 선택했지만  매일 밤 가위눌림으로 어디론가 쓸려 들어갔다. 끝을 알 수 없는 곳으로 무서운 속도로 빨려가는 건 매일 있는 일이지만 익숙해지지 않았다.


첫사랑 그와 벚꽃이 흩날리는 장면에 서서 이별하고 삶의 한 부분에 난 구멍을 메우려 애썼다. 그땐 선택에 대한 고민을 깊게 하지 못했다. 내 선택에 대한 확신과 뭐든 잘할 거라는 신뢰가 확실했기에, 인생의 중대 사항인 결혼을 쉽게 선택했다. 지금의 나였다면 다른 선택을 했을 거란.. 만약에,라는 가정은 아무 쓸모없는 생각임을 알고 있다. 그때의 나는 어떤 상황이라도 결혼을 선택했을 테니까…., 결혼 생활이 꿈꾸는 것처럼 흘러갈 거라 생각했다. 처음 마음이 시간이 흐름에 의해 가슴 터질 듯한 마음까진 아니더라도 잔잔하게 곁에 있을 거라 생각했다. 이 사람이라면 믿고 내 삶과 함께 걸을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비록 내 커리어는 닫혔지만 아내라는 이름으로 채우는 내 삶도 나쁘지 않았다. 살림에 소질이 없다고 생각했지만, 집을 가꾸고 음식을 하고 한 번씩 남편을 위해 손님을 초대하고 꽃꽂이를 배우기도 했다. 요리와 홈 베이킹을 배우기도 했고, 집에서 케이크를 구워 지인들에게 선물했다. 이것들로 10년이라는 삶을 채우면서 이상하게 한구석은 섭섭했다.


그가 결혼 후 바로 두 집 살림을 시작했었다는 받아들이기 어려운 진실을 마주했다. 그 어떤 누구라도 믿지 못할 일 앞에서 나는 금방이라도 터져 나올 것 같은 울음의 바다 앞에 튼튼한 둑을 쌓아 막아둘 뿐 며칠간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웃음기는 사라지고, 얼굴빛의 생기가 사라졌다. 생각하고 또 생각했다. 생각을 하며 계속해서 질문을 했고 그 질문의 이야기들은 이질적이게 느껴져 불편하기만 했다. 자꾸만 눈물이 터져 멈추지 않아 다 쏟아 내어도 또 쏟아져 나오니, 아무것도 남지 않는 듯한 텅 빈 느낌이 나쁘지만 않다고 생각했다. 이것은 슬픈 감정과는 다르다고 생각했다. 그것을 알아차리니 분노했고 곧장 선택을 해야 했다.


그는 죄책감조차 내비치지 않았다. 그저 아니라는 말만 반복하며 상황을 모면하려 했다.


순간 알게 되었다. 내가 살아온 10년의 시간은 나를 위한 것은 하나도 없었다는 것을…, 결혼 후 그에게 많은 의지를 했고, 그에게 계속해서 사랑받기 위한 여러 가지 액션들로 내 시간이 채워져 있었음을, 한쪽 집엔 그의 아이까지 있었으니, 내가 졌음을 알게 되었다.


어느 날보다 정성스레 꽂은 꽃을 던졌다. 그릇장의 그릇을 모조리 깨려 문을 열다 그만뒀다. 배신과 분노에 의한 액션마저 아까워 멈췄다.


그렇게 그날, 몰아친 태풍에 할퀴어진 상처는 나아질 생각이 없이 곪고 곪아 갔다. 그리고 점점 보잘것없는 사람처럼 느껴졌다. 그래서 세상 안에 있던 흔적을 지우기로 했다. 흔적을 지우면 다가온 끔찍한 일들이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느껴져 벗어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그것은 나의 선택이었다. 스무 살 시절의 선택과 다르게 오랜 시간 생각하고 계속해서 질문했다.

하지만 그것은 정답인지 알 수 없는 답지가 없는 답이었다. 두려웠다. 내가 한 선택의 실패는 믿음을 깨버렸다. 나에 대한 믿음이 깨어짐은 삶의 의미를 사라지게 했다.


