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심횬 Apr 13. 2024

친구


커피나 한잔 할까?


정말 커피나 한잔하려고 부른 건 아니었다.

내 친구 ‘김현이’ 뭐든 그녀 앞에서는 쉽게 쉽게 해결되었다. 그게 좋은 일이든, 나쁜 일이든, 무거운 주제든, 가벼운 주제든 그녀의 초긍정사고방식은 주변의 많은 사람들에게 영향을 주었다. 그건 나에게도 마찬가지였다. 사건이 있던 날, 그녀에게 제일 먼저 전화를 했다.

예상한 대로 내 친구 현이 반응은 세상 쿨 했다. 현재 내 상황의 강점부터 천천히 조곤조곤 이야기해 주었다. 현이의 MBTI가 분명 INTJ라고 생각했다. 이제 알게 된 놀라운 사실은 그녀의 MBTI는 ESFJ라는 것이다. 하긴 그녀는 누구도 가리지 않고 이야기를 잘 들어주었다. 그 이야기들은 보통 고민거리나 속상한 일, 누군가로 인해 열이 받았을 때가 대부분이었다.

‘그녀의 초 긍정 사고가 부정적인 이야기들로 갉아 먹히는 게 아닐까?’ 현이를 좋아하는 나는 사실 걱정이 되었다.


그래서 나는 사건이 있던 날, 그날 하루 그녀와 한 시간 남짓 이야기하고 그날 이후 방금까지 그녀에게 연락을 하지 않았다.


나 : 커피나 한잔 할까?

현이: 너무 좋지 어디서 볼까?

나: 너희 집 앞으로 갈게. 좀 걷고 싶어서.


우리 집에서 현이 집까지는 걸어서 20 분거리다.

낮기온이 20°가 훌쩍 넘으니. 해가 길어져 낮아진 빛의 분위기가 꽤 괜찮았다. 이 시간에 자주 산책을 해도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오랜만에 친구와 만난다고 생각하니 괜히 입꼬리가 올라갔다. 내가 그녀를 만나야겠다고 생각한 건 바뀐 내 생각을 빨리 이야기하고 싶어서였다. 그것은 나름 긍정적인 변화였기 때문에 현이의 긍정 사고가 갉아먹히지 않을 거라 생각했다.


나: 너 뭐야! 왜 이렇게 이뻐진 거야? 그동안 뭐 좋은 일 있었지?

현이: 야! 살쪘다 살쪘어.

나: 아니야, 너무 이뻐졌어. 수상해

현이: 뭐야 이 분위기는 뭐야? 너 정말 괜찮아졌는데!

나: 뭐가 계기였는지 모르겠지만 생각이 바뀌었어. 완전히 바뀐 건 아니고, 그…. 내비게이션 따라 계속 운전하다가 좌회전하세요. 그랬는데 우회전을 해 버렸어. 근데 거기 더 좋은 게 있는 거야, 그런 느낌.

현이: 뭐라고? 그러니까 길을 잘못 간 거네. 그게 더 좋았고?

나: 사실 나는 몇 년이고 숨어 있으려고 했거든, 그게 답인 줄 알았어. 아니, 어쩌면 답을 찾고 있었던 거 같아. 어렴풋 하지만 답의 10% 정도는 찾은 느낌?

현이: 우와 좋겠다. 난 아직도 답을 찾지 못했는데 넌 10%는 찾은 거야? 나도 좀 알려줘.

나: 내가 너 그렇게 이야기할 줄 알았어. 척척박사 김현이, 사람들이 너한테 몰려와서 고민 상담하고 넌 답해 주면서 무슨 답을 찾지 못했다는 거야 응? 응?


역시 내 목소리는 현이 앞에서는 한 옥타브 높아지고 애교가 섞인다. 현이는 손 앞에 있는 티슈를 한참 동안쪼물딱쪼물딱거리 더니 이야기했다


현이: 남의 문제는 쉬운데 내 문제는 어렵더라구.

나: 그건 맞아 인정해.

현이: 그래서 너 답은 뭔데? 진짜 궁금해! 어서 이야기해 줘 봐. 사실은 전화가 울리는데 니 이름이 떠서 깜짝 놀랐잖아, 반갑기도 하고 얼굴 보자고 해서 더 반가웠고 네가 여기까지 걸어온다고 해서 더 좋았고 , 네가 찾은 10% 답, 진짜 너무 궁금하다

나: 가장 중요한 거부터 얘기할게. 첫 번째는 내 시간은 아깝다는 거야. 지나온 십 년도 아까운데, 갑자기 문득 아무것도 안 하고 일부러 늦게 늦게 일어나고 멀뚱멀뚱 분노하고 정지했다가 또 화가 올라오고, 알콜이나 마셨던 시간들이 너무 아까워진 거 있지.

