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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심횬 May 13. 2024

“돼지 국밥이 먹고 싶어“

뭐 먹을래?

스무 살 시절에는 "뭐 먹을래?“라는 질문이 가장 싫었습니다. 먹고 싶은 것이 크게 없었던 입이 짧았던 성향이기도 했지만, 머릿속에서 음식을 떠올리며 한 가지를 고른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대학땐 학교 앞 분식집 몇 군데를 바꿔가며 갔었는데 각 분식집마다 저의 고정 메뉴가 있었죠.


새침한 대학생이었던 그때는 타인의 시선이 하루안에서 크게 느껴졌고, 의식의 흐름이 밖으로 향했기에 저의 기호를 알지 못했습니다. 누군가가 메뉴를 정해주거나 어떤 음식이 먹고 싶다고 그곳으로 가자고 할 땐 속으로 기뻤죠. 음식 메뉴를 고르는 시간이 참 아까웠거든요. 무언가를 스스로의 판단으로 잘 선택한다는 것, 그것은 마흔 쯤 되니 조금은 쉬워졌습니다. 얼마 되지 않은 일이죠. 그전까지는 하루 한 끼의 메뉴를 정하는 것이 어려웠듯이, 스스로 해야 하는 선택이 선명하지 못했습니다. 선택 앞에서는 늘 안경에 김이 서리듯 뿌옇게 시야가 흐려졌습니다.


돌이켜 생각하니, 그땐 제가 저에게서 멀찌감치 떨어져 저를 관망하고 있었습니다. 어떨 땐 불친절하기도 했고요. 질책하고 원망하기도 했지요. 그것이 잘못된 것이란 걸 알긴 했나 봅니다. 그 단계가 지나고 나면 자책감에 사로잡힙니다. 한마디로 저는 저에게 다가가지 못하고 있었어요. 세상에 태어난 순간부터 지금까지 나와 가장 가까운 사람, 나와 항상 같이 있는 사람은 바로 나 자신이었는데 말이죠. 나에게 묻고 답을 하며 나를 알아가는 시간들이 나를 얼마나 단단하게 하는지를 그땐 알지 못했죠. 나와의 대화가 세상에 딛는 발을 흔들리지 않게 함을 이제야 알게 되었죠.


대학교 때 처음 만난 남자친구는 제가 뭘 좋아하는지, 뭘 먹고 싶어 하는지, 무슨 생각을 하는지 계속해서 물음표를 던졌어요. 아직도 그 생각이 잊히지 않는 이유는 그 질문이 무척이나 싫었거든요. 모르겠어. 잘 모르겠어. 아무 생각 안 해. 제 답은 이런 것들이었어요. 얼마나 성의 없이 느껴졌을까요? 그러던 어느 날, 그 친구가 함박웃음을 웃으며 기뻐했던 때가 있었습니다. 며칠 몸살을 앓고 나서 맛있는 것을 사주겠다는 그에게 제가 먼저 이야기를 했죠.


"돼지 국밥이 먹고 싶어"


따끈하고 자극적이지 않은 국물이 먹고 싶었나 봅니다. 그때부터 돼지 국밥은 제 최애 음식이 되었죠.


배려와 공감을 배우며 우리는 자랍니다. 나보다는 타인을 위하라고 교육받습니다. 그런데 정작 나와의 관계, 나에 대한 예의는 아무도 가르쳐 주지 않습니다. 나에게 질문하는 것, 지금 마음이 어떤지? 힘들다면 무엇 때문에 힘든 건지? 무엇을 했을 때 신이 나는지? 어떤 일에 즐겁게 몰입할 수 있는지를 나를 깊이 들여다보고, 다정하게 질문하여 나를 발견하고 나와 잘 만나야 합니다. 그것은 타인에 대한 깊은 배려와 공감으로 연결될 수 있습니다.


나를 잘 안다는 것은 세상을 사랑하게 합니다. 나를 잘 알기 때문에 무모한 도전보다는 나에게 딱 맞는 일에 도전하게 되겠죠. 그 도전은 성공을 가져다줄 가능성이 큽니다. 성공 경험은 자존감을 높입니다. 그리고 어떤 일에 또 도전하게 하겠죠. 그렇게 새로운 도전을 하고 성취를 하며 한 단계, 한 단계 계단을 오르듯 내 삶의 이야기를 무지개 빛으로 그려나갈 수 있게 되는 거죠. 내 세상이 무지개 빛이라면 타인을 바라보는 시선이 어떨까요? 네, 당연히 아름답겠죠. 바로 그것입니다. 우리는 나와 잘 만나야 합니다. 멈추어 나를 충분히 들여다보고, 나에게 질문하며, 내가 원하는 삶, 내가 가진 강점과 만날 수 있어야 합니다.


돼지국밥이 먹고 싶었던 그날 저의 선택은 아픈 몸을 달래려 충분히 휴식하며 멈춰 나와 만난 시간 때문이었는지도 모릅니다. 그렇다면 그 친구의 함박웃음은 어쩌면 나를 알게 됨이 준 배려일지도 모르겠네요. 그날 전 돼지국밥을 처음으로 한그릇 뚝딱 비웠답니다. 아직도 선명한 한조각의 예쁜 기억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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