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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심횬 Apr 14. 2024

언니


위로 언니가 둘 있다.  


둘은 성격이 너무나도 달랐다. 나는 첫째 언니 성향과 닮았고, 둘째 언니와 눈매가 빼닮았다. 보통 외모가 비슷하면 성격도 비슷하다는데 취향, 성격 모두 둘째 언니와는 딴 판이었다.


언니 둘, 모두 결혼을 하지 않았다. 두 언니를 두고 먼저 시집가겠다고 나섰으니, 일찍인 나이도 아니었는데 엄마보다는 아빠의 시름이 깊었다. 그건 두 언니에 대한 걱정이었다.


결혼식날, 가장 많이 기뻐한 사람은 둘째 언니, 가장 많이 슬퍼한 사람은 첫째 언니였다. 참 이상했다. 양 옆으로 내 친언니 둘의 분위기는 마치 태극기의 태극 문양 과도 같았다. 색으로 봤을 땐 극명하게 다르다. 뜻을 살펴보면 태극 문양은 음(陰 : 파랑)과 양(陽 : 빨강)의 조화를 상징하는 것으로 우주 만물이 음양의 상호 작용에 의해 생성하고 발전한다는 대자연의 진리를 형상화한 것이라고 하니 한마디로 조화와 화합이 키워드라 할 수 있다. 둘은 딱 그랬다. 취향과 성격이 다르니 동생인 내가 보기엔 다른 세계에 살고 있는 사람들 같았지만, 가족의 일이라면 한마음이 되어 내가 알고 있는 그 어떤 것보다 강력해졌다.


그것을 느낀 그날, 나는 느껴보지 못했던 통쾌함과 든든함에 짜릿했지만 그날 밤 잠을 이루지 못했다.

그것은 걱정이었다. 다행히 잠잠했다. 상대는 아무런 액션을 취하지 않았다. 그 침묵이 더 얄미웠지만 다행스러운 일이었다.


나: 언니들, 다시는 그러지 마. 진짜….

경화(둘째 언니): (말없이 안아주며) 알았어. 무슨 말하려는지 알아.

선화(첫째 언니): 알겠는데 난 더 못한 게 분해. 아….

경화: 근데 걔 죽을죄인진 아나 봐, 조용한 거 보면….

선화: 미친 새끼, 알고 했으니 더 나쁘지, 아 짜증 나

나: 내가 잘못 선택을 한 거야.

선화: 연화야 또! 네 탓하지 마라니까!

경화: 그래, 내 동생, 언니 봐(연화의 두 팔을 잡고 눈을 보며) 지금은 네 탓인 것처럼 생각될 수 있어. 근데 아니야. 김서방이 그냥 다 잘못한 거야.


언니들의 복수는 어찌 보면 지질했고 또 어찌 보면 그만한 게 없었다. 너무 우스꽝스럽기도 했다. 언니들은 세상 무너져 있는 나를 데리고 갔다. 꼭 내가 봐야 한다고 했다. 셋다 모자를 푹 눌러쓰고, 긴 머리는 모자 안으로 묶어 넣고, 마스크를 썼다. 작은 언니는 마트로 가서 지독한 냄새가 나는 종류를 구입해 왔고 그것도 성에 차지 않아 재래시장으로 가 대형 통에 든 젓갈을 사 왔다. 큰 언니는 그것을 뚜껑이 있는 높고 넓은 스텐들통에 종류 불문하고 들이부었다. 냄새가 가관이었다. 그리고 거기에다가 고추장을 섞는 것이다.


10킬로 남짓되는 들통을 가지고 우리는 전 남편의 차 앞으로 갔다. 상상했던 대로였다. 소송도 하지 않겠다. 복수도 하지 않겠다는 내 이야기에 언니들이 할 수 있는 최선이었다. 그의 반짝거리는 흰색 벤츠 앞에 우리는 섰다. 우리 집은 차고가 있는 주택이었기 때문에 다행이었다. 분명 냄새가 공기의 흐름을 타고 그가 있는 코 끝까지 닿을 것이다. 그리고 10분쯤 뒤 냄새의 근원을 찾아 이 상황을 보게 될 그의 얼굴을 상상했다.


선화: 돌 같은 거 없냐? 다 때려 부수고 싶네

경화: 언니, 거기까진 참자. 이것만으로도 충분해

선화: 야. 근데 연화가 이 집에 있어야 하는 거 아니야?!

경화: 곧 나간다잖아.

선화: 그럼 바닥엔 웬만하면 안 닿게 해, 알았지?


언니들의 작전은 시작되었다. 흰색 벤츠가 빨간색 벤츠가 될 때까지 꼼꼼하게 작업을 매우 빠른 속도로 두 언니는 마무리했다.


선화: 이제 가자. 들키겠다. 야.

경화: 뭘 들켜, 딱 우리가 한 줄 알겠구먼 하하

선화: 나오기 전에 어서 가자.


그날 이후, 빨간 벤츠의 주인은 아무런 액션도 취하지 않았다. 그는 2주 뒤 짐을 챙겨 그 집을 나섰고, 나는 언니들의 위로로 꽉 차 있던 본가를 떠나 내 집으로 왔다. 그리고 우리는 협의이혼을 위한 숙려기간인 한 달을 보내고 법원에서 만났다. 그의 흰색 벤츠에는 꼼꼼하게 사이사이를 섬세하게 작업한 경화언니 덕분에 라인과 틈마다 빨간색 기미가 보였다.


그날, 언니들과 함께 바다를 보러 갔다.

나: "언니, 속이 후련하기도 해, 10년간 뭘 위해서 살았는지 억울한 마음이 컸는데, 오늘 그걸 보상받은 것 같아."

경화: 그래, 네 맘을 모두 다 알 수는 없지만, 상처를 잘 치유해 보자. 언니가 도울께.

선화: 연화, 너 집에서 안 나오고 그럼 안된다. 알았지?


그날 이후 선화 언니의 염려대로 나는 집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그리고 이상하게 그날 이후 내 상처의 크기는 점점 더 커져가고 곪아가고 있었다. 자주 가위눌림에 시달리고, 하루의 패턴도 엉망이 되었다. 그러다가 봄이 되자 그에게 전화를 했던 일이 땅으로 꺼져가고 있던 나를 일으켜 세웠다. 100일이란 시간에 미안한 마음이 들기 시작하자, 나는 움직이기 시작했다. 세상에 다시 발을 딛고 언니집으로 갔다.


"언니, 고추장 듬뿍 넣은 비빔밥이 먹고 싶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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