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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심횬 May 28. 2024

"난생처음 여름 감기야"


"엄마 나 난생처음 감 여름 감기 걸린 거 같아"


초등학교 삼 학년인 막내의 말에 피식 웃음이 났습니다. 첫 번째 이유는 귀여운 입을 오물거리며 야무지게 말하는  '난생처음'이라는 표현 때문이었고, 두 번째 이유는 더 어린 시절. 여름 감기를 얼마나 했는지 아이가 잊고 있다는 게 허탈하기도 하며, 나만 기억하는 이야기라는 게 동상이몽 같아서였습니다.


아이가 던진 '감기'라는 건 몸을 아프게 하는 부정적인 언어이지만, '난생처음'이란 말에는 긍정의 의미도 내포되어 있나 봅니다. 말을 하는 아이의 얼굴에는 미소가 보였고 목소리도 경쾌했으니까요. 콧물이 조금 흐르는 정도였는데 갑자기 기온이 올라 햇살이 뜨거워져 한여름의 날씨와 같은 날, 감기가 어색했나 봅니다. 아이가 느끼는 감정을 내 안에 스며들여 봅니다.


'난생처음' 우리는 놀라운 일이 생겼을 때, 혹은 처음 만나는 좋은 일을 일컬을 때 이런 이야기를 합니다.


"난생처음 고백받았어."

"난생처음 복권에 당첨됐어."

"난생처음 먹어본 음식이야."


태어나서 처음, 물론 그것이 좋지 않은 일일수도 있지만, 처음을 운운한다는 것은 좋은 일의 경우겠죠.

유독 날씨가 쨍하게 맑은 날이네요. 저는 저의 난생처음을 꺼내보려 합니다. 그것은 긍정만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제 삶을 바꾸었죠.

 

첫 아이가 태어나던 날, 난생처음으로 저는 깨어나지 못했습니다. 그것은 당연한 일이었을까요? 쌍둥이를 2. 98kg, 2.86kg으로 출산을 했으니, 6킬로의 아가들을 제왕절개로 꺼낸 뒤, 저는 8시간 동안 깨어나지 못했습니다. 사경을 헤맨 거죠. 사후 세계가 있을까요? 네, 저는 믿습니다. 공중으로 붕 뜬 저는 손을 잡고 있는 남편도 보았고요. 전전긍긍하고 있는 친정부모님도 보았습니다. 그리고 계속해서 사후세계의 사람들을 보게 되죠.

누군가의 기도가 통했을까요? 겨우 눈을 떴지만, 호흡과 맥박이 불규칙하고, 숨이 가빠 제대로 숨을 내쉬지 못합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조심스러운 이야기지만 왜 저를 큰 병원으로 이송시키지 않았을까? 의문이 듭니다.

인공호흡기에 의존하여 3일을 아이들과 만나지 못합니다. 아이들을 만나야 한다는 강한 집착이 저를 일으켰습니다. 다행히 회복하였지만, 기력이 쇠하여 계속해서 헛것을 보게 되고, 난생처음으로 가위눌림에 시달립니다. 헛것을 보고 기절하기도 했지요. 뇌 CT를 찍기 위해 제왕절개로 숙이고 있던 몸을 펴야 하는 고통을 느끼기도 합니다.


저는 죽었다 살아난 것일까요?  


'난생처음'이라는 이야기에 어두운 이야기들로 시작했습니다. 지금도 끔찍합니다. 하지만 그 일이 제 삶을 바꾸었습니다. 저는 부지런한 사람이 되었고, 하루 한 순간의 소중함을 절실히 느끼며 제 삶의 주체가 되어 삶을 만들어가기 시작합니다.


삶에서 제가 하는 일을 잘하고 싶어 집니다. 에너지를 쏟고, 도전하며 저는 '난생처음' 일을 통한 성취감을 느껴봅니다. 제 일의 능동적인 주체자가 되어 하루하루를 의미로 채우기 시작합니다. 많은 사람들은 궁금해하고, 어떤 사람은 질문합니다.


" 왜 그렇게 열심히 사나요?"


난생처음, 아무에게도 꺼내 놓지 않은 제 이야기를 이곳에 합니다. 저희에게 온 한 번뿐인 삶은 영원하지 않습니다. 오늘 보고 있는 쾌청한 하늘, 맑은 공기가 내일은 우리의 것이 아닐 수 있습니다. 삶의 한순간은 어쩌면 선물입니다. 그 선물의 리본을 소중하게 풀어 망가지지 않게 포장을 뜯고, 조심스레 상자를 열어 내용물을 꺼내는 일, 그저 그것을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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