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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심횬 Apr 20. 2024

멈춤


그날 나는 멈췄다.

엄마 뱃속에 들어간 것 마냥 삶 안에 있는 나를 정지시켰다. 이 얼마나 멋진 일인가? 언제 가는 꼭 그렇게 해보고 싶었다. 그게 언제였냐면 삶의 마지막을 앞두고다. 눈앞에는 바다를 두고, 위스키 한잔을 손에 들고 며칠 정도는 그러고 싶었다. 지난 온 시간을 돼 걸으며 바다 앞에 있고 싶었다. 날씨는 쾌청했으면 했다. 바람도 잔잔해 파도는 더없이 평화롭고 볼을 스치는 바람이 담백했으면 했다.


그렇게 달콤했던 멈춤의 상상은 삶의 마지막 여정이 아닌 내 삶의 중간지점에 느닷없이 찾아왔다. 그 멈춤은 잔인했고, 쓴 맛이었다. 생각을 멈추게 했고, 뜨는 해와 지는 해를 보며 하루하루를 견뎠다. 선화 언니는 그럴 것을 예상했었나 보다. "너 집에서 안 나오고 그럼 안되다. 알았지?" 언니의 목소리가 환청처럼 한 번씩 들려왔다. 하루 한 끼, 죽지 않을 만큼 겨우 챙겨 먹고 누워 지내다 보니 두통이 찾아왔다. 그래서 시작한 그림은 어느 순간 위로가 되었다. 물감은 마음대로 움직이지 않았고, 항상 예상을 빗나갔지만 그것이 좋았다. 마치 살아 있는 듯한 생명력이 나를 일으켜 세웠다. 그 생명력이 다시 세상을 궁금하게 한 것이다.


그에게 전화를 한 것은 정상적인 삶 안에 있는 나였다면 절대 하지 못했을 일이다. 그가 한 번씩 궁금하기도 했고, 그와의 우연한 만남을 기대한 날도 하루쯤 있었지만, 그저 지나간 인연이었다.


세상이 궁금해지고, 누군가와의 대화가 간절해져 휴대폰을 뒤적거리며 왜 하필 그의 번호가 눈에 띈 걸까? 친구도 있고, 언니도 있었다. 그런데 그와 닿고 싶었다. 어쩌면 내 삶의 마지막 앞에 그와 한 번쯤 만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나는 삶의 마지막 지점에 있다고 생각한 것이었을까?


무조건 내편이 되어줄 것만 같았다. 나에게 필요한 것은 내편이었다. 아무것도 묻지 않고, 아무 소리 내지 않는 그냥 내편, 그의 목소리는 맑았고, 삶의 때가 묻어 있지 않았다. 그것이 내 영혼을 흔들었다. 몰입하여하고 있는 일이 즐겁다는 그의 이야기에 정신이 번뜩 든 것도 사실이다.


그와 첫 통화를 하고, 언니 집으로 갔다.


 : "언니, 고추장 듬뿍 넣은 비빔밥이 먹고 싶네." 언니와 눈이 마주쳤다.

언니, 나: "하하하" 우리는 박장대소했다.

언니: "그날 통쾌했어. 그걸로는 한참 부족하지만"

: "아니야, 그걸로 충분했어, 그날 법원 갔던 날, 벤츠사이사이 고추장 색이 내 눈엔 선명했거든"


언니는 채소를 볶고, 무치고, 고기를 양념하며 비빔밥 고명을 만들었다. 그 모습을 보며 물었다.

: "언니, 왜 비빔밥엔 고추장이 딱일까?"

언니: "고추장이 아니면 비빔밥이 아니지"

: "그래 맞아, 안성맞춤이야"


언니의 비빔밥은 꿀맛이었다. 순식간에 한 그릇을 비우니, 내 눈빛에 반짝임이 느껴졌다.

: " 고추장이 달다. 달어."

언니: "계속 이렇게 있을 거야?"

: "아니, 그림을 그려보려고 해"

언니: "그림?"

: "응, 집중이 되고, 그림을 그리면 편해져. 연습용 습작들만 한가득이지만, 이제부터 제대로 해보려고"

언니: "그래, 그래도 집에만 있는 건 별로야, 알지?"

나: 응


100일을 멈춰 한참 머무르다, 그와 통화를 하고, 언니 집에서 비빔밥을 한 그릇 뚝딱 먹은 후 나는 그림을 제대로 그리기 시작했다. 그것은 멈춤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시작이었다.

물론 그림을 그리기로 시작했을 그때, 내 안의 상처는 어느 누구도 짐작할 수 없을 만큼 여기저기 폭발하고 있었다. <고흐의 자화상>이 떠올랐다. 화가로서의 삶은 불과 10년, 그 안에 그는 수많은 작품을 남겼다. 특히 자화상을 많이 그렸다. 그는 강렬한 표현으로 자신의 감정을 고스란히 담았고, 그의 그림에서는 집중과 몰입이 느껴진다. 치열했던 몰입의 흔적, 고흐의 자화상들을 들여다보면 얼마나 스스로에게 질문을 하고 자신을 성찰했을지 짐작이 간다. 그것은 강렬한 표현과 색감의 사용에서 느껴진다. 자신의 내면을 깊이 통찰한 자화상은 지금 나에게 필요한 영감을 주었다.


1889년 7월에 완성한 자화상에서는 팔레트를 들고 있다. 내적인 갈등과 사색이 표정에 담겼고, 거친 붓질과 대비되는 색상들은 그의 감정을 전달해 준다. 이 작품은 생 폴 드 모솔 정신병원에서 보내는 시간 동안 정신적 건강에 어려움을 겪으며 그려졌고, 특히 간질 증상으로 5주간 무기력한 자신을 경험하고 병실에 머물러 그린 작품이다.  


반 고흐는 동생 테오에게 편지를 적었다.

"자신을 아는 것이 어렵다고 하지만, 자신을 그리는 것도 쉽지 않아. 나는 지금 다른 모델이 없어 내 초상화를 두 장 그리고 있어. 하나는 내가 일어난 날 시작했고, 나는 유령처럼 마르고 창백했다. 짙은 보라색과 파란색이고 머리는 희끄무레하고 노란색 털이 있어 색상 효과가 있다." 그는 수정을 하지 않고 한 번에 그림을 그렸다.


나는 지금 내 상태가 고흐의 상황과 비슷하게 여겨졌다. 나는 나를 알고 싶어 그림을 시작했다. 그와 같은 몰입을 할 수는 없겠지만, 시간을 잘 보낼 수 있는 몰입거리를 찾았다. 그것은 내 첫사랑이었던 그의 역할이 컸다. 내 시간이 소중하다고 해준 그의 이야기가 뭔가를 시작하게 했고, 그것은 내 삶을 바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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