더 이상 내 선택을 믿지 않았다. 아침에 일찍 일어나 하루를 시작했던 선택부터 부정했다. 깨어났어도 한참 동안 이불 안에서 두통이 닥치기 전까지 머물렀다. 나에게 던지는 질문의 이유는 나를 믿지 못함 때문이었다. 계속해서 묻고 또 물었다. 답을 알지 못해 속이 부글부글 끓거나 답답함이 목까지 치밀 때는 종이와 붓, 물감을 꺼내었다. 그렇게 그려진 습작들이 수북하게 쌓일 때쯤 계절이 바뀐 것이다.


그 계절은 사연이 많던 봄이었고, 나는 감정에 이끌린 선택을 했다.

그리고 나보다 훨씬 삶을 잘 살아온 그에게 내 삶의 답을 발견하고 있다.


: 예전에는 내 선택에 분명한 확신이 있었어, 그건 뭐 때문이었을까?

: 글쎄, 내 기억 속에 넌 늘 밝고 당당했어. 난 늘 네 선택을 따랐던 것 같고, 그때마다 괜찮은 결과가 있었지. 늘 네 선택으로 즐거웠고, 행복했으니까, 난 늘 네 선택을 믿었어.

: 믿음, 그래 그게 중요한 건데.. 나는 지금 나에 대한 믿음이 깨진 것 같아.

: 확신이 생기지 않더라도 선택을 연습해 보면 어떨까? 그 선택이 괜찮았다는 것을 경험해 보는 거지.

: 그러기엔 우리 나이가 너무 멀리 오지 않았을까?

: 우리에게 예전보다 시간이 많지 않다면 아무것도 하지 않고 계속해서 질문만 던지는 것보다 그 방법이 효율적이지 않을까?


선택을 연습하기

나에 대한 믿음이 깨져버린 지금,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은 나에게 그는 이야기했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보다 괜찮은 선택을 경험해 보는 것, 그것이 시간이 많지 않은 마흔의 나이에 더 효율적이라고 던져주는 그의 말에 나는 내일 아침 내 선택을 시험해 보기로 했다.

알람을 맞추었다. 아침 6:00, 나는 아침 일찍 일어나기를 선택해 본다. 그것이 나에게 이로운 일이기를 기대하며, 내 선택을 응원하며 잠을 청했다.


그의 말이 맞았다. 내 선택을 시험해 보는 것, 아무것도 안 하는 것보다 나은 선택이었다. 아침 6시에 일어나 커튼부터 젖혔다. 낮이 길어져 제법 밝은 기운의 하늘색이 경이롭기까지 했다. 따뜻한 물을 끓여 차를 우려냈다. 벚꽃 잎이 완벽하게 떨어진 나무는 어느새 연둣빛으로 덮여 있었다.


얀 베르메르의 [저울질을 하는 여인], 여인이 엄지와 검지로 가볍게 들고 있는 저울은 왠지 모르게 신비로워 보인다. 뭔가를 선택해야 하는 상황에서 왠지 저울이 현명하게 답을 내줄 것만 같다. 여인은 깊이 고뇌하는 모습이다. 그리고 이 작품은 들여다보아야 보인다. 여인 뒤에 걸려 있는 그림이 그것이다. 그리스도의 최후의 심판, 베르베르는 상징적인 표현을 사용한 것이다. 구도와 빛의 표현을 통해 매우 섬세하게 계획된 구성임을 알 수 있다. 단순한 일상 같아 보이는 장면에 깊은 상징성과 의미가 담겨 있는 것이다. 그것은 삶의 선택인 게 아닐까? 탁자 위의 진주와 세속적인 것을 상징하는 보물을 통해 저울의 균형은 물질적인 부와 영적인 가치 사이의 균형을 찾는 것의 중요성을 상징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실내의 풍경은 어둡지만 결코 어둡지 않다. 빛이 반사되는 형상들에 의해 오히려 집중도를 높인다. 사유와 성찰하기에 적절한 분위기인 것이다. 작품이 위로가 되는 순간이었다. 작품에서 사용된 저울, 그것이 나를 위로했다. 


'누구에게나 선택은 어려운 것이구나.'


삶의 선택에는 답이 없다는 것을, 그 답을 찾기 위해 [저울질을 하는 여인]에서는 최후의 심판을 뒤에 두고 여인 또한 빈 저울을 들고 있다. 무엇을 고민하고 있는 걸까? 그 답을 찾았을까? 그림의 뒷 장면을 상상하며 연둣빛의 반짝임을 한참 동안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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