현이: 그걸 생각보다 빨리 알게 된 거 같아 다행이다. 한참 걸릴 거라 생각했거든. 시간이 아까워져서 너한테 어떤 변화가 생긴 거야?

나: 우선 집중할 수 있는 걸 해 보려고, 이미 그것을 찾았지만 지속적으로 내가 몰입할 수 있는지는 좀 더 시켜 봐야 할 것 같아. 중요한 건 그걸 통해 치유가 된다는 거야. 그리고 또 있어. 내 콤플렉스, 나는 사랑이 내 콤플렉스인 줄 알았거든, 그래서 세상이 다 무너졌지.

그거 알아? 마음에 사랑 있을 때와 없을 때 세상이 너무 다른 거, 다 끝났다 생각했어. 그런데 한참을 생각하니 내 콤플렉스는 그냥 그 사람이더라고. 그냥 그가 준 상처가 내 콤플렉스였어. 그걸 음.., 애써 외면했던 것 같아. 상처를 직면하니까 달래고 회복하려는 의지가 생기더라고 그래서 너한테 전화했어. 내가 알게 된 답을 빨리 이야기하고 싶었어. 너한테 이야기하고 나면 좀 더 명확해질 것 같았는데.., 진짜 그러네.

현이: 잘했어, 내가 다 속 시원해. 근데 나 오 년째 솔로야. 나는 그 마음 몰라 마음이 사랑 있을 때 와 없을 때 세상이 너무 다르다? 하하, 그건 공감 못해, 못해.

나: 현이야, 그런데 내가 예전에도 사랑 같은 거에 많이 의지 했었나?

현이: 무슨 소리야? 고등학교 때부터 결혼하기 전까지.

네가 뻥뻥 차버린 남자가 몇 명 이냐? 나는 사실 네가 사랑이란 걸 그렇게 생각한다는 것도 몰랐어.

나: 혼자 지내는 시간이 많으니까 오만 생각이 다 스쳐 가더라. 그러다가 구으음에게 연락했어

현이: 구으음이 누구야? 야!! 너, 혹시 구연우?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현이는 화들짝 놀랐다. 그럴 것이. 우리의 만남부터 잔인한 이별까지 속속들이 알고 있는 사람이 김현이었다


현이: 야, 서연화!, 잘했어 잘했어. 그래서 그래서 연우는 결혼했대?

나: 아니, 너무 다행이었어 내가 전화를 했던 시간이 밤이었거든, 결혼했다면  그 시간에 전 여자친구한테 전화라니…, 결혼 안 했다는 이야기를 듣고 그게 제일 다행스럽더라

현이: 그랬구나, 혹시… 너 못 잊어서 안 한 건 아니겠지?

나: 무슨 소리야 세월이 얼마나 지났는데? 그렇게 헤어지고 일만 했다고 하더라고, 처음에는 힘들어서 일에 더 힘을 쏟았는데.., 나중에는 그게 습관이 되고 당연한 게 되어서 누구를 만나고 그럴 시간이 없었대.

현이: 그럼 너랑 헤어지고 아무도 안 만난 거야?

나: 그건 안 물어봤지, 여하튼 나 연우랑 매일 통화하는데, 그게 쌓이면서 마음이 달라져.


현이는 오늘 그 어떤 순간보다 두 눈 반짝여하며 내 이야기에 집중을 했다. 그녀는 오늘 두 번 깜짝 놀랐다고 했다. 첫 번째는 내 전화에, 두 번째는 내가 구연우에게 전화를 했다는 사실에, 계속 마음이 진정되지 않는다고 했다. 그녀는 F 가 맞았다. 이렇게 공감을 잘하니 누구라도 그녀와 대화하고 싶은 것이다.


고등학교 때는 현이가 너무 인기가 많아 단짝이었던 나는 섭섭한 일도 꽤 있었다. 그녀의 언어에는 다른 사람에게 없는 뭔가가 있었다. 지금 내 앞에 있는 현이를 보니, 그게 뭔지 알 것 같다. 상대의 이야기에 몰입하고 있음이 그녀의 눈빛, 제스처, 표정에서 보였다.

그녀의 비언어적 표현들이 그녀만의 매력이었던 거다.

그것을 닮고 싶어졌다.


“현이야, 너 참 매력 있어“


이전 06화 사랑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